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내 막내가 아닌데 내 포대에 이름을 붙였어
군대에서 내 막내가 아닌데 내 포대에 이름을 붙였어. 그 말이 그냥 장난처럼 들리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는 몰랐어. 훈련 끝나고 철수 정리할 때마다 누군가가 내 포대 쪽을 먼저 훑고 지나가더라. 처음엔 “아, 저쪽 중대에서 시킨 일 있나 보네” 하고 넘겼지. 근데 어느 날부터는, 포대에 붙어 있는 표식이 점점 이상해지기 시작했어.
사건은 한밤중에 터졌어. 무전병 교대 시간이었는데, 나는 막사 쪽에서 정리하다가 탄약고 라인에서 희미한 소리 나는 걸 들었거든. 딱딱, 하고 철제끼리 부딪히는 느낌. 초소 불빛이 흔들리는데, 그 사이로 누가 포대 바닥을 쓸고 있던 것처럼 보였어. “누구야” 하고 부르기도 전에, 그 사람은 바로 뒤로 물러나서 시야에서 사라졌어.
다음 날 아침 점호 때 상병이 “포대 쪽에 누가 이름표 새로 달아놨다”라고 하더라. 우리 포대는 지휘관이 관리하는 구역이라, 사소한 표식 하나도 마음대로 붙이면 안 돼. 근데 책상 서랍처럼 작은 스티커가 아니라, 현장용으로 칼같이 잘라 붙인 것 같았어. 딱 내 작업 동선이 닿는 곳에, 내 이름이랑 비슷한 글자가 적혀 있었고, 그 아래에 “막내”라는 단어가 같이 붙어 있었어.
처음엔 당연히 오해겠지 했어. 내 막내는 따로 있었고, 나는 그 아이랑 사이도 꽤 괜찮았거든. 그런데 그 이름표는 내 막내 이름하고도 다르고, 내 포대에서 같이 근무하던 다른 인원 이름이랑도 달랐어. 누가 봐도 ‘내 막내’ 자리를 대신해서 적어둔 느낌이었지. 내 속이 싸해지는데, 아무도 “이거 누가 붙였어?” 같은 질문을 길게 하지 않았어. 그냥 “어제 누가 실수로 붙였나 보다” 하고 넘어갔거든.
그날 이후로 이상한 일들이 반복됐어. 교범에 적힌 순서대로 장비를 옮기고 확인하는데, 누군가가 내 포대에서 내가 찾는 물건을 먼저 정렬해두는 거야. 내 시계나 필기구가 놓인 위치가 매번 조금씩 바뀌어 있었고, 이상하게도 내가 확인하려던 방향으로만 정리돼 있더라. 마치 내가 뭘 찾을지 알고 있다는 것처럼. 그때부터는 한두 번이 아니라, 거의 매일 그래. 난 분명 다른 사람을 시켜본 적이 없는데도 말이야.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CCTV 없는 야간 동선을 확인했어. 우리 부대는 구석구석 비어 있는 사각이 있고, 그 틈을 누가 이용하는지 다들 알지. 난 야간에 근무 끝나고, 누가 포대 쪽으로 들어오는지 기다렸는데 아무도 안 오더라. 그런데 새벽 네 시쯤, 공구함 잠금쇠가 ‘찰칵’ 하고 한 번만 울렸어. 내가 열어보니 누군가 들어온 흔적은 없는데, 공구함 안에 있던 종이 한 장이 접혀서 맨 위에 올라와 있었어.
그 종이에는 내 포대 위치를 대략적으로 표시한 것과, 글씨체가 유난히 또렷한 문장이 적혀 있었어. “내 막내 아닌데도 내 포대에 이름을 붙였어.” 이 문장이 왜 적혀있는지, 누가 봐도 장난 같은데도 소름이 돋았어. 특히 ‘내 막내 아닌데도’라고 표현한 게, 누가 내 신분 관계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느낌을 줬거든. 장난이면 보통은 그냥 웃긴 문구를 쓰지, 저렇게 딱 걸리게 쓰진 않잖아.
나는 그 종이를 몰래 주머니에 넣고, 다음 날 그 상병한테 “어제 이름표 누가 붙였는지”를 물어봤어. 근데 그 상병이 딱딱하게 굳더니, “그거 말하지 마. 요즘 그런 얘기 나오면 너만 골치 아파진다”라고 하더라. 이후로는 우리 포대 주변에 누가 접근하지 못하게 감시 인원을 늘리자는 말도 나왔는데, 이상하게도 감시가 늘어난 자리엔 정작 사건의 흔적이 없었어. 대신, 이름표는 더 선명해지고, 누군가가 그 위에 덧붙여서 작은 글씨를 추가해놨더라. 마치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며칠 후에는, 훈련 때마다 내 포대 쪽에서 먼저 대기하던 사람이 바뀌었어. 처음엔 모르는 병사가 오더라 싶다가도, 어떤 날은 내가 봐도 내 체력 상태를 아는 듯이 물건 위치가 맞춰져 있지. 심지어 훈련장으로 이동할 때도, 내가 통로에서 헛디뎌 넘어질 뻔한 순간에 장비가 딱 가로막아 줬던 날이 있었어. 그래서 더 무서웠어. 누가 ‘나를 해치려는 것’ 같지는 않았거든. 오히려, 내 생활 패턴을 너무 정확하게 ‘감싸는’ 느낌이랄까. 결국 나는 그 이름표를 뜯어내려 했는데, 손끝에 닿는 순간 접착제가 너무 단단해서 떨어지지 않았고, 억지로 뜯으려다 보니 글자 일부가 내 손등에 살짝 묻었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 이후로 나는 늘 “내 막내”라는 단어를 조심하게 됐어. 누가 내 포대에 이름을 붙였는지, 왜 하필 그런 방식으로 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해. 그 이름표가 붙은 날부터, 우리 포대는 훈련도 점검도 이상하게 ‘먼저’ 끝났고, 대신 뒷정리는 항상 늦어졌어. 누군가가 내 자리를 알고 있었고, 내 시간을 건드렸고, 그게 끝나지 않았다는 느낌만 남았거든. 지금도 가끔 군복 냄새 비슷한 걸 맡으면, 바닥에 적힌 글자 모양이 눈앞에 겹쳐져서 잠이 깨곤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