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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주차장에 세워둔 우산이 누군가의 방향으로 정확히 놓여 있어

2026-09-02 08:29:11 조회 15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지하주차장에 세워둔 우산이 누군가의 방향으로 정확히 놓여 있어.

처음엔 그냥 귀찮은 장난인 줄 알았어.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주차해놓고 차에서 내리면서 늘 하던 대로 우산을 조수석 옆에 세워두고, 손에 비닐봉투만 들고 엘리베이터로 향했거든. 비 오는 날도 아니었고, 그날은 건물 밖에 소나기 예보가 있어서 ‘혹시 몰라서’ 챙긴 정도였지. 집에 와서도 우산은 그대로일 거라 생각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까 우산이 내 차 쪽이 아니라, 출구 방향을 향해 똑바로 놓여 있었어.

문제는 각도야. 우산은 대개 세워두면 바닥에서 약간 기울잖아. 근데 그건 기울이 아니라 정확했어. 우산 끝부분이 주차장 출구 쪽을 똑바로 가리키게, 마치 누가 ‘여기 봐’ 하고 손가락으로 표시한 것처럼 되어 있었어. 내가 세워두던 습관대로면 내 차 문이 있는 쪽을 향했어야 했는데, 정반대였지.

그래서 나는 순간적으로 옆자리 차주가 옮긴 건가 싶었어. 지하주차장은 좁고, 누가 지나가며 건드리기라도 하면 방향이 바뀔 수 있잖아. 근데 그 우산은 내 차와 딱 가까운 위치에 있었고, 바닥의 먼지 위로 발자국 같은 것도 없이 ‘딱’ 놓여 있었어. 누가 일부러 가져다 둔 느낌이 너무 강해서, 괜히 이상한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어.

그날 저녁에 다시 확인하려고 퇴근하고 내려갔는데, 이번엔 우산이 아니라 차를 먼저 봤어. 내 차는 그대로였고, 누가 주변에서 뭔가 만진 흔적은 없었거든. 그런데도 그 우산만 유난히 눈에 띄었어. 출구 방향을 그대로 유지한 채, 이전보다 더 정돈된 것처럼 바닥에 닿는 부분이 딱 맞아 있었거든. 내가 기억하는 세우는 방식이랑 너무 달랐어. 분명히 나는 우산을 세워두면서 손으로 중심 잡고 대충 가두는 편이었거든. 그런데 그건 ‘완성’처럼 딱 고정돼 있었어.

며칠 뒤엔 더 어이없게도, 같은 일이 반복됐어. 내가 우산을 세워두면 다음 날엔 항상 같은 쪽을 바라봤어. 주차장 출구 방향도 매번 같았고, 우산 손잡이의 각도도 거의 동일했지. 이쯤 되면 누군가가 우산을 ‘옮기는’ 게 아니라, 특정한 의도로 ‘맞춰두는’ 것 같아. 누가 일부러 매일 같은 시간에 확인하고 조정하는 걸까, 싶어서 머리가 지끈했어.

처음엔 관리사무소에 말할까 고민했는데, “그냥 우산이 방향이 바뀌었어요”라고 하면 너무 허무맹랑하게 들릴 것 같았어. 그래서 나는 대신 아주 평범한 방법으로 테스트를 해봤어. 우산을 세워두기 전에 펜으로 손잡이 쪽에 작은 표시를 해두고, 다음 날 위치를 확인한 거지. 결과는 더 소름이었어. 표시가 지워지거나 바뀐 것도 아니고, 손잡이 방향이 그대로인 채로 출구 방향으로만 ‘정렬’돼 있었어. 누가 우산을 집어 옮겼다면 표시가 긁히거나 반쯤 뒤틀릴 법한데 그런 흔적이 없었거든.

그날 밤, 나는 문득 이상한 상상을 했어. 누군가가 내 우산을 가져가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왜 굳이 ‘방향’을 맞출까. 혹시 이건 “여기서 나가” 같은 신호인가, 아니면 그냥 장난이 너무 정교한 건가. 지하주차장에는 CCTV가 있긴 한데, 내 자리 바로 앞이 화면에서 사각처럼 느껴지는 구간이 있어. 관리사무소에 문의해도 “확인해보겠다”가 끝일까 봐, 더 말하기도 망설여졌어. 그러는 사이 나는 어느 순간부터 우산을 들고 올라가야만 마음이 편해졌고, 그건 곧 습관이 돼버렸지.

그리고 마침내 한 번은, 내가 우산을 아예 차에 안 두고 현관에 가져가서 썼어. 그런데 다음 날, 지하주차장에 내려갔을 때 내 차 앞 바닥에 내 우산과 같은 색의 우산이 세워져 있더라. 정확히 같은 위치였고, 이번에도 출구 방향을 향해 있었어. 근데 그 우산은 내 우산이 아니었어. 손잡이 모양이 아주 조금 달랐고, 천의 주름도 내가 쓰던 것과 달랐지. 난 그 자리에서 멍하게 서 있다가, 우산을 들고 올라가려고 했는데 손잡이가 너무 매끈하게 닦여 있는 느낌이 들어서 손이 멈췄어. 누가 오래 만진 흔적이 아니라, ‘닦아서 새것처럼’ 만든 느낌. 그걸 보고 나서야 확신이 들었어. 누군가가 내 우산을 찾는 게 아니라, 내 동선을 읽고 있는 것 같다는.

그 이후로 나는 우산을 차에 두지 않아. 비가 오면 차에서 바로 펴서 들고 올라가고, 혹시라도 잠깐 내려놓는 순간이 생기면 바로 집어들지. 그런데도 가끔은 지하주차장 출구 쪽을 바라보게 돼. 사람들 다니는 길은 정해져 있는데, 왜 유독 그 방향만 자꾸 신경이 쓰이는지 모르겠어. 결국 그 우산이 가리키는 건 출구가 아니라, 누가 내게 “다음엔 여기서 봐”라고 말하는 자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날 이후로 나는 지하주차장에 내려갈 때마다 문득, 등 뒤에서 바닥을 누군가 정렬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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