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에서 버튼 불빛이 번쩍일 때마다 CCTV가 떠오르는 느낌
엘리베이터에서 버튼 불빛이 번쩍일 때마다 CCTV가 떠오르는 느낌이 있어. 이런 거 잘 안 믿는 편인데, 이상하게도 그 “깜빡” 소리랑 불빛이 켜지는 타이밍이 떠오르면, 그날 하루 내내 머릿속이 똑같은 화면으로 고정돼버려. CCTV를 실제로 본 것도 아니고, 떠올린 건데도 마치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감각만 남아.
처음엔 그냥 내가 피곤해서 그런가 싶었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서 내리려는데, 6층 버튼을 누른 것도 아닌데 갑자기 버튼 불빛이 딱 한 번 번쩍이더라. 그 순간, “딱” 하고 전등이 깜빡이는 것처럼 눈앞이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고, 동시에 엘리베이터 천장 쪽에 달린 작은 돔이 CCTV처럼 보이기 시작했어. 어두운 거울 같은 표면에 내 얼굴이 비치는데, 표정이 좀 굳어 있었던 것도 지금 생각하면 이상해.
그날은 그냥 넘어갔지. 근데 다음 날, 같은 시간대에 다시 탔을 때 또 그랬어. 이번엔 4층 버튼이 번쩍였어. 분명히 나는 7층을 눌렀고, 내가 누른 번호는 계속 켜져 있었는데 4층만 순간적으로 깜빡이면서, 마치 누가 장난치듯 신호를 주는 것처럼 느껴졌어. 엘리베이터는 아무 일도 없이 올라가는데, 내 등 뒤가 서늘해지더라. CCTV 생각이 나는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는데, 그 느낌이 “화면이 켜지는 순간”이랑 똑같아.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어. 버튼 불빛이 번쩍이는 타이밍이 내가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아주 미세하게 “딱 맞춰” 오는 것 같았거든. 늦게 타도, 빨리 타도, 대충 몇 초 차이는 나는데 불빛이 번쩍일 때의 감각은 동일했어. 손바닥에 땀이 나고, 누가 내 등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압박감이 생겨. 엘리베이터는 늘 똑같이 움직이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그 안에서만 시간을 다르게 느꼈어.
그래서 관리실에 물어봤어. “엘리베이터에 카메라 있나요?”라고 그냥 농담처럼. 그랬더니 관리인이 웃으면서 “그런 거 다 있어요. 요즘은 안전 때문에요.”라고 말하더라. 그런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마치 대답을 준비해둔 것처럼 너무 매끄럽게 나오는 게 싫었어. 나도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집에 와서 엘리베이터를 떠올리니까 관리인이 말한 안전이라는 단어가 이상하게도 ‘감시’라는 단어로 바뀌어 들렸어.
그 뒤로부터는, 버튼 불빛이 번쩍일 때마다 내가 하는 행동이 자동으로 정해지는 느낌이 들었어. 예를 들면 번쩍이는 순간에 손이 멈추고, 문이 열리면 무조건 시선을 바닥 쪽으로 내리게 돼.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어. 어쩌다 한 번은 용기 내서 천장 돔을 봤는데, 그때마다 너무 새것처럼 반짝여서 오히려 촌스럽게 느껴졌어. “저게 진짜 카메라라면, 지금도 찍고 있을까?” 같은 생각이 들면서 목이 뻣뻣해지더라.
가장 소름 돋았던 건, 내 스케줄이랑 번쩜이 타이밍이 맞아떨어졌다는 거야. 나는 보통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가면 바로 계단 쪽으로 가. 근데 번쩍일 때마다, 이상하게도 그날만 계단 대신 복도로 한 번 더 돌아가게 됐어. 별거 아닌데, 그게 반복되니까 규칙처럼 느껴졌어. 마치 CCTV 화면을 누군가 보고 있고, 그 누군가가 내 동선을 “다음 장면”으로 유도하는 것 같은 느낌. 내가 선택한 게 맞는지 자꾸 의심이 가더라.
어느 날은, 아예 버튼 불빛이 내 손가락 위치랑 상관없이 번쩍였어. 나는 2층 버튼을 눌렀는데, 5층이 한 번 깜빡이더니 엘리베이터가 잠깐 멈칫했다가 다시 올라갔거든. 정밀하게 멈춘 건 아니고, 사람 귀가 예민하면 알 정도로 아주 잠깐이었어. 그 순간만큼은 진짜로 “화면이 끊겼다가 다시 이어지는” 느낌이었어. 그리고 그 느낌이 들고 나서야, 엘리베이터 내부의 거울 같은 벽면에 내 뒤쪽이 흐릿하게 보였는데, 그 흐릿함이 꼭 사람이 서 있는 자리처럼 남아 있더라. 당연히 확인은 못 했어. 하지만 그 흐릿함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어.
지금도 엘리베이터 버튼이 번쩍이면, 나는 자동으로 숨을 한번 삼켜.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감각은 사라지지 않아. CCTV가 떠오르는 게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기록”이라는 게 실제로 존재한다는 확신처럼 따라붙어. 그리고 웃긴 건, 화면이 떠오르기 시작한 뒤부터 내 행동이 조금씩 바뀐다는 거야. 내가 보고 있던 게 아니라, 내가 보일 때의 내 모습이 먼저 떠오르는 것 같아. 그 불빛이 다음 번에도 깜빡일지, 가끔은 일부러 기다리게 되는데… 기다리고 나면 꼭 같은 생각이 남아. “이번엔 어떤 장면으로 넘어갈 차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