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기사님이 내 앞에서 멈추며 ‘집이 아니네요’라고 했어
배달기사님이 내 앞에서 멈추며 ‘집이 아니네요’라고 했어.
그날은 비가 얇게 흩뿌리던 저녁이었어. 나는 현관문 앞에 누가 오기만을 기다리듯 서 있었고, 휴대폰 알림은 이미 출발, 도착을 반복하고 있었지. 가게 이름이랑 배달번호까지 다 뜨는 걸 보니, 설마 다른 사람 거겠어 싶어서 우산을 받쳐 들고 문 앞을 지켰다. 그런데 초인종은 울리지 않았고, 대신 내 앞 골목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짧게 끊겼어.
문득 고개를 돌렸는데 배달기사님이 내 앞에 차를 세워두고 서 있더라. 우산도 없이 젖은 머리카락을 털어내는 모습이 보였는데, 손에는 내가 주문한 박스가 들려 있었어. 그는 곧바로 휴대폰을 보며 한 번 웃고는, 내게는 보이게 일부러 천천히 말했다. “집이 아니네요.” 말투는 크게 화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심한 것도 아니었어. 그냥 ‘정확히 알고 있어서’ 하는 톤 같았어.
나는 순간 당황해서 주소를 다시 확인하려고 했고, 기사님은 내 쪽을 보면서 자기 화면을 내밀 듯한 제스처를 했어. “여기 201호 맞죠?” 내가 묻자, 그는 고개를 아주 작게 젓더니 “아니요. 201호가 아니에요”라고 했어. 그런데 웃긴 건, 내가 사는 곳이 딱 그 표기였거든. 엘리베이터 옆 우편함에도 적혀 있고, 계약서에도 적혀 있는 그 번호였어.
배달기사님은 내 얼굴을 한 번 더 보고는, 박스를 든 손을 살짝 흔들며 “번호는 맞는데… 모양이 달라졌어요”라고 말했어. 그때 나는 ‘이사했나?’ 싶어 생각을 굴렸는데, 그는 “아니, 이사 그런 게 아니라…”라며 말끝을 흐렸지. 그리고 시선이 현관문이 아니라, 내 옆으로 살짝 돌아가더라. 정확히는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바로 앞 계단 쪽. 거기엔 원래 없는 작은 표지판이 하나 보이기 시작했어. 어제까지는 분명 없었는데.
그 표지판은 건물 외벽에 붙어야 할 것처럼 반듯했는데, 글자가 흐릿해서 제대로 안 읽혔어. 다만 숫자 비슷한 게 보였고, 내가 사는 층과 다르게 적혀 있는 것 같았어. 나는 “이거 방금 붙은 거예요?”라고 물었고, 기사님은 대답을 피하듯 “그냥… 확인해보세요”라고 했어. 그리고 정말 이상하게도, 그는 박스를 내 손에 건네지 않고 그대로 들고 있었어. 마치 ‘넘겨주면 안 되는 것’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나는 결국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려 했어. 그 순간 배달기사님이 갑자기 한 걸음 뒤로 물러났고, 그가 멈춰선 방향으로 바람이 스치듯 공기가 달라졌어. 비 냄새인데, 젖은 흙 냄새까지 섞인 느낌. 기사님이 “지금 계단 내려가시면 안 돼요”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 말을 이해하기 전에 발을 내딛었거든. 근데 계단 입구가… 원래랑 다르게 보였어. 계단은 앞에 분명히 있어야 했는데, 그날따라 계단이 있는 자리 자체가 조금 비틀린 것처럼 느껴졌어.
그때 휴대폰 배달 앱 화면이 갑자기 갱신되더니, ‘수취인: 미응답’ 같은 문구가 떠버렸어. 나는 분명 문 앞에 서 있었는데. 기사님은 “보이긴 하는데, 인식이 안 되는 거 같아요”라며 자기 화면을 더듬더니, “아니면 제가 잘못 본 건가요?”라고 횡설수설했어. 근데 그 표지판은 그대로였고, 계단도 여전히 이상했어. 나는 결국 주문을 취소할까 하다가, 그냥 박스를 받지 않고 기사님에게 “잠깐만요, 제가 사는 집 맞는지 확인하고 다시 오실 수 있어요?”라고 말했지.
배달기사님은 잠깐 침묵하다가, 갑자기 말투를 낮췄어. “저는요, 주문 뜨는 주소로 왔는데요… 여기로 들어오면 들어온 적이 있어요.” “뭐가요?” 하고 되물었는데, 그는 “그냥… 제가 예전에 이 근처에서 같은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라고 했어. 그러곤 박스를 자기 오토바이 옆에 내려놓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시동을 걸었지. 그런데 출발하기 직전, 그는 내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남겼어. “여기 문이 열리면, 그때는 집이 될 수도 있어요.”
그날 이후로 나는 현관문 앞만 서면 이상하게 심장이 빨리 뛰어. 비 오던 저녁에 기사님이 남긴 말이 자꾸 되감기듯 떠오르거든. 특히 그 표지판. 며칠이 지나도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는데, 어느 날부터는 숫자가 계속 바뀌는 것처럼 보였어. 나는 아직도 주문 앱에 찍힌 주소를 믿고 싶지만, 가끔은 문 앞에서 멈춰 서 있는 내 모습이 남의 배달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느껴져. 그리고 그가 했던 말, “집이 될 수도 있다”는 문장이, 왜인지 뒤늦게 더 소름 돋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