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의사가 없는 방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어
병원에서 의사가 없는 방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어. 진짜로 그 방 문이 닫혀 있었는데도, 종이가 ‘사각’ 하고 넘어가는 소리가 계속 들리더라. 처음엔 그냥 바람이나 옆 병동에서 나는 소리겠지 싶었는데, 그 소리가 멈췄다가 다시 시작되는 패턴이 너무 사람 같아서,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됐어.
그날 나는 병원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어. 접수 쪽이랑 처치실 쪽을 왔다 갔다 하면서 서류 정리나 안내를 돕는 일이었는데, 오전이라 비교적 한가했거든. 문제의 방은 처치실과 가까운 작은 보조실이었고, 거기엔 의사들 개인 일정이나 검사 안내지 같은 걸 모아두는 것 같았어. 내가 출입할 때도 항상 잠깐 확인하고 나가면 끝이었지.
오전 10시쯤, 보조실 문 앞을 지나가는데 안쪽에서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났어. 종이가 마찰되면서 넘어가는 그 소리, 손으로 책장 넘길 때 나는 것과 비슷했어. 나는 잠깐 멈췄다가 문손잡이를 잡았는데, 문은 안 잠겨 있었는지 쉽게 열렸어. 근데 안에는 아무도 없었어. 가운도 없고, 의자에 사람이 앉아 있는 흔적도 없고, 창문도 닫혀 있었고.
“혹시 환자 보호자분이 계세요?”라고 말해봤는데 대답이 없었고, 소리도 그 순간 끊겼다가 다시 들렸어. 이번엔 더 가까운 쪽, 서류가 쌓여 있는 철제 선반 근처에서 나는 느낌이었어. 솔직히 그때는 내가 착각하나 싶어서, 문을 활짝 열고 통로 쪽까지 확인했거든. 그런데 보조실 안쪽 말고는 어디에서도 그런 소리는 안 났어. 그럼에도 소리는 다시, 아주 규칙적으로 ‘넘기고-멈추고-넘기는’ 식으로 이어졌어.
나는 선반 위에 있는 박스들과 봉투들을 대충 확인했는데, 이상하게도 봉투가 한 번씩 조금씩 움직인 느낌이 있었어. 바닥에 먼지가 평소보다 정돈된 것 같기도 하고. 근데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누군가가 손으로 넘기면서 정리하는 속도랑 비슷했다는 거야. 종이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소리가 나고, 넘긴 다음엔 잠깐 멈췄다가 또 넘어가고. 마치 누가 ‘기록’을 확인하는 것처럼.
그날 내 담당자한테 말하려고 했는데, 아르바이트생들은 보통 “그럴 리 없지” 같은 반응을 먼저 들어. 그래서 일단 그냥 보고만 하자고 생각하고, 내가 들어간 지 2~3분쯤 지났을 때 문 밖으로 나와서 전화 통화를 흉내 내듯 조용히 주변을 살폈어. 근데 문제는, 보조실 안쪽 불이 아주 미세하게 깜빡였다는 거야. 전등이 정상적으로 켜져 있는 상태였는데도, 소리와 동시에 조도가 한번씩 바뀌는 것처럼 보였어.
그 다음엔 더 이상해졌어. 종이 넘기는 소리가 갑자기 속도를 올리더니, 이번엔 ‘여러 장을 빠르게 넘기는’ 소리가 연달아 났어.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아서 문을 닫고 뒤로 물러섰고, 그때부터는 문이 닫혀 있어도 소리가 들렸어. 마치 문 안쪽에서 계속 작업을 하는데, 소리가 벽을 타고 새어 나오는 것처럼. 나는 결국 그 방에서 손이 굳은 채로 몇 초를 버티다가, 그냥 다른 업무로 도망치듯 이동했지.
점심 지나고 오후 교대 시간이 되자, 그 방 담당이 바뀌었어. 나는 조심스럽게 “보조실 쪽에서 가끔 소리 들린다고 하는 사람 있어요?”라고 물었는데, 그 사람은 웃으면서 “거기 창문도 없고, 에어컨도 따로 안 돌아요. 서류는 다 잠가두고.”라고 말하더라. 나는 별말 안 하고 고개만 끄덕였는데, 그 순간 머릿속에서 방금 내가 들은 패턴이 그대로 재생됐어. 종이 넘기는 소리가 ‘확인’하듯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진 게 너무 생생해서, 그냥 장난이나 착각이라 하기엔 결이 달랐거든.
나중에 생각해보면, 내가 본 서류 더미 중에 한 장이 유독 끝까지 정렬이 안 된 상태였어. 손을 대지 않았는데도, 한쪽만 살짝 삐져나와 있었고, 그 삐져나온 부분이 소리가 나던 방향이랑 정확히 일치했어. 결국 나는 당일 업무 끝나고도 그 방 앞을 다시 지나가기가 싫어서, 동선을 돌아서 다녔어.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 문득 떠오른 게 있어. 그 소리는 단순히 누가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아니라, 누가 ‘없는데도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소리 같았다는 거야. 마지막으로 그날 밤, 병원 생각이 날 때마다 머릿속에서 ‘사각’ 소리가 다시 났다가 멈추곤 했어. 그때는 내가 잊으려 할수록 더 선명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지금도 가끔 그 보조실 문손잡이를 잡지 않은 쪽을 떠올리게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