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서 기사님이 내 뒷말에 맞춰 대답해 버렸어
택시에서 기사님이 내 뒷말에 맞춰 대답해 버렸어. 사건이라고 해봤자 별거 아닐 수도 있는데, 내가 “그럴 리 없지”라고 생각하는 순간들이 겹쳐서 지금도 운전대를 잡는 소리만 들어도 등골이 서늘해.
그날은 비가 오락가락하던 평일 저녁이었어. 퇴근하고 집에 가려는데 버스는 끊기고, 앱 택시는 계속 잡히다 말고, 결국 아무거나 잡았지. 기사님이 먼저 “어디까지 가세요?” 묻는 평범한 톤이었고, 나는 뒷좌석에 앉자마자 젖은 우산 물기 털다가 지갑을 찾느라 정신이 없었어.
근데 그때, 내 옆 휴대폰에서 친구랑 통화가 연결돼 있었거든. 이어폰을 빼고 통화 중이었는데, 친구가 장난 섞인 말로 “야 너 오늘 또 그 근처 갈 거지? 거기 사람들 말이 많다며” 이런 소릴 했고, 나는 대충 “아 설마, 그냥 루머지” 하면서 넘겼어. 말은 낮게 했는데, 택시 안이 조용해서 내 목소리가 은근히 크게 들렸던 것 같아.
기사님은 앞만 보고 운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백미러로 한 번 스윽 보더니 “루머는 루머로 끝내는 게 맞죠”라고 말하는 거야. 나는 깜짝 놀라서 “네?” 하고 되물었고, 기사님은 마치 원래 그 말을 듣고 있었다는 듯이 “아까 말씀하신 거요. 거기 말이 많다던데, 그런 건 다 과장이라더라고요”라고 덧붙였어.
나는 순간적으로 착각인가 싶었어. 혹시 기사님이 내 통화 내용을 들은 건가, 아니면 내가 뒷말을 너무 크게 한 건가. 그래서 다시 친구에게 “아니 뭐야, 방금 기사님이 뭐라고 한 거 같지 않냐” 하고 속삭이듯 물었는데, 친구는 “응? 내가 무슨 말 했어? 너 아직 통화 중이야?” 이렇게 받아치더라. 그제야 내가 뒷말이라고 생각했던 게, 오히려 기사님도 들을 만큼 명확하게 나갔던 모양이라고 생각했지.
근데 문제는 그 다음이야. 친구랑 내가 대화하던 내용이 “그 근처”라고만 뭉뚱그려 말한 건데, 기사님이 갑자기 방향을 틀더니 “○○사거리 말하는 거 맞죠? 거기 근처에 오래된 건물 하나 있는데, 거기 사람들 진짜 조심하더라고요”라고 구체적으로 말했어. 나는 그 사거리 이름을 입 밖에 낸 적이 없어. 지도 앱도 켜지 않았고, 기사님이 네비를 보고 하는 말이라 치기엔 너무 정확했어.
나는 더 이상 웃고 넘기기 어려워져서, 통화 버튼을 확인하고 이어폰 줄을 다시 꽂았어. 그리고 친구한테는 “잠깐만, 통화 끝내고 다시 연락할게” 하고 끊어버렸지. 그런데도 기사님은 계속 운전만 하면서, 가끔씩 내 휴대폰 진동이 있는지처럼 시선을 계기판 쪽으로 옮기더라고. 물론 기분 탓일 수 있어. 하지만 그 타이밍이 너무 딱딱 맞았어.
한참을 가다가, 신호대기할 때 기사님이 별 말 없이 미소만 짧게 짓더니 “이제 곧 도착할 겁니다. 오늘은 바람이 좀 세네요”라고 말했어. 사실 그날 바람이 강하지는 않았거든. 유리창 물방울이 천천히 흘러내릴 정도였지. 그런데 기사님 말이 끝나자마자 창밖에서 갑자기 ‘휙’ 하고 바람이 불어왔고, 우산이 차 안에 부딪히는 소리까지 났어. 나는 숨을 삼키고, 기사님을 보려 했는데 그는 이미 앞만 보고 있었어.
도착해서 돈을 내고 내리려는데, 기사님이 마지막으로 “아까 그 얘기, 진짜로 믿을 필요 없어요”라고 한 번 더 말했어. 나는 “네… 근데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묻다가 말았어. 그 질문을 끝까지 꺼내기 전에 기사님이 손을 살짝 들어 계기판 쪽을 가리켰거든. 근데 거기엔 아무것도 안 보였어. 그냥 속도계와 요금 표시뿐. 나는 내려서 문을 닫는 순간, 택시 안에서 들리던 라디오 소리가 아주 낮게 웅— 하고 끊겼어.
지금 생각해도 제일 이상한 건, 내가 그날 친구랑 통화하면서 뒷말을 정말로 ‘확실한 정보’처럼 말한 적이 없었다는 거야. 그냥 “설마” “루머지” 같은 감탄사에 가까웠는데, 기사님은 그 감탄사들을 한 덩어리 이야기로 받아서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대답했어. 그 택시에서 내 입모양이 아니라, 내가 삼킨 생각까지 들린 것 같아서… 그 이후로는 어디를 가든 뒷말을 조심하게 됐어. 그리고 가끔은, 차 안이 조용해질 때 누군가가 내 다음 말을 먼저 준비해 둔 건 아닌지 괜히 확인하게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