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로 받은 가습기에서 물이 아니라 기포가 먼저 올라왔다
중고거래로 받은 가습기에서 물이 아니라 기포가 먼저 올라왔다. 처음엔 진짜 별일 아닌 줄 알았어. 택배 열고 작동 버튼만 누르면 당연히 물이 먼저 “찰랑”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었는데, 나는 버튼 누르자마자 물소리보다 먼저 이상한 게 들렸거든. 딱, 보글보글… 마치 무언가가 안에서 이미 끓고 있다가, 그 열을 식히려는 것처럼.
거래는 동네 중고앱에서 했고, 판매자 말로는 “쓰다 보니 필요 없어져서 판매”였어. 사진도 깔끔했고, 구성품도 전부 있었어. 다만 내가 확인을 대충 한 건 맞아. 솔직히 가습기는 소모품처럼 생각해서, 외관에만 초점을 맞췄거든. 집에 와서 구성품을 닦고 물통을 채우는 순간, 나는 이상하게 배수구 쪽에서 잔향 같은 걸 느꼈어. 물비린내라기보단… 오래된 플라스틱이 젖은 냄새? 그때는 그냥 예민한가 싶었는데.
물통에 정제수 넣고, 필터랑 분무부를 조립한 다음 전원 버튼을 눌렀어. 그런데 “우웅” 하는 가동음이 시작되기도 전에, 투명한 물통 쪽에서 기포가 먼저 치솟더라고. 물이 위로 올라오는 게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동그란 기포가 계속 생겨나면서 금방 위로 퍼졌어. 마치 수조 바닥에 공기방울을 넣어둔 것처럼 일정한 속도로.
처음엔 기포가 생기는 게 원래 그런 건가 싶어서 1~2분 정도 멍하니 지켜봤어. 하지만 생각보다 너무 빨랐고, 기포 크기도 비슷했어. 물이 “끓는” 느낌이라기엔 온도 표시도 없고, 뜨거워지지도 않았는데, 대신 기포가 먼저 올라오니까 마음이 이상하게 굳더라. 물이 없거나 반대로 공기가 먼저 들어간 거면, 보글거림이 아니라 분무가 먼저 나오지 않나? 나는 자꾸 상식이랑 다른 방향으로 굴러가는 걸 보고 있자니 손끝이 차가워졌어.
그래서 전원을 끄고 다시 물통을 비웠어. 물은 생각보다 깨끗했는데, 바닥 쪽에 얇게 끈적이는 막 같은 게 남아 있더라. 세정제를 써서 한 번 더 씻고 조립을 다시 했는데도, 다음에 켜자마자 똑같이 기포가 먼저 올라왔어. 이번엔 내가 가까이서 봤거든. 분무부 근처에서 기포가 시작되는 게 아니라, 물통 전체에 거의 동시에 올라오는 느낌. 마치 내부에 기포를 뿜는 ‘무언가’가 이미 자리 잡은 것처럼.
혹시 필터가 오래돼서 막히거나, 물때 때문에 생기는 거 아니냐고 스스로를 설득했어. 그래서 아예 필터를 새 걸로 바꾸려고 했는데, 문제는 필터를 빼는 순간이었어. 조립이 분리되면서 작은 물방울이 떨어졌고, 그 방울이 떨어지는 자리에 하얀 얼룩이 번졌어. 물때 같기도 했는데, 얼룩이 유난히 ‘균일’했어. 손으로 문지르니 물때가 아니라 뭔가가 살짝 남아있는 느낌이 들었고, 냄새도 더 진해졌어. 그때부터는 “중고라서 위생이 좀…” 정도로 생각하면 안 되겠다 싶더라.
판매자한테 바로 연락했는데, 답이 좀 뜨뜻미지근했어. “가습기 내부에서 가끔 공기방울이 올라올 수 있어요. 분무될 때 자연스러울 수도 있고요.” 라는 식으로. 그 말을 듣는데 기분이 더 상했어. 내가 본 건 자연스러운 정도가 아니었거든. 그리고 무엇보다, 분무는 생각보다 약했어. 기포는 먼저, 분무는 늦게. 보글보글 하다가 결국엔 ‘정상 분무’가 잘 안 됐고, 그 상태에서 계속 돌리면 뭔가가 더 엉키는 것 같은 소리가 났어. 나는 안전하다고 믿고 싶어서 멈췄고, 그 뒤로는 사용을 중단했어.
결국 나는 다시 분해해서 조용히 관찰을 했어. 분무부를 자세히 보니 내부 표면에 미세하게 검은 점들이 있었고, 그게 물때처럼 벗겨지는 게 아니라 얇게 붙어 있는 느낌이었어. 물로만 세척해서 해결될 종류가 아닌 것 같았지. 여기서 내가 떠올린 게 하나 있어. 판매자가 “쓰다 보니 필요 없어졌어요”라고 했는데, 그럼 왜 갑자기 “기능 이상”이 아니라 “처리 흔적”이 없는 상태로 다시 나왔을까. 보통 중고로 내놓을 땐 청소를 꽤 하잖아. 그런데 이건 청소가 덜 된 정도가 아니라, 누군가가 잠깐 돌려보고 포장한 것 같았거든.
나는 지금도 가끔 생각해. 혹시 누군가가 물통에 물을 넣기 전에, 이미 뭔가를 넣어놨던 건 아닐까. 얼핏 상상하면 너무 불쾌해지니까 자세히는 안 적겠는데, 분명한 건 “물”이 들어와서 반응이 시작된 게 아니라, 기포가 먼저 ‘행동’했다는 거야. 그리고 그 기포가 단순한 공기방울이 아니라, 특정 지점이나 방향 없이 온통 퍼졌다는 점.
어떤 물건이든, 처음 작동에서 제일 먼저 보여주는 게 그 물건의 상태잖아. 그래서 더 찝찝해. 물이 아니라 기포가 먼저 올라오던 순간, 나는 아직도 그게 단순한 결함인지, 누군가가 숨겨둔 흔적인지 확신을 못 내리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