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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룸에서 새벽에 창문에 붙은 종이가 젖어 있었다

2026-08-30 12:29:09 조회 10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원룸에서 새벽에 창문에 붙은 종이가 젖어 있었다. 처음엔 그냥 습기 때문인가 보다 했는데, 그 종이는 분명 누군가가 안쪽에서 붙인 것처럼 정확한 높이에 붙어 있었고, 가장자리만 번들번들하게 젖어 있어서 더 이상했다.

사건은 새벽 두 시쯤부터였던 것 같아. 잠이 얕게 깔려 있을 때, 창문 쪽에서 아주 미세한 소리가 났다. ‘톡’ 하고 한 번, 그 다음엔 종이가 살짝 눌렸다가 풀리는 것 같은 소리. 베란다도 없는 구조라 창문은 곧바로 방 한가운데로 열려 있어서, 나는 반사적으로 커튼을 살짝 젖혔다.

그때 보인 게 창문에 붙은 작은 종이였다. A4를 찢은 것처럼 반듯하지는 않았지만, 글씨가 적힌 면이 안쪽을 향해 붙어 있었고, 종이 끝부분은 물먹은 수건처럼 축 처져 있었다. 이상하게도 비가 오는 날도 아니었고, 창문 틈으로 물이 들어올 일도 없었다. 그래서 더 싫은 생각이 들었다. “누가 여기 와서 붙이고 갔나?”

나는 종이를 떼려고 손을 뻗었는데, 그 순간 손끝에 차가운 감촉이 확 올라왔다. 물이 묻은 정도가 아니라, 종이 자체가 젖어 있는 게 아니라 ‘어떤 액체에 닿았다가 마른’ 느낌이랄까. 눌린 자국이 남아 있어서, 누군가가 바깥에서가 아니라 이쪽 방향으로 눌러 붙였다는 인상이 강했다. 종이를 떼자 얇은 접착 흔적이 손바닥에 남았다.

글씨는 대충 이런 식이었다. “새벽에 조용히 들어오지 마. 네가 듣는 건 네가 아니라, 네 방으로 들어오는 거야.” 문장이 이상해서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하지만 글씨가 너무 또박또박했고, 종이 모서리가 젖은 채로 고정되어 있어서 누군가가 ‘지금 당장’ 이걸 전달하려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네가 듣는 건’이라는 대목이 특히 신경 쓰였다. 나는 원룸에서 혼자 살았고, 밤이면 옆방 사람 발자국도 잘 안 들리는 편이었다.

그날 새벽 내내 잠이 안 왔다. 창문을 닫아도 창문 틈에서 찬 공기가 새는 기분이었고, 방 안의 소리들이 더 크게 느껴졌다. 티비를 켜도 자꾸 딱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가, 어느 순간에는 그게 그냥 내 귀가 과민해진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새벽 세 시쯤, 다시 ‘톡’ 소리가 났다. 이번엔 창문이 아니라 현관 쪽에서. 문 손잡이를 잡아당긴 흔적처럼 아주 짧고 무거운 소리였다.

나는 숨을 죽이고 움직이지 않았다. 혹시나 나가서 확인했다가 더 크게 번질까 봐, 그냥 문 앞에서 아무도 없다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없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소리는 금방 끝났다. 끝났는데, 대신 방 안 공기가 한 번 더 내려앉는 것처럼 느껴졌다. 창문 쪽에 붙어 있던 종이가 이제는 신기루처럼 멀어지는 느낌이 들면서도, 동시에 그 문장 하나가 머리 속에서 계속 반복됐다.

아침이 되자 나는 종이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었다. 누가 장난을 친 거라면 사진을 찍는 순간 ‘증거’가 되니까, 내가 미친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싶었달까. 그런데 이상한 일이 또 있었다. 종이 사진을 찍고 확인하니까, 종이의 가장자리 젖은 부분이 내 화면에서는 더 흐리게 보였다. 실제로는 글씨가 또렷했는데, 사진만 보면 마치 글씨 주변이 번지는 것처럼 보였다. 조명 각도 때문일 수도 있지만, 솔직히 설명이 안 됐다.

관리실에 물어볼까 하다가도, 이 동네가 워낙 대놓고 말하면 소문이 쉽게 번지는 편이라 그냥 넘기기로 했다. 대신 다음 날 밤엔 창문 주변을 테이프로 한 번 더 확인하고, 문 손잡이에도 얇게 표시를 해뒀다. 그리고 그다음 새벽, 이번엔 종이가 아니라 아주 얇은 비닐 조각이 창문 틈에 끼어 있었다. 젖어 있진 않았는데, 표면이 손으로 만지면 미끌미끌한 느낌이 들었다. 비닐 조각 위에 작은 글씨가 보였다. “다음엔 네가 먼저 확인할 거지?”

그때부터 나는 ‘누가 붙였냐’보다 ‘왜 굳이 확인하게 만들었냐’를 계속 생각하게 됐다. 원룸은 보통 자기 공간이라고 믿잖아. 그런데 그 밤 이후로는, 내가 듣고 있는 소리들이 내 바깥을 향한 게 아니라 내 안을 향해 붙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창문에 종이가 젖어 있던 첫 장면만 떠올려도, 지금도 손끝에 닿았던 차가운 감촉이 다시 올라오는 것 같아. 그리고 가끔은, 새벽에 아무 소리도 안 나는데도 창문 쪽만 먼저 눈이 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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