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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주차장 벽에 누가 손가락으로 날짜를 새긴 흔적

2026-08-26 04:29:12 조회 13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지하주차장 벽에 누가 손가락으로 날짜를 새긴 흔적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누가 장난친 거겠지”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게 너무 또렷했어. 콘크리트 표면에 얇게 패인 선들이 날짜처럼 정렬돼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까 숫자 사이마다 손톱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문지르듯 쓸린 결이 남아 있더라. 새로 칠한 벽도 아니고, 준공한 지 꽤 된 구역이었거든.

나는 관리사무소에서 야간 근무를 가끔 서는데, 그날은 엘리베이터 점검 때문에 지하 2층을 내려갔어. 주차 자리 끝쪽, 출입문이랑 연결된 벽면. 불이 반쯤 어두운 상태라서 처음엔 그냥 먼지 자국인 줄 알았는데, 손전등 비추자마자 날짜가 눈에 걸렸어. 2020.03.17 이런 식으로 점처럼 찍힌 게 아니라, 천천히 긁어낸 것처럼 선이 이어져 있었지.

문제는 그 다음이야. 날짜가 한 개가 아니었어. 그 옆으로 조금씩 위아래로 어긋난 채로 비슷한 형식이 반복돼 있었거든. 202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정확히는 내가 본 것만도 네다섯 줄이 있었어. 숫자 모양이 다 똑같진 않더라. 어떤 건 굵게, 어떤 건 가늘게 패여 있었는데 그게 오히려 “같은 사람이 계속 같은 방식으로 했구나”라는 느낌을 줬어.

나는 바로 사진 찍고 관리팀에 연락했지. “벽에 손으로 긁어서 날짜 새긴 흔적이 있어요”라고. 그런데 돌아온 답이 좀 이상했어. 관리팀 쪽에서 “그거 예전에 한 번 보였던 거 같은데, 그냥 오래된 낙서일 거예요. 다시 올라오면 보수하겠습니다”라고 하더라. 낙서라기엔 너무 시간표 같았고, 무엇보다 벽 표면이 손으로 계속 문질러진 흔적이라기엔 깊이가 일정했어.

그날 이후로 나는 생각이 계속 꼬였어. 지하주차장 출입은 대부분 카드키고, 엘리베이터도 제한 시간 걸려 있거든. CCTV는 있는데, 그 구역은 카메라 각도가 약해서 사람 얼굴이 잘 안 잡히는 편이야. 그래서 관리사무소에서도 “보이면 막으면 된다”는 식으로 넘어가는 게 많았거든. 근데 날짜가 있으면, 그 날짜는 누군가의 “기록”이잖아. 단순한 낙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시간을 세고 있다는 느낌.

며칠 뒤, 나는 다시 내려가서 벽을 자세히 봤어. 그때는 일부 숫자 사이가 더 선명해져 있더라. 놀랍게도 “새로 긁은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었어. 물론 공사나 누수로 벽이 부서진 걸 수도 있지만, 그건 콘크리트가 벗겨지는 방향이랑 결이 달랐어. 손가락이 문지른 결처럼 쓸리며 생긴 선은 매끈하지 않고, 아주 얇은 가루가 쌓인 것처럼 보였거든.

그래서 이번엔 관리사무소 말만 믿지 않고, 내 쪽에서 확인하기로 했지. 야간에 입출차 기록을 뽑아보려는데, 문제는 그 날짜들이랑 실제 출입 시간이 딱 맞물리진 않는다는 거야. 누가 그날 밤에 카드를 찍었는지 확인해도, 그 벽을 만질 동선이 겹치는 사람이 없었어. 혹시 외부인이 침입한 걸까 싶은데, 그 경우엔 보통 다른 흔적도 남잖아. 누가 남긴 냄새나 발자국 같은 것들. 근데 그 구역은 늘 비어 있었고, 벽만 계속 그렇게 남아 있었어.

한 번은 물어보려고 직접 내려가서, 출입문 옆 감지 센서 쪽을 봤는데, 이상하게 감지기 근처가 유난히 매끈했어. 누가 오래 만지면 손자국처럼 닳는 곳이 있잖아? 그런데 그건 그냥 닳은 정도가 아니라, 닦아낸 것처럼 보였어. 마치 누군가가 “여기서만 흔적이 남아서는 안 된다”고 아는 사람처럼. 그래서 더 헷갈렸어. 날짜는 벽에 남기면서, 다른 건 지워버리는 사람.

결국 나는 CCTV를 요청해서 시간을 역으로 맞춰봤어. 영상은 10분 단위로 끊겨서, 날짜가 새겨진 날로 보이는 시간대 근처를 여러 번 돌려봤는데, 특정 구간에서 화면이 잠깐 흔들리더라. 딱 “그 순간”만. 누가 일부러 가린 건지, 아니면 장비가 흔들린 건지 애매했어. 다만 그 흔들림이 “누군가가 지나갔기 때문”처럼 느껴질 정도로, 다음 프레임에서 화면이 안정됐고, 그 벽 쪽은 여전히 비어 있었어.

그리고 오늘도, 나는 퇴근 전에 그 벽을 한 번씩 확인해. 누구는 그냥 오래된 낙서라고 치부하겠지. 하지만 날짜가 누적된 흔적이 누군가의 마음처럼 계속 이어지는 건, 솔직히 납득이 잘 안 돼. 벽에 남은 숫자들은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데, 그건 누가 남겼는지보다 “왜 굳이 그 방식을 고집했는지”가 더 무섭더라. 손가락 끝의 압력이, 계속 같은 위치를 찾는 것 같아서… 어느 날 그 날짜가 내 일정이랑 맞아떨어질까 봐, 나도 모르게 숨을 고르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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