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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복사실에서 복사기가 계속 돌아가는데 용지는 그대로였어

2026-08-20 20:29:09 조회 19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회사 복사실에서 복사기가 계속 돌아가는데, 용지는 그대로였어. 처음엔 그냥 고장 난 줄 알았지. 그런데 그날 이후로, “복사가 진행 중”이라는 소리가 없는 시간조차도 이상하게 오래 남아버렸어.

사건은 야근 끝나갈 무렵 시작됐어. 나는 회계 쪽 자료를 출력하려고 복사실 문을 열었는데, 복사기가 켜져 있었고 급지함 쪽에서 바삭바삭 종이 넘기는 소리가 들렸거든. 근데 화면에는 복사 진행 표시가 그대로 멈춰 있었어. 분명히 출력할 페이지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기계는 멈추지 않고 돌아가고 있었지.

나는 일단 “누가 사용하다가 잊었나?” 싶어서 용지함을 확인했어. 그런데 신기하게도 용지는 한 장도 줄어 있지 않았어. 급지함 투명 창으로 보이는 더미도 똑같은 높이였고, 복사기 뒤쪽 배출구에서 종이가 한 장도 떨어져 나오지 않았어. 그 상태로 소리만 반복되는 게, 귀로만 겪는지라 더 찝찝했어.

그래서 전원 버튼을 눌러봤는데, 복사기는 반응이 늦었어. 전원은 꺼져야 정상인데, 눌렀던 버튼이 눌린 느낌이 안 들 정도로 무감각했거든. 그러다 갑자기 “딱” 하고 걸리는 소리가 나면서, 화면이 아주 짧게 깜빡였어. 그리고 화면엔 평소에 안 보이던 문구가 떴어. 정정 중이라고.

그 순간부터 복사기에서 나는 소리가 바뀌었어. 종이를 넘기는 소리처럼 들리던 게, 마치 누가 아주 천천히 문서를 접었다 펴는 것 같은 소리로 변하더라. 물론 복사기 내부에 사람이 있는 건 아니었어. 주변은 복사실이라 조용했고, 창문 밖은 복도 불빛만 희미하게 흘러왔어. 그런데 그 소리는 점점 더 가까이서 나는 것처럼 들렸어.

나는 급히 덮개를 열어보려고 했는데, 손이 멈췄어. 복사기 내부 롤러 쪽에, 종이 자국 같은 게 보였거든. 하지만 그 자국은 “새로 긁힌” 모양이 아니라, 이미 여러 번 지나간 흔적처럼 굳어 있었어. 그리고 놀라운 건, 용지 더미는 그대로인데 자국만 쌓여 있다는 거야. 누가 보이지 않는 종이를 계속 넣고 빼는 건가 싶어서, 뒷목이 서늘해졌어.

그때 누가 복사실 문을 열었어.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는데, 문 앞에는 아무도 없었어. 대신 복사기 스피커에서 아주 작게 “띠-” 하는 신호음이 났고, 화면이 다시 정상 화면으로 돌아가려는 듯 깜빡였어. 그런데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고, 다시 정정 중으로 돌아가 버렸지. 그 반복이 딱, 누군가가 파일을 계속 수정하는 느낌이었어. 누가 조작하는 것처럼.

나는 끝내 복사기를 껐어. 그런데 전원이 완전히 나간 뒤에도 복사실 안에 같은 “복사되는 리듬”이 남아있었어. 기계가 돌지 않는데도, 내 귀 안쪽에서 종이가 넘어가는 감각이 이어지는 것 같았거든. 그리고 그 다음 날 출근했을 때, 사무실 프린터가 아니라 복사실 쪽에서 누군가가 출력한 문서가 책상 위에 얌전히 놓여 있었어. 봉투도 없이, 표지 글씨만 딱 정갈하게 정리된 상태로.

문서를 열어보니, 표지는 분명 우리가 그 주에 새로 만들었던 규정집 초안이었어. 그런데 내가 기억하는 편집본과 문장 몇 줄이 달랐어. 누군가가 “정정”한 내용이 반영돼 있었지. 제일 이상한 건, 그 수정이 들어간 날짜가 어젯밤 11시 43분으로 찍혀 있다는 거야. 나는 그 시간에 복사실에 있었고, 그 시간에 복사기는 멈추지 않았잖아. 나는 그 순간부터, 복사실이 그냥 기계가 있는 공간이 아니라 뭔가가 시간을 다루는 장소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뒤로도 복사기는 종종 저절로 켜졌어. 다만 내가 문을 열기 전에는 항상 미리 조용히 멈춰 있어. 마치 누군가가 “봤다” 싶으면 바로 숨는 것처럼. 지금도 가끔 복사실 문을 닫고 나면,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아. 그리고 제일 소름은, 그 소리를 듣고 난 다음 날이면 사소하게라도 문서가 바뀌어 있다는 걸, 내가 이미 너무 많이 겪고 있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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