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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진료실 문을 열기 전부터 내 이름이 반복됐다

2026-08-29 20:29:11 조회 11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병원에서 진료실 문을 열기 전부터 내 이름이 반복됐다. 처음엔 내가 실수로 다른 사람 호출을 들은 건가 싶었는데, 그 소리가 너무 또렷했고, 무엇보다도 “나”를 부르는 발음이 내 귀에 딱 박혔다. 복도 끝에서부터 들려오던 목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더니, 진료실 앞에 딱 섰을 때는 마치 내 등 뒤에서 속삭이듯 반복됐다.

그날은 감기 증상 때문에 동네 내과를 갔어. 접수는 금방 끝났고, 안내문에 적힌 번호대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기실에서 의자에 앉아 있는데도 내 이름이 들렸다. 간호사 호출 방송처럼 또박또박 들렸고, 사람들 시선이 몇 번씩 나를 훑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냥 “아, 같은 이름 누가 있나?” 하고 넘기려 했는데, 그때부터 이상하게도 내 이름이 호출되는 간격이 내가 숨 쉬는 템포랑 비슷해지는 것 같았다.

잠깐 화장실 다녀오려고 일어나서 복도로 나갔는데, 복도 벽 쪽에서 소리가 났다. 이어폰도 없는데 누가 확성기처럼 내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는 거였다. “OOO님, OOO님, OOO님…” 같은 말인데도 매번 끝이 살짝 달랐다. 마지막 음절이 마치 누군가 장난치듯, 웃는 것처럼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갔다. 나는 잠깐 멈췄고, 그 소리도 내 걸음에 맞춰 멈칫하는 것처럼 끊겼다.

진료실 문 앞에 도착했을 때는 더 노골적이었다. 손잡이를 잡기 전에 이미 목소리가 시작됐다. 문 밖에서 내 이름이 들리는 건 이해할 수 있어. 누가 문 안에서 부르는 경우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 소리는 문을 넘어오는 방향이 아니었다. 문을 열면 내 얼굴로 공기가 들어올 것 같은 자리에서, 마치 문이 아니라 공기 속에서 울리는 느낌이었어. 그래서 문을 열기 직전까지도 손이 멈췄다.

“혹시 제가 부르시나요?”라고 내가 먼저 말해버렸는데, 대답 대신 같은 이름이 더 빠르게 반복됐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이 하얘졌다. 병원은 원래 조용한 곳인데, 이상하게도 그 호출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것 같았다. 발소리도 줄어든 것처럼 멀어지고, 다른 환자들이 있는지조차 체감이 흐릿했다. 나는 문을 열면서도 마음속으로 “장난 아니었으면 좋겠다”라고 중얼거렸다.

진료실 안에는 의사 선생님이 앉아 계셨고, 책상 위에는 종이 몇 장이 정리돼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내가 들어오기도 전에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내 입이 열리기 전에, 선생님이 물어보기 전에, 반대로 나는 이미 들은 소리를 다시 들어야만 했다. 책상 옆 벽시계 소리와 섞이듯 “OOO님”이 반복되는데, 이상하게도 그 소리가 선생님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은 내 차트를 넘기고 있었고, 나는 그걸 보는 순간 더 헷갈렸다. 차트 위에는 내 이름과 오늘 날짜가 적혀 있었거든.

선생님이 “어디가 불편하세요?”라고 물었을 때, 나는 반사적으로 “문 열기 전에 계속 제 이름이 들렸어요”라고 말하려 했다. 근데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다가 멈췄어. 선생님 표정이 아주 잠깐 굳는 게 느껴졌는데, 그 굳음이 불친절한 게 아니라… 확인하는 표정 같았거든. 마치 내가 이상한 걸 봤다는 걸 알고, 동시에 그 사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는 얼굴. 선생님은 잠깐 호흡을 고르고는 “오늘 접수하신 분이 맞죠?”라고만 물었다.

그때부터 진짜로 이상해졌다. 처방전을 받으면서도 계속 같은 이름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병원 밖으로 나와서도, 길을 걷는데도,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데도 “OOO님”이 들렸다. 이어폰을 꽂은 적도 없고, 통화도 없었는데 말이야. 나는 내가 미친 건가 싶어서 핸드폰 알림을 확인했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집에 돌아와서 내 이름 철자를 다시 검색해봤어. 그런데 이상한 문구가 떠올랐지. 그 병원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진료실 안내 시스템 점검으로 일부 호출이 지연될 수 있습니다”라는 글이 있었는데, 시간이랑 날짜가 딱 그날이랑 맞물려 있었어.

그래서 더 무서웠다. 점검 때문에 오류가 났다는 건 이해해. 그런데 내 이름이 단순히 잘못 호출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어. 문을 열기 전부터, 내가 문 앞에 서는 순간까지, 그 반복이 타이밍을 정확히 맞췄거든. 마치 누군가 진료실 안의 사람을 부른 게 아니라, 진료실 밖의 나를 “확인”한 것 같았다. 처방약 먹고 나서도 찝찝함은 가라앉지 않았고, 지금도 어떤 날은 복도에서 발소리만 들으면 그 이름의 리듬이 떠올라.

아마 그날 이후로는, 병원에서 어디를 가든 문을 열기 전에 잠깐 멈추게 됐어. 손잡이를 잡기 전 공기가 달라지는 걸 느끼거든. 그리고 아주 가끔, 정말 아주 가끔… 문이 열리기도 전에 내 이름이 한 번만 또렷하게 울려. 그때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그냥 진료실 문을 천천히 닫아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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