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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룸에서 전화번호부를 열면 저장되지 않은 이름이 떠 있어

2026-08-20 00:29:13 조회 24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원룸 계약하고 나서 며칠 뒤부터 이상한 일이 시작됐어. 어느 밤, 물건 정리하다가 책상 서랍에서 오래된 전화번호부가 나왔는데, 겉표지가 닳아 있었고 안쪽은 누가 빽빽하게 적어둔 것처럼 보였거든. 그냥 소품인가 싶어서 넘겨보는데, 딱 첫 장에서 내 번호 옆에 저장되지 않은 이름이 떠 있더라. 정확히는 내 이름이랑 상관없는, 누군지도 모르는 이름이 같이 적혀 있었어.

처음엔 착각인 줄 알았어. 실제로 내가 그 번호를 저장해둔 적이 없거든. 통신사 안내문이나 택배 연락처도 전부 휴대폰에 새로 저장해둔 상태였고, 전화번호부라는 것도 그냥 누가 써놓고 버린 걸 내가 주운 거라 생각했지. 근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이상함이 더 선명해졌어. 내 집 전화번호, 내 거라고 쓰여 있던 번호 옆에는 분명히 ‘저장된 적 없는 이름’이 반복해서 등장했거든. 같은 필체로, 같은 잉크로.

나는 그 이름을 손으로 따라가며 천천히 읽어봤는데, 묘하게 눈에 걸렸어. 글자가 이상하게 또렷한데, 어딘가에서 이미 본 것 같은 느낌. 그래서 혹시 이전 세입자가 남긴 메모인가 싶어서 고개 돌려 벽에 붙은 메모지들을 확인했어. 전입할 때 붙여둔 종이 말고, 전등 스위치 옆에 아주 작은 종이가 하나 있었거든. 거기에도 그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날짜가 특정돼 있지 않고 그냥 ‘다음에’라는 식으로만 적혀 있더라.

다음날 아침엔 그냥 넘기려고 했어. 전화번호부는 오래된 거니까, 혹시 예전 집 주인이 관리하던 자료가 남아있었을 수도 있다고 합리화했지. 근데 그날 오후, 누군가 집에 전화를 걸었어. 번호를 휴대폰 화면에서 확인하려고 했는데, 이상하게도 연락처에 저장돼 있지 않은데도 상대 이름이 그대로 떠 있는 거야. 아까 전화번호부에 있던 그 이름이 그대로. 통화는 한 번도 연결되지 않았는데, 알림만 떴고 몇 초 뒤 바로 끊기더라.

그때부터 나는 전화번호부를 피곤할 만큼 계속 보게 됐어. 손에 쥐면 잉크 냄새 같은 게 아주 옅게 나고, 종이 표면이 마치 눌린 적 있는 것처럼 살짝 울퉁불퉁했어. 이상하게도 페이지의 특정 부분만 내 눈이 먼저 가게 됐는데, 그 ‘저장되지 않은 이름’이 적힌 줄만 유독 선명했어. 밤이 되면 그 줄 옆에 작은 점이 하나씩 추가되는 것 같았고, 다음 날엔 점 옆에 글씨가 얇게 덧칠된 흔적이 보였어.

그래서 무작정 검색해봤는데, 그 이름으로는 아무것도 안 나왔어. 동명이인이야 많지만, 집 전화번호부에 적혀 있던 형태 그대로는 찾을 수 없었고, 오히려 글자의 일부가 표준적인 한자나 표기와 조금 달랐어. 내가 알파벳처럼 적힌 부분을 잘못 읽고 있는 건가 싶어서 확대해서 봐도 그렇더라. 마치 누군가가 ‘읽는 법’을 알고 있는 것처럼, 내가 틀리지 않게 맞춰 적어둔 느낌? 그런 건데, 진짜로 소름이 돋았던 건 그 다음이었어.

열흘쯤 지났을 때, 다시 전화번호부를 펼치자마자 내 심장이 철렁했어. 내 번호 옆 이름 아래에 새 줄이 생겨 있었거든. 그 새 줄은 내가 적은 적 없는 말투로, 마치 호출하듯이 짧게 적혀 있었어. 내용은 길지 않았지만, ‘지금’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었고, 끝에는 이상하게도 집 주소 일부가 섞여 있었어. 내가 전입 신고할 때 받은 서류에서나 볼 수 있는 형태였고, 전화번호부에 그런 정보가 있을 이유가 전혀 없었거든.

나는 그날 밤 잠이 안 왔어. 휴대폰을 끄고 불을 다 껐는데도,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이 자꾸만 그 종이 쪽으로 기울어 보였어. 책상 위에 올려둔 전화번호부를 손으로 뒤집어 덮어버리면 잠깐은 괜찮아지는데, 다음 순간엔 다시 펼쳐진 것처럼 보이더라. 물론 실제로는 내가 덮었다는 걸 알아. 그런데도 종이 위에 내 시선이 먼저 고정되는 느낌이 계속됐어. 그러다 결국 새벽에 전화를 해봤어. 내 집 전화에 말이지.

연결음이 나다가 끊기기까지 딱 몇 초, 그 사이에 스피커에서 아주 작게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어. 바람 소리인가 싶어서 창문부터 봤는데 창은 닫혀 있었고, 그 방은 외부 소음이 거의 없어. 그리고 통화가 끊힌 직후, 내 휴대폰 화면에 다시 그 이름이 떴어. 저장되지 않은 이름인데도 말이야. 그때 나는 확신했어. 누군가가 전화를 건 게 아니라, 전화번호부가 내 쪽으로 사람을 ‘기록’하고 있다는 걸.

그 이후로도 이름은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페이지가 조금씩 더 얇아지는 것처럼 느껴졌어. 누가 읽는지도 모르는데 기록은 계속 쌓이는 거지. 지금도 가끔 그 전화번호부를 열어보면, 내 번호 옆에 있는 줄이 조금씩 다른 각도로 빛나. 그리고 가끔은, 내가 아직 저장하지 않은 이름이 다음 줄에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어. 원룸은 좁아서 더 잘 들리잖아. 그래서 나는 아직도 밤에 벨소리처럼 들리는 ‘종이 스치는 소리’가 있는지, 먼저 확인하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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