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서 기사님이 내 휴대폰 화면을 보더니 조용히 속도를 줄였어
택시에서 기사님이 내 휴대폰 화면을 보더니 조용히 속도를 줄였어. 처음엔 그냥 내 휴대폰이 밝아서 반사됐나 싶었는데, 그게 시작이더라. 나는 뒤좌석에 앉아서 배달 앱을 켜놓은 상태였고, 기사님은 신호 대기할 때마다 내 쪽을 잠깐씩 힐끗했어. 그리고 어느 순간, 화면이 꺼졌다가 다시 켜지는 타이밍에, 기사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지.
그날 비는 오락가락 했고 도로는 좀 미끄러웠어. 나는 목적지가 멀지 않아서 대수롭지 않게 갔는데, 기사님이 속도계를 보면서 브레이크를 살짝 더 밟는 느낌이었어. “아, 미끄러워서 천천히 가시는구나” 하고 넘기려는데, 속도를 줄이는 게 매번 같은 패턴이더라. 신호가 바뀌기 전, 내가 휴대폰을 내려놓으려는 찰나에만 딱 줄여. 진짜로 그 타이밍을 맞춘 것처럼.
나는 순간 짜증도 났어. 남의 차에서 괜히 불안해지면 더 피곤하니까. 그래서 휴대폰을 아예 잠금화면으로 바꿨어. 근데 잠깐 후에 기사님이 조용히 내 쪽으로 고개를 틀었고, 그때도 화면이 켜져 있었는지 뭔지, 기사님 손이 핸들에서 아주 잠깐 멈췄어. 그 짧은 정적이 더 이상했어. 비 오는 택시 안에서, 아무 말도 없이 그 정적이 생기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뭔가를 상상하게 되거든.
휴대폰 잠금화면에는 내가 방금 전까지 본 글 내용이 일부 뜨는 식이었어. 나는 배달 앱을 보고 있었지만, 그 전 탭이 자동으로 이어지는 바람에 이상한 내용이 잠깐 노출됐던 것 같아. 예전에 커뮤니티에서 본 글이었는데, “택시 타면 기사님이 화면을 봐야 한다” 같은 식의 이상한 이야기였지. 그걸 내가 그대로 켜둔 건지, 아니면 알림이 겹친 건지 모르겠는데, 그 순간 기사님이 조용히 한숨을 쉬는 걸 들었어. 마치 “또 여기구나” 같은 한숨.
내가 무슨 소리냐고 따지듯 쳐다보려 했는데, 기사님은 거울로 내 얼굴을 보는 대신 뒤로 시선을 빼서 도로 쪽을 보고 있었어. 그리고 갑자기 라디오 볼륨을 낮추더라. 원래는 잡음 섞인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그게 사라지니까 택시 안 소리가 더 또렷해졌어. 와이퍼 소리, 빗물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차가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소리. 이상하게도 그 소리들이 내 심장 박동이랑 맞물리는 느낌이었어.
그 뒤로는 진짜로 이상한 일이 이어졌어. 기사님이 어떤 교차로에서는 좌회전 대신 우회전을 해서 돌아가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는데, 길이 애매했어. 지도 앱으로 봤으면 정반대가 더 빠른데도 굳이 돌아가는 동선이었거든. 나는 “길을 모르나?” 싶었지만, 기사님은 내비게이션 화면을 한번도 확인하지 않았어. 대신 속도만 조절했어. 느려지고, 또 조금 빨라지고, 다시 느려지고. 마치 누군가의 출현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러다가 내 휴대폰이 또 한 번 울렸어. 배달 알림이 아니라, 스팸처럼 보이는 짧은 문장이 떴거든. 내용이 길지 않았고, “화면 보지 마세요” 같은 경고 문구였어. 순간 등골이 서늘했지. 나는 아무 것도 안 눌렀는데도 그 문구가 계속 떠 있었고, 화면이 깜빡거리면서 마치 다른 무언가가 덮어쓰는 것처럼 보였어. 그때 기사님이 핸들을 더 단단히 잡고, 내 차선 쪽으로 차를 살짝 붙이더라. “어, 뭐야” 하고 입술만 달싹했는데 소리가 안 나왔어.
기사님이 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어. 말투는 친절했는데, 이상하게도 목소리 톤이 얇았어. “손에 들고 있는 거… 지금만 좀 내려놓으실 수 있을까요?” 딱 그 한마디. 난 그냥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네?” 하고 멍하게 있었지. 그 순간, 내 앞 유리창 밖에서 누가 손을 흔드는 것 같았어. 정확히는 유리창에 비친 그림자였는데, 그 그림자가 내 휴대폰 화면 쪽을 향하고 있는 느낌이었어. 나는 고개를 돌리자마자 다시 정면을 봤고, 그때 기사님이 속도를 확 줄였어. 너무 급해서 몸이 앞으로 살짝 쏠렸고, 안전벨트가 팍 걸렸지.
정지할 뻔한 순간, 교차로 건너편에서 신호등이 바뀌었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신호가 바뀌는 타이밍이, 내 휴대폰 화면에 뜨던 깜빡거림과 겹치더라. 그 뒤로 경로가 딱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고, 기사님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운전했어. 나는 휴대폰을 껐는데도 손 안에서 열이 나는 것처럼 뜨겁게 느껴졌고, 배달 앱은 계속 로딩만 됐어. 도착지에 거의 다 왔을 때 기사님이 뒤를 돌아보면서, 아주 짧게 웃었거든. 그 웃음이 웃긴 게 아니라, “봤죠?” 같은 표정이었어.
내가 내리면서 기사님께 “아까 왜 그러셨어요?”라고 물으려 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더라. 대신 영수증을 받는 척하다가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을 봤어. 그런데 내 잠금화면에서 봤던 그 문구가, 꺼진 줄 알았던 휴대폰 화면에 희미하게 남아 있더라. 나중에 집에 와서야 확인했는데 그 문구는 알림 기록에도 없고, 검색도 되지 않았어. 이상한 건, 그 택시에서 내린 뒤로는 비슷한 글들을 다시 마주칠 때마다 휴대폰이 먼저 깜빡였다는 거야. 그게 단순한 버그일 수도 있겠지만, 아직도 가끔 택시에 타기 전에 화면을 끄는 습관이 남아 있어. 어떤 건 미리 보지 말라고 하니까, 결국 내가 먼저 보게 되는 것 같아서 더 무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