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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에서 밤새 냉장고가 ‘삐-’ 소리를 냈는데 불빛이 꺼져 있었어

2026-08-31 20:29:13 조회 50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시골집에서 밤새 냉장고가 ‘삐-’ 소리를 냈는데, 이상하게도 집 안 불빛은 다 꺼져 있었어. 나 그날 자려고 방에 누웠는데도 소리가 계속 이어지더라. 처음엔 배터리 나간 알람인가 싶어서 그냥 넘기려 했는데, 소리가 끊겼다가 다시 나고, 그 주기가 너무 일정해서 결국 베개를 확 걷어차고 거실 쪽을 봤다.

거실은 캄캄했고, 커튼 틈으로 달빛만 얇게 들어왔어. 근데 냉장고는 정전이 아니라는 듯이 아주 희미하게 전면 표시등이 깜빡였어. 내가 알던 그 집 냉장고는 원래 밤엔 조용했거든. 전원이 들어가 있으면 ‘윙’ 하는 소리나 미세한 냉각음이 나야 정상인데, 그 밤엔 알람처럼 ‘삐-’만 반복했어.

일단 확인하려고 문을 열었는데, 바람 소리도 없고 공기 자체가 이상하게 무거웠어. 현관 쪽에서 신발장 문이 살짝 열린 상태로 둔 적이 없는데, 그 틈으로 아주 옅은 형광 같은 빛이 스치듯 지나가더라. 나는 문득 “혹시 전기 나갔다가 들어온 건가?” 싶었지만, 차단기 내려간 흔적도 없고 TV도 거실엔 아무것도 안 켜져 있었어.

냉장고 앞까지 걸어가서 소리가 나는 쪽을 가까이 보니, 냉장고 문이 완전히 닫혀 있지 않았어. 평소엔 문이 ‘툭’ 하고 딱 맞물리는 느낌인데, 그날은 손잡이를 한 번도 안 건드린 것처럼 살짝 벌어져 있었고, 그 틈에서 차가운 공기가 아니라 따뜻한 기운이 조금 새어 나오는 것 같았어. 냉장고 내부에서 나는 냉기 냄새가 아니라, 오래된 천 냄새 비슷하게 섞여서 코끝을 스치더라.

나는 겁나서도 문을 그냥 닫고 말았어. 그리고 “저거 문이 덜 닫혀서 경고음 나는 거 아냐?”라고 스스로를 달랬지. 실제로 냉장고는 문이 열려 있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경고음이 울리니까. 그런데 문을 닫자마자 ‘삐-’ 소리가 한 번 크게 울린 뒤, 갑자기 정전된 것처럼 집 전체가 더 컴컴해졌어. 불빛이 완전히 꺼진 게 아니라, 이미 꺼져 있던 빛이 더 꺼진 느낌이었어.

그때 이상하게도, 방 안에서 들리던 내 숨소리가 바로 코앞에서 들리는 것처럼 바뀌었어. 내가 거실에 있다는 건 분명한데, 마치 누가 내 옆에 기대서 천천히 숨을 쉬는 것 같았거든.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휴대폰을 켰는데 화면이 뜨자마자 배터리가 급격히 줄었어. 알림도 없이, 화면이 어두워지기 전에 딱 한 번만 진동이 와서 ‘띵’ 하는 감각만 남더라.

그 다음 ‘삐-’ 소리는 더 멀리서, 더 낮은 높이로 들렸어. 냉장고에서 나는 소리치고는 방향이 계속 달라졌고, 거실 천장 쪽에서 울리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어. 나는 다시 냉장고 쪽을 봤는데, 문은 닫혀 있었고 표시등도 정상처럼 깜빡이지 않았거든. 대신 냉장고 옆 벽지에 작은 그림자 같은 게 천천히 번지는 게 보였어. 그림자는 손 모양도 아니고 글씨도 아닌데, 마치 누가 천천히 문질러서 지워진 자국처럼 어둠이 움직이는 느낌이랄까.

나는 그날 새벽에 차라리 잠깐이라도 자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 근데 눈을 감자마자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반복되는데, 실제로는 소리가 멈춰 있었어. 그럴 때 더 무서운 게 있잖아. 들리지 않는 ‘삐-’를 머리가 먼저 재생해버리니까. 그래서 결국 다시 일어나 거실을 살폈는데, 냉장고 문 손잡이가 미세하게 떠 있었고 손잡이 주변에 손자국처럼 보이는 희미한 얼룩이 남아 있었어. 누가 만진 것처럼, 근데 아무도 없었지.

아침이 밝아오자 소름이 한 번 더 돋았어.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안이 멀쩡했고 음식도 다 차가웠어. 그런데 냉장고 안쪽 유리 선반 밑에, 누가 급히 떨어뜨린 듯한 종이 한 장이 끼어 있었더라. 종이는 젖지 않았고, 글씨가 또렷하진 않지만 모서리에 작게 적힌 한 줄이 보였어. ‘문은 잠그고, 불은 끄라’ 같은 문장 비슷했는데, 내가 그 집에 와서 그 시골집에 그런 글을 붙여둔 기억은 없어. 누가 장난친 건가 싶어도, 냉장고 안에 종이를 넣을 동선이 말이 안 됐어.

그 뒤로 나는 그 집에서 밤에 불을 끄는 게 이상하게 신경 쓰이기 시작했어. 전기고 뭐고 문제가 생겨서 경고음이 울린 건지, 아니면 누가 내 잠을 확인한 건지 아직도 모르겠어. 다만 아직도 가끔 새벽에 냉장고가 ‘삐-’ 하는 상상만 하면, 불이 꺼진 집에서 누군가 내 옆을 지나가는 느낌이 같이 따라와. 그 소리 하나가, 내가 자고 있는 동안에도 집이 누군가의 방식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아서 더 잊히질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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