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메모에 내 과거 직장이 적혀 있더라
배달메모에 내 과거 직장이 적혀 있더라. 처음엔 그냥 장난인 줄 알았는데, 그날 이후로 배달앱 화면만 봐도 손이 조금씩 굳는 느낌이 들었다.
사건은 야근 끝나고 자정쯤 배고파서 치킨을 시키면서 시작됐어. 평소대로 주소랑 문 앞 비밀번호만 적고 결제까지 끝냈는데, 주문 확인 화면에서 메모 칸이 눈에 확 들어오더라. 분명 내가 따로 메모를 남긴 적이 없는데, 누군가가 “구, 구직 때 다니던 회사 근처로 배달 부탁. 00빌딩 4층, 문 앞” 같은 식으로 써놨던 거야.
그 문장 자체는 얼핏 보면 어딘가의 배달용 요청 같기도 했는데, 문제는 ‘표현’이 너무 구체적이었어. 내가 예전에 다녔던 직장명은 그냥 상호로 바뀐 줄 알았는데, 메모에는 예전 별명으로 적혀 있었고, 내가 입사 첫날에만 쓰던 내부 안내 멘트까지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거든. 그걸 보는 순간, 등 뒤가 서늘해지면서도 동시에 “설마”라는 생각이 들었어.
배달이야 어차피 지정된 주소로 오겠지 싶어서 기다렸는데, 배달 기사님이 전화를 딱 한 번 걸었어. 목소리가 좀 가라앉아 있었고, “여기 맞나요? 문 앞에… 그쪽 회사 관련해서 뭐 붙여놓으셨던 것 같아서요.” 라고 말하더라. 나는 당연히 “뭘요? 아무것도 없는데요”라고 했고, 그는 잠깐 멈칫하더니 “아, 죄송합니다. 메모를 제가 잘못 본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하고 끊었어.
치킨을 받고 나서도 찝찝해서 주문 내역을 다시 봤는데, 메모는 사라지지 않았더라. 대신 ‘배송 완료’ 알림 뜨기 전까지만 잠깐 보였다가 바로 지워지는 방식이었는지, 그때는 화면에서 읽히던 문장이 내가 새로고침하는 사이에 몇 단어씩 바뀌어 있었어. 마치 누가 계속 손을 대는 것처럼, 또는 누군가가 “기록”을 의식하고 타이밍을 조절하는 것처럼.
그날 밤에 나는 한 가지를 떠올렸어. 내가 예전 직장에서 퇴사할 때, 짐 정리하면서 예전에 쓰던 출입증 케이스랑 작은 메모지 뭉치를 버렸거든. 그 메모지에는 주소가 아니라 회사 구역을 가리키는 내부 표기랑, 사람들이 모일 때 쓰던 약속 문구가 적혀 있었어. 물론 그걸 배달 주소로 쓰는 건 말이 안 되잖아. 그런데 메모에 적힌 단어들이 너무 그 메모지의 표현이랑 닮아 있었어.
다음 날 아침엔 앱에 들어가서 고객센터 채팅을 시도했어. “주문 메모에 제 과거 직장이 적혀 있었다. 누가 남겼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하자마자 자동응답이 오더라. “안전한 거래를 위해 메모는 개인 정보가 포함될 수 있어 제거됩니다.”라는 문구. 근데 그 문장도 좀 이상했어. 나도 모르게 제거된 게 이미 그때부터 ‘개인 정보’로 분류됐던 건가 싶어서. 나는 오히려 더 확신이 생기더라.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넣었고, 시스템이 알아서 치웠지만 흔적은 남아 있다는 느낌.
그 뒤로 며칠 동안 배달을 몇 번 더 시켜봤는데, 매번 메모가 깨끗했어. 대신 같은 플랫폼으로 음식을 주문할 때마다 ‘내가 예전에 다녔던 회사와 관련된 특정 단어’가 검색창이나 추천 문구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 같은 착각이 생기더라. 물론 그건 그냥 내 불안이 만든 패턴일 수도 있어. 근데 이상하게도, 그 단어를 떠올리려면 굳이 내가 배달앱을 열지 않아도 됐어. 화장실 거울 앞에서 정리하다가도, 버스 정류장에서도, 고개를 들면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는 감각이 따라붙는 거야.
결정타는 배달메모를 확인한 지 일주일쯤 됐을 때였어. 우연히 과거 직장 관련해서 인사팀 메일을 정리하다가, 예전에 받았던 스캔 파일 폴더가 생각나서 검색했거든. 거기엔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파일명이 있었고, 파일명은 내 이름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주문번호처럼 보였어. 내가 그 폴더를 만들었을 리가 없고, 누가 작업한 흔적도 없었는데 말이야. 그리고 그 주문번호는, 내가 치킨 주문했던 날짜의 배달 주문번호랑 숫자 일부가 겹쳤어. 그래서 나는 그때 깨달았어. 누군가는 그냥 장난으로 시작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어디서 어떤 표현을 썼는지”까지는 알고 있다는 거.
지금도 가끔 배달앱에서 메모 칸이 비어 있는지 확인하고, 기사님이 전화 오면 말투부터 먼저 듣게 돼. 치킨 냄새는 빨리 사라지는데, 그 메모에 적혀 있던 과거 직장의 별명과 내부 문구는 자꾸만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더라.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건 하나야. 정말로 누가 나를 알고 있어서 넣은 걸까, 아니면 누군가가 ‘내가 과거에 있었던 자리’ 자체를 훑고 다니는 걸까… 그 차이가 너무 아슬아슬하다는 게, 제일 소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