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내가 고른 담요가 이미 계산대로 먼저 올라와 있었다
편의점에서 담요 고르다가, 내가 분명히 카트에 담은 담요가 계산대로 먼저 올라와 있더라. 그날은 그냥 늦은 밤이라 손님도 나랑 둘이뿐이었고, 나는 진열대 맨 끝에 접혀 있는 회색 담요를 집어서 만져 본 다음에야 “이걸로 가자” 하고 들고 가던 참이었어.
가게 안은 형광등이 좀 과하게 환했고, 냉장 코너에서 차가운 바람이 새어 나오는 느낌이었어. 나는 계산대 쪽으로 걸어가면서 담요를 팔에 끼고 있었는데, 그 순간 계산대 앞에 이미 뭔가가 놓여 있었거든. 비슷한 색이었고, 접힌 모서리 모양도 내가 방금 진열대에서 뽑아 든 그 담요랑 똑같았어.
처음엔 “아, 누가 먼저 가져다 둔 거겠지” 하고 넘기려 했는데, 문제는 내가 들고 있던 담요랑 그게 서로 위치가 겹쳤다는 거야. 계산대 앞에 놓인 담요를 힐끗 보자마자, 내 팔에 있는 담요의 접힌 무늬와 가장자리 실밥 위치까지 똑같아서 소름이 쫙 돋았어. 그때 점원이 보이진 않았는데, 계산대 위에 리모컨처럼 작은 스캐너가 켜져 있었고 영수증 프린터가 ‘딸깍’ 하는 소리를 냈어.
나는 멍하니 두 개를 번갈아 봤다가, 그냥 어쨌든 내 담요만 계산하면 되겠지 싶어서 계산대로 다가갔어. 그런데 계산대 앞에 놓인 담요가 내 담요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딱 가운데에 정렬돼 있더라. 내가 들고 있던 쪽을 바닥에 내려놓으려는 순간, 계산대 쪽에서 바코드 스캔하는 소리가 들렸어. “삑.” 하고 짧게 끝났는데, 아무도 그 스캐너를 들고 있지 않았어.
점원 호출 버튼도 안 눌렀는데 스캔이 됐다는 게 이상해서, 나는 그대로 멈춰 서서 “저거… 방금 스캔 된 거예요?” 하고 말했어. 내 목소리가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 들었고, 카운터 뒤쪽은 어두워서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히 구분이 안 됐어. 한참 뒤에야 카운터 안쪽에서 형광빛이 한번 흔들리더니, 그때서야 점원이 나왔어.
점원은 평소처럼 무표정했고, 내가 묻기도 전에 “담요 결제할 거예요?”라고 말하더라. 나는 그 말이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더 이상했어. 내가 “제가 방금 뽑아 들었는데요”라고 하니까 점원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계산대 앞에 있던 담요를 손으로 툭 건드렸어. 그 순간 담요가 아주 약간 미끄러지는데, 마치 누군가 이미 ‘올려놨다가’ 방금 다시 맞춰 둔 것처럼 정확히 내 눈앞에서 각도가 맞춰졌거든.
나는 순간적으로 “이거 제 담요 아니에요?”라고 물을 뻔했는데, 입이 잘 안 떨어졌어. 대신 영수증이 먼저 튀어나오고 있었거든. 결제 완료라는 문구가 보일 정도로 선명하게. 그런데 나는 카드나 현금도 꺼내기 전에, 내 손은 아직 담요를 쥐고 있었고, 계산대로 걸어오는 동선도 그대로였어. 누가 내 결제를 대신 누른 건가 싶다가도, 점원은 내 앞에서 손을 뻗을 타이밍이 없었어.
결국 나는 멈춰 있던 담요를 계산대 위로 올려 달라고 했고, 점원은 “아, 그거 먼저 올라온 거 맞아요”라고만 했어. 말투가 이상하게 단정했어. 마치 그 담요가 원래부터 거기 있어야 한다는 걸 당연하게 설명하듯. 나는 내 손에 남아 있던 담요를 내려놓고 영수증을 확인했는데, 결제 시간은 방금 내가 그 담요를 잡은 직후로 찍혀 있었어. 화면에 뜬 시간은 시계랑도 거의 일치했는데, 그게 더 무섭더라. 내가 기억하는 순간보다 더 정확하게 ‘내가 들기 전’과 ‘내가 들고 있는 동안’이 겹쳐 찍혀 있는 느낌이었거든.
그날 이후로도 편의점에 가면, 진열대 끝에 접혀 있는 담요를 유난히 조심해서 보게 됐어. 누가 먼저 집어 계산대에 올려놨을 수도 있다고 스스로 합리화는 했는데, 문제는 스캔 소리와 영수증 타이밍이 너무 구체적이었다는 거야. 지금도 가끔은, 그 담요를 들기 직전 손끝이 닿던 차가운 감각이 떠올라. 내가 선택했다고 생각한 순간이, 이미 누군가에겐 ‘결제된 상태’로 정해져 있었던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편의점 형광등 아래서 물건을 집는 행동이 이상하게 소름 돋게 느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