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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이 내 가방이 아니라 진료실 카운터에 놓여 있었어

2026-08-17 12:29:11 조회 0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이 내 가방이 아니라 진료실 카운터에 놓여 있었어. 진짜로, 내가 분명히 접수하면서 “가방에 넣어둘게요”라고 말한 것도 아니고 그냥 멍하니 기다리다 보니까,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알게 됐거든. 그날 이후로 약 봉투 하나가 이렇게 사람 마음을 흔드는지 처음 느꼈다.

처음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어. 감기 기운이 심해서 동네 내과에 갔고, 접수하고 나서 차례 기다리다가 진료실로 들어갔지. 진료는 늘 하던 대로 짧게 끝났고, 의사가 처방전을 프린트해주면서 “약은 밖에서 타가세요”라고 했어. 나는 처방전 받은 뒤에 다시 접수 쪽으로 나가서 약국으로 갈 생각이었고, 손에 들고 있던 건 처방전이랑 휴대폰 정도였어.

근데 문제는 그 직후야. 약국으로 이동하려고 동선을 보다가, 진료실 문 옆에 있는 작은 카운터가 눈에 들어왔거든. 거기엔 여러 개 봉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어. 근데 그중에 내 이름이 적힌 약 봉투가 딱 하나 있었어. 분명히 처방전에는 내 이름이 있었으니까, 그게 내 건 맞다는 걸 바로 알아봤지. 나는 속으로 “아, 약국에 갖다주기 전에 진료실에서 미리 갖춰둔 건가?”라고 넘기려고 했어.

그 순간 이상하게도, 카운터 옆에 서 있던 간호사처럼 보이는 사람이 나를 쳐다보더라.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봉투를 확인만 했어. 내 가방은 내가 들고 있던 상태였고, 그 봉투는 내 가방 안이 아니라 카운터 위에 있었어. 보통이면 누가 가져다두면 누가 다시 가져가지 않나 싶었는데, 그 사람은 “아, 그거요?” 같은 반응을 안 했어. 그냥 말없이 시선을 거두고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어.

그래서 나는 봉투를 카운터에서 바로 집어 들었어. 손에 들자마자 종이 결이 뭔가 달랐어. 약 봉투는 보통 약국에서 받아서 바로 포개져 있잖아? 근데 이건 누가 미리 접어둔 느낌이었고, 처방전이랑 같이 스티커로 묶여 있는 것도 아닌 채로 그냥 올려져 있었어. 무엇보다 봉투 겉면에는 날짜가 오늘로 찍혀 있었고, 내 이름이 또렷했어. 그게 더 찝찝했어.

약국으로 가서 처방전을 내밀었더니, 약사는 “아, 이미 진료실 카운터에서 가져가신 분이 계시던데요”라고 하더라. 나는 “저요? 그 봉투를 여기서 받았어야 했나요?”라고 되물었고, 약사는 고개를 갸웃했어. 그러더니 약사 쪽 서랍에서 내 처방전 양식을 확인하더니, “이름은 맞는데, 조제는 아직 안 된 걸로 보이네요”라고 말했어.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내가 들고 있던 봉투가 갑자기 무게가 달라진 것처럼 느껴졌어. 조제가 안 됐는데 누가 내 이름으로 봉투를 만들어둔 거지?

나는 조용히 봉투 안을 확인하지는 않았어. 대신 약사에게 “혹시 이 봉투, 제 이름 맞는데… 진료실 카운터에 있던 거였어요”라고 조심스럽게 말했지. 약사는 잠깐 멈칫하더니, “그럼 진료실에서 착오로 놓여 있을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약은 안전하게 확인하고 드셔야 해요”라고 했어. 그리고는 내 처방전을 다시 받아서 조제를 시작했어. 그동안 나는 약국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자꾸만 진료실 카운터가 떠올랐어. 봉투를 누가 거기에 놔두고, 누구는 그걸 가져가지 못한 걸까.

조제가 끝나고 약을 받으면서도 찝찝함이 남았어. 내가 들고 있던 봉투는 결국 약국 직원이 “이건 원래 여기서 발급된 봉투가 아닌 것 같아요”라며 다시 확인하려고 가져가더라. 나는 그때서야 깨달았어. 누군가가 내 이름이 적힌 봉투를 ‘내 가방에 들어갔을 뻔한’ 상태로 만들어두고, 실제로는 내게 전달되지 못하게 어딘가에 슬쩍 올려둔 것 같았다고. 물론 내가 그 과정을 눈으로 본 건 아니야. 하지만 그날의 공기라는 게, 그냥 실수라고 넘기기엔 너무 정교했어.

집에 와서야 제대로 정리됐어. 나는 약 봉투 두 개를 비교해보려고 했는데, 그 순간 손끝이 멈추더라. 약 봉투 겉면 스티커의 모양이 달랐어. 하나는 약국에서 흔히 쓰는 방식이었고, 하나는 날짜 형식과 글씨 굵기가 조금 달랐어. 처음엔 “그래, 진료실에서 임시로 써놓은 걸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할수록 등골이 서늘했어. 누군가가 내 이름을 알고 있었고, 그걸 카운터에 ‘놓아두는 방식’으로만 접근할 수 있었던 거잖아. 내가 가방을 두고 잠깐이라도 다른 데 신경을 팔았다면, 내 약이 아니라는 걸 모르고 그대로 섞여 들어갔을지도 몰라.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면 제일 무서운 건 고의 여부보다 타이밍 같아. 병원은 사람이 많고 바쁘니까 실수도 충분히 있을 수 있어. 그런데 내 봉투가 내 가방이 아니라 진료실 카운터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이, 마치 누군가가 “여기까지는 놓여 있어”라고 말해준 것처럼 느껴져.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약 봉투를 받든, 처방전을 받든, 내 손에서 단 한 순간도 벗어나지 않게 하게 되더라. 그 작은 차이 하나가, 계속 꿈틀거리는 기분으로 남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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