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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내 이름이 적힌 행군 지도만 구겨져 있었어

2026-08-31 04:29:11 조회 12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군대에서 내 이름이 적힌 행군 지도만 구겨져 있었어. 그것도 누가 대충 던져놓은 정도가 아니라, 누군가 일부러 손으로 주름을 낸 것처럼 사소한 선들이 전부 같은 방향으로 꺾여 있었지. 아침 점호 끝나고 내무반에서 배낭 정리할 때 그 지도부터 먼저 찾았는데, 책상 위에 있던 건지 어딘가에서 가져온 건지 몰라도 분명 내 이름이 적힌 종이만 유난히 구겨져 있었어.

나는 원래 기록이나 표시를 잘 안 남기는 편이었고, 지도도 펼쳐서 각자 확인하고 나면 그냥 그대로 비닐주머니에 넣어두거든. 그런데 그날은 주머니를 열자마자 종이 가장자리가 접힌 자국부터 눈에 들어왔어. ‘행군 지도’라고 찍힌 표지 쪽이 아니라, 가운데 전술선이 있는 부분이 반복해서 눌린 흔적이 있었고, 연필로 표시한 내 개인 메모가 있는 구역까지 같이 찌그러져 있었어.

정확히 말하면, 내 메모는 한 줄뿐이었어. 검문소 위치를 대충 알아보기 쉽게 옆에 동그라미 하나 그려둔 정도. 근데 지도는 마치 그 동그라미가 있는 지점을 누가 손가락으로 집어서 구겨버린 것처럼, 종이가 그 부분만 더 깊게 꺾여 있었어. 웃긴 건 그 메모가 지워지진 않았는데, 종이만 이상할 정도로 ‘눌려’ 있었단 점이야.

나는 장난인가 싶어서 옆에서 짐 정리하던 선임한테 툭 던졌어. “누가 지도 만졌어?” 근데 돌아오는 대답이 너무 단순하더라. “어제 너 혼자 가져갔잖아.” 이 말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내무반 사람들 동선부터 떠올려봤는데, 전날 밤에 나는 호출만 받고 나왔고, 지도는 책상 위에서 그대로였거든. 그래서 더 찝찝했어.

그날 훈련은 평소처럼 진행됐는데, 이상하게도 내 주머니에 들어있는 지도만 자꾸 무게감이 달랐어. 종이가 구겨져 있어서 그런가 하고 넘어가려 했지만, 마치 한 장이 더 있는 것처럼 배낭이 미세하게 부풀어 있었지. 걸을 때마다 지도 모서리가 몸에 닿는 느낌이 달라졌고, 손을 넣을 때마다 공기가 더 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누가 보기 좋게 다시 접어놨는데, 접는 방식이 내 습관이 아니었어.

훈련 중에도 몇 번이나 지도 상태를 확인했어. 동그라미가 있는 위치가 어긋나 있진 않은데, 선들이 접힌 자국 때문에 빛을 받으면 미세하게 다른 각도로 보이더라. 그래서 나는 지도 위에 손바닥을 올려놓고 펴려고 했는데, 그 순간 이상한 냄새가 났어. 종이 특유의 잉크 냄새 말고, 뭔가 축축하게 식은 것 같은 냄새. 곰팡이나 그런 건 아니고, 어딘가에 오래 묵어둔 천 같은 냄새랄까.

급식 끝나고 생활관에 돌아왔을 때, 내 지도만 책상에 그대로 남아 있었어. 다른 애들 것들은 모두 자기 자리에서 비닐주머니 채로 묶어둔 상태였는데, 내 건만 구김이 더 심해져 있었어. 어제 분명히 내가 펼쳐서 대충 맞춰 넣었거든. 그런데도 새로 생긴 접힘이 있었고, 특히 이름이 적힌 부분—정확히는 소속/이름이 들어간 칸이—마치 누가 그 부분을 ‘잡았다’가 떼어낸 것처럼 손자국 같은 얇은 번짐이 있었어.

그때부터였어. “내 이름”만 남겨진다는 느낌이. 누가 나를 찍어두고 있는 건가, 아니면 단순히 내 방식을 따라 하려다 망친 건가 수십 번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확신이 없더라. 대신, 자꾸 주변 사람들의 손이 떠올랐어. 지도나 노트를 만질 때 손톱이 종이를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 종이를 펼칠 때 나오는 마찰감. 나는 그날 내 지도 위에서 그런 소리가 들렸는지 기억을 더듬었고, 이상하게도 “분명 누군가 다녀간 적이 있다”는 확신이 생겼어.

며칠 뒤 훈련이 끝나고 정리할 때, 내무반장이 나한테 지도 상태를 묻는 일이 있었어. “너 어제 지도 찢어진 데 없어?” 나는 깜짝 놀랐어. 내 지도는 찢어진 건 없었는데, 그 질문 자체가 이상했거든. 나는 “찢어진 건 없는데 구겨져 있긴 했습니다”라고 말했지. 그러자 내무반장이 잠깐 멈칫하더니, 아무 말 없이 손바닥으로 내 책상 모서리를 톡 쳤어. 그리고는 “그건 네가 접었나 보네”라고 끝냈어.

그 말이 끝이었는데도, 나는 계속 같은 생각을 했어. 누군가는 이미 내 지도에 손을 대고 있었고, 그 손은 내 이름이 적힌 칸을 먼저 확인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거든. 지금도 가끔 악몽처럼 떠오르는 장면이 있어. 종이가 구겨지던 그 순간의 방향, 그리고 이름이 적힌 부분만 유독 더 ‘정확하게’ 눌려 있었던 느낌. 군대에서 흔한 물건 하나가 이렇게까지 특정한 방식으로 변해버리면, 그건 단순한 실수보다 더 조용하고 더 집요한 무언가가 다녀간 것 같아서… 가끔 아직도 손바닥으로 구김을 확인하는 버릇이 남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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