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주문 메모에 ‘문 앞에 두지 마세요’가 적혀 있더라
배달 주문 메모에 ‘문 앞에 두지 마세요’가 적혀 있더라. 솔직히 처음엔 그냥 특이한 요청이겠거니 했는데, 그날 밤부터 계속 마음이 찜찜해졌어. 나는 별일 없겠지 하고 음식 들고 엘리베이터 타는데, 손에 쥔 폰 화면에 메모가 다시 한 번 떠오르더라. “문 앞에 두지 마세요. 현관 벨 누르지 마세요. 문 열지 마세요.”
가게에서 배달 기사님이 출발했다고 알림 뜬 건 오후 8시쯤이었고, 나는 집에 도착해 현관 앞에 바로 신발을 놓고 기다리고 있었어. 보통은 ‘문 앞에 놔주세요’ 같은 문구가 많잖아. 근데 이 주문은 반대로, 아예 문 앞을 피하라고 쓰여 있었지. 메모가 길진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단정한 느낌이 있었어. 마치 이미 한 번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람처럼.
배달 도착 알림이 오자마자 현관 쪽으로 갔는데, 그때부터 소리가 애매하게 들렸어. 엘리베이터 문 닫히는 소리랑 층간 바람 같은 게 섞여서, “툭” 하고 뭔가가 바닥에 닿는 느낌이 났거든. 나는 문을 열 생각이 없었는데도 자꾸 고개가 문 쪽으로 돌아가더라. 그러다 문틈으로 휴대폰 화면 불빛이 스치듯 비쳤고, 그게 더 신경 쓰였어.
기사님이 벨을 누르지 않았다는 건 알겠는데, 그럼 어떻게 전달했지? 문 앞 택배함이 있는 집도 아니고, 우리 건물은 현관 앞 공간이 딱 ‘한 사람 서면 꽉 차는’ 정도야. 보통은 문 앞에 두거나 벨 누르거나 둘 중 하나인데, 메모엔 둘 다 금지였으니까. 나는 결국 문 앞에 시선을 고정하고, 음식이 놓였는지 확인하려고 바깥을 살짝 봤어.
근데 그 순간, 현관 앞이 이상하게 비어 보였어. 문 앞은 늘 그렇듯 택배 스티커 붙은 흔적이나 종이봉투 자국이 남아 있어야 정상인데, 그날은 너무 깨끗했거든. 배달 가방은 분명 있을 텐데, 손에 잡히지 않는 공기처럼 사라진 느낌이랄까. 나는 문 앞을 한 번 더 훑고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그때 스마트폰이 진동을 했어. 메시지 알림이 아니라, 배달 상태 업데이트였지.
“문 앞에 두었습니다.” 라고 뜨더라. 근데 방금 전엔 분명히 안 보였는데? 나는 다시 현관 쪽으로 가서 바닥을 자세히 봤어. 그때도 가방이 없었어. 대신 문손잡이 아래쪽 틈으로, 아주 얇은 흰 종이 같은 게 스르륵 들어와 있었어. 딱 배달 메모지에서 찢어낸 것처럼 얇고, 바닥으로 떨어지면 바로 사라질 정도로 가벼운 느낌. 나는 손을 뻗기 전에 잠깐 멈췄어. 이상하게 그 종이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았거든.
종이를 집어 들고 펼치려는 순간, 문 바깥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어. 손톱으로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딱 한 번. 그리고 다시는 없었어. 나는 그제야 메모 첫 줄이 떠올랐어. “문 앞에 두지 마세요.” 그럼 아예 바닥에 놓지 말라는 뜻일 텐데, 누군가는 ‘문 앞에’라는 표현을 글자 그대로 지키려 했던 거야. 문 안쪽, 그러니까 손이 닿는 범위에 두지 않으려는 방식. 그 종이는 아마도 누가 문틈으로 넣어둔 것 같아.
종이를 펼치자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는데, 내 이름이랑 주문 번호가 함께 있었어. 문제는 문장이 아니었고, 그 글씨의 느낌이었어. 너무 또렷해서 인쇄물 같았는데, 동시에 필기처럼 약간의 흔들림도 있었고, 무엇보다 종이를 넣은 시간이 “방금”처럼 선명했어.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지. “문 앞에 두지 마세요. 열지 마세요. 기다리세요.” 날짜는 없었고, ‘왜’도 없었어. 그냥 해야 할 행동만 딱 찍어 놓은 느낌.
나는 그날 밤에 친구한테 전화해서 “배달 주문 메모가 너무 이상했어”라고 말했는데, 친구는 그냥 장난이겠지 싶어했어. 근데 장난치기엔 너무 구체적이었고, 내 현관 앞을 확인했을 때도 이상한 공백이 남아 있었잖아. 무엇보다 배달 상태가 “문 앞에 두었습니다”로 갱신되는 순간, 종이가 문틈으로 들어온 타이밍이 너무 정확했어. 나는 한참을 현관 쪽을 바라보다가, 결국 문을 열지 않았고 음식도 뜯지 않았어. 그냥 방 안에서 식은 걸로 배를 채웠지. 배달이 실제로 전달됐는지 확신이 안 가서.
새벽이 되기 전에 다시 주문 기록을 봤는데, 메모가 조금 달라져 있었어. 처음엔 ‘문 앞에 두지 마세요’ ‘현관 벨 누르지 마세요’였는데, 새벽엔 “문 앞에 두지 마세요” 부분이 흐릿하게 바뀌어 있었고, 대신 다른 문구가 덧붙어 있었어. “이미 확인했죠?” 그 문장을 보는 순간 손바닥이 축축해졌어. 누군가가 내 행동을 알고 있었다는 느낌, 아니면 최소한 확인하는 절차를 전제로 하고 있었다는 느낌. 그날 이후로 나는 배달 받을 때 메모를 무조건 한 번 더 읽게 됐고, 문 앞에 뭔가를 ‘두었다’고 처리되는 순간도 괜히 찝찝해지더라.
그 다음 주에 또 같은 앱으로 주문을 했는데, 그때도 메모가 떠 있었어. 이번엔 단순히 “대문 앞에 두지 마세요.” 같은 평범한 문구였지. 그런데 이상하게 문득 든 생각이 있어. 저 문구가 장난이 아니라면, 어떤 사람은 “문 앞”의 의미를 이미 알고 있다는 거잖아. 그리고 우리는 그걸 확인하는 순간, 그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게 될지도 몰라. 지금도 가끔 배달 완료 알림이 뜨면, 현관 앞이 너무 조용해서 더 무섭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