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기사님이 내 현관 앞에 ‘소리’로 문을 열었어
배달기사님이 내 현관 앞에 ‘소리’로 문을 열었어. 처음엔 그냥 늦게 도착해서 문을 두드리나 싶었는데, 이상하게도 “똑똑” 같은 소리가 아니라… 문 앞 공기 자체가 살짝 갈라지는 느낌이었거든. 그때 나는 현관문 손잡이를 잡고 있던 상태라 더 확실히 기억나. 손잡이가 먼저 움직이듯, 바깥에서 무언가가 문을 열어버린 거야.
그날은 비가 조금씩 오락가락했어. 나는 집에 혼자 있었고, 현관 바로 앞에는 작은 신발장과 택배가 놓이는 자리가 있어. 배달앱에서 “도착”이 뜨고 10분쯤 지났을 때, 현관문 쪽에서 소리가 났는데 사람이 두드리는 리듬이 아니었어. ‘소리’라고 해야 하나, 소리의 형태가 이상했어. 마치 누군가가 문을 치는 게 아니라, 문이 스스로 숨을 쉬듯 열릴 준비를 하는 소리랄까.
나는 인터폰을 누르려다 말았어. 보통 배달기사들은 비슷한 멘트로 문 앞을 확인하고, “문 앞에 두고 갈게요” 같은 문자를 남기잖아. 근데 그날은 문자도 없었어. 대신 문 앞에서 아주 짧게, 정말 짧게 “삐-” 하는 고음이 났고, 그 다음에 현관문 쪽 자물쇠가 걸렸다가 풀리는 소리가 들렸어. 누가 문을 열었다는 소리인데, 열쇠로 여는 소리랑도 달랐어.
문틈으로 확인하려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을 때, 신발장 위쪽이 갑자기 어두워졌어. 비가 오는 날이라 현관등이 흔들리긴 했지만, 그때의 어둠은 그림자처럼 자연스럽지 않았어. 그림자가 아니라… 빛이 통과하지 못하는 느낌. 그리고 그 순간, 현관문이 “찰칵” 하고 안쪽으로 아주 조금 밀려 들어왔지. 손잡이를 잡고 있던 내 손가락이 자동으로 힘을 뺏긴 것처럼 굳어버렸어.
나는 급하게 현관문 손잡이를 놓고 뒤로 물러났어. 혹시나 누가 집 안으로 들어오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거든. 그런데 문은 완전히 열리지 않았어. 마치 누군가가 ‘열 수는 있는데, 굳이 안 여는’ 선택을 한 것처럼 딱 그만큼만 벌어져 있었어. 벌어진 틈 사이로 공기가 새어 나오는데, 그 공기가 너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어. 대신 이상하게도 축축하지도 않았고, 비 냄새도 나지 않았어. 그냥… 집의 ‘바깥’이 아니라, 집의 ‘안쪽’이 바뀐 냄새랄까.
잠깐 정신을 추스르고 배달앱을 확인했는데, 기사님 상태가 “기사님이 문 앞에 도착했습니다”에서 멈춰 있었어. 그런데 내 GPS에는 배달 위치가 한 걸음도 이동하지 않았더라. 즉, 누군가가 현관 앞에 있었다면 분명 “문 앞에 도착” 이후에 추가 행동이 있어야 하는데, 앱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대로였어. 나는 채팅을 보냈어. “문 앞에 계신가요?” 하고. 답이 오지 않았어.
그때 현관문 너머에서 다시 ‘소리’가 났어. 이번엔 더 선명했는데, 사람의 숨소리 같은 것도 아니고, 발소리도 아니고, 그냥 문과 맞닿은 어떤 진동이었어. 그리고 그 진동이 현관문이 아니라 내 귀 옆쪽에서 들리는 것처럼 느껴졌어. 나는 손으로 귀를 막아도 소리가 줄지 않았고, 오히려 소리가 내 머리 안쪽으로 들어오는 느낌이었어. ‘열림’이 소리로 먼저 전달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스치듯 들었어.
무서워서 거실 쪽 창문으로 잠깐 봤는데, 현관 앞에는 아무도 없었어.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도 아닌데 우산도 보이지 않았고, 배달 가방 같은 것도 없었어. 신발장 위에는 택배 박스가 하나 놓여 있었어. 분명 내 이름으로 온 거였는데, 주문한 건 하나뿐이었거든. 문제는 그 박스가 내 집 문 앞이 아니라, 내가 현관문을 열기만 하면 바닥에 떨어질 정도로 ‘위치가 정확히’ 맞춰져 있었어. 마치 누군가가 내 동선을 이미 계산한 것처럼.
택배 박스를 확인하는 손이 떨려서 조심스럽게 받았는데, 테이프 위에 작은 글씨가 희미하게 적혀 있었어. “문이 먼저 열리면, 사람은 늦는다” 같은 말이었는데, 잉크인지 습기 때문인지 번져 있었어. 나는 그 문구를 보자마자 소름이 돋아서 박스를 바닥에 내려놓고 현관 쪽을 다시 봤어. 그런데 현관문은 멀쩡히 잠겨 있었고, 아까처럼 벌어진 흔적도 없었어. 그럼 뭐가 열렸던 걸까, 누구의 ‘소리’로?
그날 이후로도 가끔 새벽에 현관문 쪽에서 아주 미세한 진동이 느껴질 때가 있어. 꼭 누가 문을 두드리는 정도는 아닌데, 소리의 방향이 이상해. 내 귀 가까이에서 시작해서 현관으로 옮겨가는 것 같은, 반대로 현관에서 시작해서 내 안으로 파고드는 것 같은… 그런 감각. 그래서 아직도 나는 문 앞에 혼자 서 있을 때, 혹시 누가 오면 “택배 왔어요” 같은 말부터 먼저 하게 되더라. 배달기사님이 내 현관 앞에 ‘소리’로 문을 열었어라는 말이 농담처럼 웃기다가도, 어느 날은 그 ‘소리’가 진짜 문법처럼 느껴져서, 그냥 가만히 숨을 죽이게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