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데 모니터가 내 이름만 확대됐어
병원에서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데 모니터가 내 이름만 확대됐어. 처음엔 내 눈이 피곤해서 그런가 싶었는데, 분명히 검사 대기 화면에는 여러 사람 이름이 리스트로 떠 있었거든. 그런데 그 순간, 화면 중앙에 있는 내 이름만 마치 누가 손으로 확대해버린 것처럼 글자가 확 커지더니, 배경이 살짝 어두워지면서 내 이름만 또렷하게 남았어.
나는 그때 채혈하고 나서 한참 기다리던 중이었어. 접수할 때부터 “결과는 2층 채혈 후 검사실에서 확인하고, 전산으로 호출될 거예요”라는 말만 듣고 있었지. 대기실엔 사람들 말소리랑 온도 낮춘 공기, 형광등 소리가 섞여서 계속 울렸고, 모니터는 1초에 한 번씩 화면이 갱신되는 듯했어.
문제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였다는 거야. 내 옆사람은 다른 날짜로 검사받은 사람 같았는데, 그 사람 이름은 그대로 작은 글씨로 유지되고 있었고, 나는 내 이름이 커진 걸 딱 보자마자 등골이 서늘해졌어. 확대된 글자는 마치 “지금”을 알리듯 화면 가운데에 박혀 있었고, 그 아래쪽에는 호출 안내 문구가 바뀌어 있었어. 근데 이상하게도, 안내 문구가 내 이름이랑 같이 또박또박 읽히는 게 아니라, 한 글자 한 글자만 더 진해지는 느낌이었어.
나는 혹시 내가 잘못 본 건가 싶어서 자리에서 한 번 더 확인했지. 근데 시간이 지나도 내 이름만 그대로 큰 글자로 남아 있었어. 대기실에서 누군가 “아, 나 아니네” 하고 웃는 소리도 들렸는데, 그건 화면을 보면서 대충 자기 차례가 아니란 걸 확인하는 거였고, 그 웃음이 끝나기도 전에 내 이름의 글자 크기가 다시 미세하게 커졌다가 멈췄어.
그때 간호사나 직원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야 정상인데, 아무도 호출을 안 하더라. 대신 스피커에서 “검사 접수자분…” 같은 안내 멘트가 기계적으로 한 번 흘러나왔고, 그 멘트 끝부분이 이상하게 끊겼어. 그리고는 모니터 화면이 잠깐 멈칫하더니, 다시 원래대로 작은 리스트 화면으로 돌아왔어. 하지만 내 이름은 리스트에 분명히 있었고, 딱 하나만 시간이 더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어.
나는 괜히 예민하게 굴고 싶지 않아서, 설마 전산이 꼬인 건가 하고 생각했어. 혹시 동명이인이라거나, 내 이름이 예약순서나 화면 갱신 중간에 끼어들어 그렇게 보인 건 아닐까 싶었지. 그런데 그 다음 갱신 때도 똑같이 내 이름이 커졌어. 이번엔 더 짧게, 한두 번 깜빡이듯 확대됐다가 원래 크기로 돌아오더라. 마치 “봤지?” 하고 확인하는 것처럼.
그제야 나는 기다리는 걸 멈추고 접수처 쪽으로 갔어. 직원은 “호출은 스피커로 나갈 텐데요?”라고 하면서 모니터를 확인하더니, 한참 화면을 스크롤했어. 그 표정이 조금 굳는 게 느껴졌는데, 직원이 갑자기 “이름이… 맞아요?”라고 되묻는 말이 들렸어. 나는 “네, 오늘 여기서 검사했어요”라고 했고, 직원은 잠깐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결과가 아직 전산 반영이 안 된 상태인데요”라고 했어.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내 등 뒤에서 모니터가 다시 한 번 바뀌었어. 직원이 바로 화면을 돌려봤는데도, 화면 중앙엔 여전히 내 이름이 크게 떠 있었어. 이번엔 확대된 글씨 아래에 작은 글씨로 ‘확인 필요’ 같은 문구가 덧붙어 있었고, 그 문구는 마치 누군가가 임의로 입력한 것처럼 깔끔하게 정렬돼 있었어. 나는 그 순간 정말로 소름이 돋았어. 전산이 늦는 문제라면 ‘확인 필요’ 같은 게 떠 있을 이유가 없잖아.
직원은 결국 “잠깐만 기다리세요”라고 하고, 자기 자리에서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돌리더라. 나는 의자에 다시 앉아 있었는데, 화면을 계속 볼 수밖에 없었어. 왜냐면 내 이름이 커질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잠깐씩 시선을 보내는 게 보였거든. 근데 정작 호출되는 사람은 없었어. 내 이름만 계속, 내 이름만 크게. 마치 병원이 나를 호출하는 게 아니라, 병원 쪽 어딘가에서 ‘내 정보’를 확인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
몇 분 뒤에야 한 간호사가 내 이름을 실제로 불러줬고, 나는 검사를 다시 확인한다는 말과 함께 결과지를 받았어. 결과지는 내 상태를 설명하는 평범한 종이였고, 내용도 크게 놀랄 만한 건 아니었어.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도 이상하게 생각이 멈추지 않았어. 왜 그 모니터는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내 이름만 그렇게 커지게 했을까. 그날 이후로 나는 병원에서 화면을 볼 때마다, 확대된 이름이 사라지는 타이밍이 사람을 부르는 타이밍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확인을 끝내는 타이밍인지 자꾸 헷갈리더라. 아직도 그 모니터 중앙에 남아 있던 내 글자 크기만 떠올리면, 무언가가 먼저 나를 봤다는 느낌이 남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