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내가 고른 컵라면이 진열대 반대편에 있어
편의점에서 내가 고른 컵라면이 진열대 반대편에 있어. 진짜로 그 날은 평소랑 똑같이 늦은 밤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컵라면만 이상하게 굴더라. 나는 계산대 쪽에서 담배랑 생수 집어 들고, 컵라면은 손이 익는 대로 손잡이처럼 쓱 뽑았어. “이거다” 하고 바로 들었는데, 계산하고 나서 봉투를 받는 순간부터 뭔가가 어긋나기 시작했어.
컵라면 코너가 길게 이어져 있었거든. 진열대 한쪽 면은 유리처럼 반사되는 느낌이고, 반대쪽은 살짝 어두워서 잘 안 보이는 편이야. 나는 정면에서 보이는 제품을 하나 집었고, 봉투에 담긴 그 무게감도 분명히 ‘내가 고른 그거’였어. 그런데 매장 밖으로 나와서 봉투를 확인하는데, 라면 상자가 내 눈에 보이던 색이 아니었어. 분명히 아까는 파란색 라벨이었는데, 지금 손에 든 건 반대편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빨간색 계열이었거든.
처음엔 내가 잘못 집었나 싶어서 멈췄어. 편의점 불빛이 약간 노랗게 퍼지면 색이 헷갈릴 때도 있으니까. 그래도 이상했던 건, 상자의 옆면 글자가 너무 선명하게 기억나더라. 그 글자 배열이 내가 봤던 위치랑 맞지 않았어. 나는 다시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가서, 계산대 앞에 선 채로 직원에게 조심스럽게 말했어. “방금 봉투에 든 라면이 혹시 다른 걸까요? 제가 고른 게 아닌 것 같아서요.”
직원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웃더라. “아, 방금 결제하신 거 그대로예요. 여기 영수증 보시면 금액이랑 제품이 찍혀 있잖아요.” 영수증에는 제품명이 찍혀 있었는데, 그게 내가 기억하는 브랜드랑 아주 미세하게 다르진 않았어. 다만 ‘맛’ 표기만 달랐지. 나는 그 미세한 차이를 꼭 집어 말했어. “저는 이걸로 골랐는데, 방금 받은 건 반대편에 있는 그 맛 같아요.” 그러자 직원 표정이 잠깐 굳었어. 웃는 얼굴이 유지되는데, 눈썹만 아주 얇게 내려앉는 느낌.
직원은 잠깐 진열대 쪽을 봤고, 바로 “혹시 잠깐만요” 하면서 진열대 뒤로 걸어갔어. 그때 나는 계산대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이랑, 진열대가 겹쳐 보이는 걸 봤어. 반대편 면에는 분명 내가 아까 집었다고 생각한 파란 라벨이 한 줄로 서 있었는데, 그 옆에 똑같은 파란 라벨이 또 하나 더 있어. 동시에 두 개가 아니라, 한쪽에서는 분명히 하나인데, 다른 쪽 반사에서는 다른 위치가 있는 것처럼 보였어. 그게 착시인지 아닌지 따지기도 전에, 직원이 돌아오면서 “이거 맞으세요?” 하고 다른 상자를 내밀었거든.
그 상자는 내가 처음에 손에 들었던 모양이랑 똑같았어. 손가락 눌린 자리까지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그런데 직원이 내민 상자에는 이미 테이프 자국이 있었고, 겉면에 아주 얇게 먼지가 쓸린 흔적이 있었어. 마치 누가 잠깐 옮겨 놓았다가 다시 가져다 놓은 것처럼. 나는 그걸 보자마자 손이 차가워졌어. 왜냐면 방금 전까지 내가 들고 있던 상자는 먼지가 거의 없었는데, 새로 건네진 건 반대로 너무 ‘다녀온’ 티가 났거든.
“방금 이거 잠깐… 어디에 있었던 거예요?” 내가 그렇게 묻자 직원이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어. 그리고 말이 아주 짧아졌지. “진열대 정리하다가… 그냥 그쪽에 있었던 걸로요.” 그 한 마디가 이상하게도 ‘그쪽’이라는 표현에 힘이 실려 있었어. 진열대 반대편? 혹은 유리 너머? 내가 정확히 어느 쪽을 말하려는지 직원이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들렸거든.
나는 결국 환불을 받거나 교환을 하진 않았어. 그냥 “그럼 이걸로 계산된 걸로 봐주세요” 하고 봉투를 다시 건네받았지. 그런데 매장 밖으로 나와서도 손에 쥔 라면이 계속 가벼운 느낌이었어. 분명 똑같은 상품인데, 내가 고른 무게감이 아니었어. 그리고 더 찜찜한 건, 편의점 출입문을 닫는 순간 진열대 쪽이 잠깐 흔들리듯 반사됐다는 거야. 마치 누가 안쪽에서 진열을 다시 맞추려고 손을 댄 것처럼.
집에 와서 영수증을 다시 보고, 사진도 혹시 찍었나 확인하려고 폰을 봤는데 사진이 없어. 분명히 찍을 생각이었거든. 근데 내 폰에는 아무런 기록이 없었어. 대신 라면 상자 옆면 스티커에 적힌 작은 글씨만 또렷하게 보였어. 그 글씨가 내가 처음 보던 것과 같았는데, 이상하게도 ‘위치’만 어긋나 있었어. 나는 그제야 깨달았어. 내가 고른 건 라면 하나가 아니라, 어딘가에 이미 놓여 있던 “다른 같은 것”을 집어 든 게 아닐까.
며칠 뒤에 그 편의점을 지나가다가 다시 한 번 컵라면 코너를 봤는데, 진열은 너무 멀쩡했어. 파란색 라벨도 있고 빨간색 라벨도 있었고, 어느 쪽이든 똑같이 정리되어 있었지. 그런데도 이상하게 가끔 그날의 감각이 다시 올라와. 내 손은 분명히 한쪽을 집었는데, 물건은 반대편으로 이동해 있었다는 그 느낌. 그 이후로 나는 컵라면을 잡을 때마다, 유리 반사 쪽을 먼저 보게 돼. 누가 먼저 손을 뻗었는지, 내가 고른 건 정말 ‘내가 본 것’이 맞는지… 아직도 가끔 헷갈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