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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에서 기사님이 라디오 볼륨을 줄이자마자 속도가 빨라졌어

2026-08-27 08:29:11 조회 10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택시에서 기사님이 라디오 볼륨을 줄이자마자 속도가 빨라졌어. 처음엔 그냥 내 기분 탓인 줄 알았는데, 그 순간부터 이상하게 마음이 쿵 내려앉더라. 무슨 느낌인지 말로 설명이 잘 안 되는데, 차 안 공기가 갑자기 얇아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날 비가 조금 왔고, 나는 늦은 밤이라 대충 아무 데나 가자고 했어. 목적지가 정해져 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집에 빨리 들어가고 싶었지. 기사님은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손으로 라디오 다이얼을 톡톡 돌리더니, 볼륨을 확 낮추셨어. 라디오 아나운서 목소리가 뒤로 밀려나는 순간, 차가 미세하게 튀듯이 출발 속도가 붙었어.

처음엔 신호에서 막 출발하려는 타이밍이었나 싶었는데, 신호도 아니었고 도로도 막히는 구간이 아니었거든. 오히려 앞차들 흐름이 느렸는데 우리 택시는 갑자기 앞을 더 공격적으로 파고들기 시작했어. 안전거리도 대충 유지하던 것 같고, 기사님 표정은 평소처럼 무표정인데 눈만 더 또렷해진 느낌이랄까.

라디오 소리가 작아지면서 차 안이 좀 조용해졌잖아. 그 조용함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엔진 소리 말고 다른 ‘소리’를 들었어. 와이퍼가 닿는 플라스틱 마찰음도 아니고, 단순한 잡음 같지도 않았고. 정확히 말하면, 라디오가 줄어든 자리에 뭔가가 들어차는 느낌이었어. 그래서 더 멍해졌고, 휴대폰 화면을 계속 켰다 껐다 했지.

기사님이 내 목적지를 다시 확인하더니, “여기서 한 번만 더 빠르게 가면…” 하고 말을 흐렸어. 그 말투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무섭더라. 마치 이미 계산해 둔 사람처럼. 나는 “네, 괜찮아요” 하고 웃으면서 넘겼는데, 속으로는 계속 생각했어. 방금 볼륨 줄였는데 왜 바로 속도가 붙지? 우연이면 너무 티가 나지 않나?

그러다 한 번, 신호에 걸려 섰을 때도 속도는 그대로였어. 기사님은 멍하니 앞만 보다가, 또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를 잠깐만 더 낮추려고 손을 뻗었거든. 그 동작이 한 박자 느린 게 아니라, 딱 ‘버튼 누르듯’ 타이밍이 맞는 느낌이었어. 그리고 차가 다음 신호로 넘어가자마자 속도가 훅 올라가더라. 그때 내가 진짜로 식은땀이 났어.

나는 겁이 나서 기사님께 “기사님, 여기 길 좀… 막히지 않아요?” 하고 물었어. 기사님은 “아뇨. 지금이 딱 좋아요”라고 짧게 답했어. 좋아요라는 말이, 교통이 좋아요라는 뜻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인지 내가 구분이 안 됐어. 그리고 대답이 너무 빨랐어.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정답을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그 후로 차가 달리는 방향이 미묘하게 달랐어. 내 목적지는 원래 직선으로 가면 도로가 편한데, 기사님은 약간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거든. 네비도 확인하지 않는 것 같았고, 눈은 계속 도로 바닥의 선을 쫓는 듯했어. 나는 그때 깨달았어. 내가 목적지를 말한 순간부터, 기사님은 ‘어떤 시점’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 아닐까. 라디오 볼륨을 줄이는 건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어떤 걸 듣기 위한 장치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막판에 나는 혹시라도 내가 잘못 탄 건가 싶어서 주소를 다시 확인했는데, 택시 앱에는 이미 몇 분 이상 다른 경로로 잡혀 있더라. 게다가 내 전화가 이상하게 계속 먹통이 됐어. 화면은 켜지는데 통화 연결이 안 되고, 와이파이는 잡히는데 데이터가 안 붙는 느낌. 그래서 더 불안해졌지. 기사님은 내 불안함을 못 본 건지, 본 척을 안 한 건지 계속 앞만 보면서 운전했어.

그리고 도착하기 직전, 기사님이 라디오를 아예 꺼 버렸어. 라디오 소리가 사라지자마자 차 안에서 가장 먼저 들린 게 있었는데, 그건 엔진이나 바퀴 소리가 아니라 내 숨소리였어. 너무 크게 들려서 깜짝 놀랐거든. 그 다음엔 갑자기 차가 아주 부드럽게 감속했어. 마치 누군가가 ‘멈춤’을 내려 준 것처럼. 문을 열고 내릴 때, 기사님이 아주 낮은 목소리로 한마디만 했어. “볼륨 올리면 안 돼.”

그 말 이후로 지금까지도, 택시 타면 괜히 라디오를 끄는 기사님 계신지 체크하게 돼. 볼륨이랑 속도랑 무슨 상관이 있겠냐고 스스로 타이르는데도, 그날 내 귀에 남은 공백이 지워지질 않아. 아직도 가끔 생각해. 라디오 소리를 줄인 순간, 차가 달린 게 아니라 ‘뭔가가 내 옆에서 움직인 건 아닐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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