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에서 부엌 가스불이 켜진 적이 없는데 켜져 있었다
시골집에서 부엌 가스불이 켜진 적이 없는데 켜져 있었다. 그날도 원래대로면 밤이 되면 불은 전부 꺼져 있어야 했고, 무엇보다 우리 집 가스는 성격이 좀 까다로워서 내가 어릴 때부터 “부엌 불은 습관적으로 건드리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거든. 근데 그날은… 내가 손도 안 댔는데도, 부엌 쪽에서 아주 또렷하게 불이 붙은 소리가 났다. 딱 “딱” 하고 점화되는 느낌, 그리고 곧이어 파란 불이 은근하게 번지는 게 창문으로도 보였다.
사건은 내가 동생이랑 같이 잠깐 내려와서 짐 정리하던 저녁이었다. 낮 동안은 날씨가 좋아서 창문도 열어두었고, 부엌 쪽 문은 반쯤만 닫아둔 상태였어. 그래서 더 이상했어. 불이 켜지는 건 연료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집은 오래전부터 가스통 교체한 뒤에도 “부엌 가스불은 잘 안 쓰는 편”이라 거의 손대지 않았거든. 특히 우리 어머니가 외출하거나 잠들기 전에 부엌 밸브를 꼭 한번 확인하고 가는 스타일이라, 누가 몰래 했을 가능성도 낮았다.
그런데 내가 소리 낸 것 같진 않는데, 갑자기 등 뒤가 서늘해지더라. 부엌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 같은 게 들렸고, 이어서 낮은 불꽃 소리. 순간적으로 “설마” 하고 부엌 쪽으로 걸어갔는데, 바닥에 있던 신문지가 조금만 흔들려 있었다. 불이 켜져 있는 걸 확인하는 순간, 정작 나는 가스레인지 앞에 서는 게 아니라 부엌 문턱에서 멈춰 섰어. 왜냐면 불이 켜진 방식이 너무 이상했거든. 보통은 손잡이를 돌리면서 동시에 점화가 되는데, 그때는 누가 손을 댄 흔적이 아니라 그냥 이미 켜져 있는 상태처럼 보였어.
불꽃은 대놓고 크게 타오르지 않았지만, 아주 안정적으로 파랗게 유지되고 있었어. 손잡이 표시도 중간쯤이 아니라, 딱 “점화가 성공한 다음 상태” 같은 위치. 나는 반사적으로 가스레인지 쪽으로 손을 뻗으려다 멈췄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 부엌 안 공기가 더 차가워진 느낌이 들었거든. 보일러 연통도 닫혀 있었고, 창문도 대체로 닫혀 있었는데, 불이 켜져 있는데도 공기가 더 차가운 것처럼 느껴져서 손이 굳었다.
동생은 거실에서 “뭐야, 왜 그래?” 하고 불렀는데, 나는 그냥 “부엌 불 켜졌어”라고만 말했어. 동생도 당연히 놀랐고, 바로 부엌으로 뛰어왔지. 근데 동생 표정이 더 굳더라. 동생이 말하길, “아까 네가 손도 안 댔는데 왜 이렇게… 누가 켠 거 아니야?”라고. 둘 다 서로 눈을 봤는데, 그 눈빛이 보통 장난 칠 때랑 달랐어. 누가 먼저 확인하겠다고 나서지도 못하고, 그냥 불꽃만 계속 보고 있는 거야.
그래서 내가 손잡이를 잠그려고 했는데, 그 순간 가스레인지 쪽에서 미세하게 “틱” 하는 소리가 났다. 점화장치가 아니라, 어딘가가 스스로 닫히는 소리 같았어. 그리고 불꽃이 아주 조금 흔들리더니, 마치 누가 “아, 됐다”는 듯이 금방 잦아들었다. 우리가 숨을 삼킨 상태에서, 불꽃이 완전히 꺼지기까지 대략 몇 초밖에 안 걸렸는데도, 그 짧은 시간 동안 부엌은 이상하게도 더 조용해졌어. 냉장고 소리도 평소보다 낮게 들리고, 외부에서 들리던 바람소리까지 뚝 끊긴 느낌.
불이 꺼진 뒤에야 우리는 본격적으로 주변을 확인했어. 부엌 밑에 있던 가스통 연결부, 혹시 새는 곳은 없는지, 밸브가 제대로 잠겨 있는지. 그런데 밸브는 정상 범위에서 잠겨 있었고, 연결 호스도 꼬여 있거나 손댄 자국이 없었어. 더 웃긴 건, 가스불이 켜졌던 경로가 “우연히 스위치를 건드린” 흔적이 아니라는 점이야. 손잡이 위치가 딱 누가 의도적으로 맞춰놓고 떠난 것 같았거든. 그렇다고 우리가 방금 전까지 부엌 쪽에 발을 들인 게 없었냐 하면, 그건 아니지만… 최소한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어. 손잡이를 돌리면서 점화할 정도의 행동은 분명 없었거든.
그날 밤이 제일 이상했다. 우리는 불이 켜졌다는 걸 서로 확인했지만, “그냥 가스가 자동으로 잘못 켜진 거 아닐까” 같은 말은 끝내 못 나왔어. 우리 집 가스는 자동 점화가 아니라, 점화버튼을 누르거나 손으로 돌려야 켜지는 구조였거든. 그런데 불이 켜진 순간에는 점화 버튼을 누르는 소리도, 손잡이를 돌리는 느낌도 없었어. 대신 창문 틈으로 보이던 불이 너무 또렷해서, 내가 더 무서웠던 건 ‘고장’이라는 단어보다 ‘누군가가 보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 때문이었어.
다음 날 아침, 어머니가 부엌에 들어오자마자 가스레인지 쪽을 먼저 확인하셨어. 평소에도 늘 확인하는 분이긴 한데, 그날은 표정이 조금 굳더라. 그리고 한마디를 하셨어. “어제 밤에 부엌에서 불 켜진 적 있어?”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난 말이 안 나왔어. 동생도 똑같이 멍해졌고. 어머니는 “꿈을 꿨다”는 식으로 얼버무리셨지만, 말투가 평소랑 달랐어. 그분은 꿈 얘기를 잘 안 하시는 분이거든.
그 뒤로 우리는 부엌 가스레인지 주변을 더 조심하게 됐어. 밸브를 확인하는 건 기본이고, 밤에는 불끄기보다도 “아무것도 남기지 않기”를 더 신경 쓰게 됐지. 근데 신기한 건, 그날 이후로도 가끔 아주 짧게, 정말 짧게만 부엌 쪽에서 공기 흐르는 소리가 났다는 거야. 불이 다시 켜진 건 없었지만, 마치 누가 촛불을 껐다가 “아니, 잠깐만” 하고 다시 손을 댄 것 같은 느낌. 시골집은 원래 소리가 많다고들 하지만, 그날의 파란 불꽃은 아직도 눈앞에 남아 있어… 켜진 적이 없던 곳에서, 누군가 먼저 불을 확인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