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에서 우물 물이 맑아졌다가 갑자기 탁해진 밤
시골집에서 우물 물이 맑아졌다가 갑자기 탁해진 밤. 그날도 별일 없을 줄 알았어. 해가 지고 나서야 동네 우물물을 길어다 쓰는 집들이 하나둘씩 손을 멈추던 때였는데, 우리 집은 아직도 우물을 쓰고 있었거든. 저녁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바깥에서 물 긷는 소리 같은 게 들리더라. 이상하게도 누가 퍼 올리는 것도 아닌데 “철컥” 하고 줄이 당겨지는 소리만 계속 났어.
나는 창문으로 밖을 보다가, 우물 쪽이 유난히 환하게 보이는 걸 봤다. 달빛이 잘 드는 날이면 원래도 희끗하게 보이긴 하는데, 그날은 마치 누군가 그쪽에 비닐을 씌워서 반짝이는 것처럼 맑고 매끈했어. 물 표면도 평소보다 더 투명해 보였고, 우물 속이 깊은데도 바닥이 살짝 비치는 느낌이 들었지. 그래서 아, 누가 우물에 뭔가를 처리했나? 그냥 착각인가? 하고 넘겼는데 그때부터 이상한 일이 시작됐어.
그날 저녁엔 어머니도 유난히 말이 없었어. 평소엔 텃밭 이야기, 날씨 이야기로 거실을 채우던 분인데, 설거지 끝내자마자 곧장 부엌문을 닫더라. 그리고 “내일 아침에 물 떠올 때 뚜껑 제대로 확인해”라고만 말하고는 더는 입을 열지 않았어. 나는 그 말이 잔소리 같아서 그냥 “응” 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한쪽이 비었어. 우물에서 바람이 새는 소리 같은 것도 들렸거든.
밤이 더 깊어지자 소리가 또 났어. 이번엔 줄이 당겨지는 소리랑 같이,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는데 이상한 건 물이 실제로 튀는 흔적이 없다는 거야. 우물가 바닥은 흙이라 발자국이 남아야 하는데, 누가 와서 발을 딛은 흔적도 없었어. 대신 창문 너머로 보이는 우물 테두리 주변만 아주 미세하게 젖어 있었고, 그 젖은 자국이 계속 같은 자리에서만 번졌어.
그러다 새벽 두 시쯤, 물이 갑자기 맑아졌어. 말 그대로 “맑아졌다”는 표현밖에 안 맞아. 원래도 투명하긴 했는데, 그건 맑음이라기보다 깔끔한 회색빛이었거든. 그런데 그 시간부터 물색이 확 바뀌면서, 우물 속이 마치 공기 같은 것으로 채워진 것처럼 보였어. 나는 그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무서웠어. 누군가 일부러 걸러낸 것처럼 정돈된 느낌이었거든.
맑아진 뒤로는 더 이상 소리가 안 나더라. 대신, 우물 입구 쪽에서 아주 조용한 “똑” 소리가 들렸어.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인데, 어디서 떨어지는지 방향이 안 잡혔어. 벽을 타고 오는 소리 같기도 하고, 우물 안에서만 맺히는 소리 같기도 했지. 나는 무의식적으로 밖으로 나갈 뻔했는데, 어머니가 부엌에서 갑자기 내 이름을 불렀어. “가지 마. 지금은 절대.” 그 목소리가 너무 단단해서, 나도 모르게 발이 굳었어.
그런데 그 다음이 진짜였어. 새벽 세 시가 조금 넘었을 때, 우물 속 물이 갑자기 탁해지기 시작했어. 처음엔 연무처럼 흐려졌다가, 금방 회색이 진해지더니, 마치 누군가 물을 한 번에 휘저은 것처럼 와글와글 흔들렸어. 그 흔들림이 물 표면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우물 안쪽 벽을 타고 올라오는 느낌이었어. 그리고 그 탁함이 단지 흙탕물이 아니라, 무언가를 풀어놓은 듯한 결이 보였다고 해야 할까. 거품처럼 보이다가도 금방 가라앉았고, 다시 번졌어.
나는 다시 창문으로 들여다보다가, 그때야 뭔가가 움직이는 걸 봤어. 우물 바닥에서 똑같은 모양이 올라왔다 내려갔다 했거든. 물고기처럼 보이진 않았고, 그렇다고 장난감이나 쓰레기 같은 느낌도 아니었어. 더 정확히 말하면 “움직인다는 표현” 자체가 틀릴 정도로, 우물 속이 잠깐 형태를 바꾸는 것 같았어. 어머니는 그걸 보지 않았을까, 아니면 보고도 모르는 척한 걸까. 어머니는 문턱을 넘기지 말라고 했고, 나는 그대로 물러났어. 그때부터 집 안 공기가 갑자기 차가워졌거든.
새벽이 밝아지면서 탁함은 사라지긴 했어. 그런데 물이 다시 맑아진 게 아니라, “겉만” 맑아진 느낌이었어. 손으로 만져보면 차갑고 깨끗한데, 눈으로 보면 뭔가가 자꾸 뒤에서 밀려오는 것 같았지. 어머니는 아침이 되자 우물 뚜껑을 닫고, 물을 떠오르지 말라고 했어. 그날 이후로 우리가 우물물을 다시 쓰기까지는 꽤 오래 걸렸어. 마치 물이 허락해주기 전까진 아무도 손대지 말아야 한다는 분위기처럼.
지금 생각해도 그 밤은 자꾸 같은 장면으로 떠올라. 맑아지던 순간엔 이상하게 “좋아졌다”는 감정이 먼저 들었는데, 탁해질 때는 그 감정이 바로 뒤집혔어. 그래서 더 소름이 돋는 건, 우물 물이 깨끗해지는 데엔 시간이 걸렸는데, 무언가가 섞이는 건 한 순간이었다는 거야. 그날 이후로 우리 집은 우물 쪽을 볼 때마다, 눈으로 먼저 확인하려는 마음이 생기면 꼭 무언가가 먼저 흐려진다는 걸 알게 됐어.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 새벽에 우물에서 들리던 “철컥” 소리가 누구 손에 달린 줄이었는지 생각하면 잠이 잘 안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