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에서 냉장고 문을 열면 항상 다른 사람 향이 먼저 나
원룸에서 냉장고 문을 열면 항상 다른 사람 향이 먼저 나. 처음엔 내가 너무 예민한가 싶었는데, 그 향이 올 때마다 이상하게 꼭 뭔가가 ‘정리된 뒤’처럼 남아 있어서 결국 참지 못하고 기록을 시작했어.
이건 이사 첫 달부터였어. 냉장고 문을 열면 냉기보다 먼저 느껴지는 게 있어. 비누 같은 깨끗한 향인데, 내가 쓰는 제품이랑은 달라. 그리고 그 향이 나오는 타이밍이 딱 정해져 있는 것 같았어. 주로 밤 늦게, 내가 방에서 조용히 있을 때만 “툭” 하고 먼저 올라와.
처음엔 앞집 남자라도 왔다 갔다 하면서 냄새가 섞인 건가 생각했지. 그런데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는 실제로 안쪽 공기가 바뀌는 느낌이 들었어. 겉은 그대로인데, 손잡이를 잡는 순간부터 코끝이 먼저 알아차려. 얼른 닫고, 다음 날 다시 열어보면 또 같은 향이 떠. 문제는 그 향이 매번 동일하게 ‘누군가가 들어왔다가 나간 자리’ 같은 느낌이랬다는 거야.
그래서 나는 확인하려고 냉장고 정리부터 했어. 내가 먹는 것 말고는 전부 비닐로 묶어 라벨을 붙였고, 선반도 사진을 찍어 표시해뒀지. 그런데 이튿날 아침이면 라벨 위치가 미세하게 흐트러져 있어. 누가 대충 건드린 정도가 아니라, 내가 보기 좋게 다시 맞춘 흔적이 있어. 누가 정리하는 방식이 ‘내가 하는 방식’이랑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그게 더 소름이었어.
그 다음부터는 향만이 아니라 소리도 생겼어. 냉장고는 조용해야 하잖아? 근데 밤에 한 번씩, 아주 작게 철컥 하는 소리가 나. 정확히는 냉장고가 작동하는 소리랑 달라. 마치 누가 문을 살짝 건드리거나, 안에 뭔가를 ‘쥐고’ 놓는 느낌. 나는 처음엔 착각이라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소리가 나면 곧바로 향이 올라와. 문을 열기 전부터 먼저.
나는 결국 CCTV 어플을 깔고 휴대폰을 냉장고 앞쪽에 세워뒀어. 물론 거기서 뭘 봤다는 말은 못 하겠어. 화면에는 밤 내내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거든. 그런데 영상이 이상하게 멈춘 시간이 있어. 딱 내가 향을 느끼는 그 시간대, 30초에서 1분 정도 화면이 먹통처럼 뜨다가 다시 돌아와. 촬영이 멈춘 건지, 내가 모르는 순간에 전원이 꺼진 건지 모르겠어. 어쨌든 그 틈이 늘 같아.
그래서 마지막으로, 내가 정말로 확실하게 하려고 냉장고 안에 작은 종이 쪽지도 넣었어. ‘열지 마세요’ 같은 유치한 말이 아니라, 내가 찾기 쉬운 표시를 적어뒀지. 예를 들면 연필로 ‘○○’라고 써서 선반 안쪽 모서리에 붙인 거야. 그런데 다음 날 그 표시가 바뀌어 있었어. 지워진 게 아니라, 누가 연필을 덧그려서 ‘○○’ 옆에 뭔가를 추가해놨어. 말이 되지 않게 적어놓은 것도 아니고, 이상하게 내 필체처럼 힘이 들어가서 써둔 거라, 보는 순간 속이 철렁 내려앉았어.
그때부터 나는 냉장고를 “열기”가 아니라 “확인”으로만 써야 했어. 문을 열기 전엔 문 손잡이를 잡고 한 번 숨을 멈췄다가 향이 올라오는지 먼저 체크했지. 향이 오면 바로 닫아버려. 그런데 문제는, 향이 오지 않는 날이 거의 없다는 거야. 가끔은 내가 늦게 잠들었을 때만 향이 약하게 느껴져. 그럴 때는 냉장고 속이 덜 건드려져 있더라. 마치 내가 자는 타이밍을 기다리는 것처럼.
이제는 솔직히 말하면, 내가 제일 무서운 건 ‘누가 내 집에 들어왔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 사람이 나를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야. 냉장고는 잠깐만 열어도 공기가 섞이잖아. 그런데 그 향은 들어오는 즉시 어디든 퍼지는 게 아니라, 내가 냉장고 문을 열기 직전의 공기에서만 딱 “먼저” 올라와. 그래서 나도 모르게 생각하게 돼. 혹시 누군가가 내 냉장고를 열어보는 게 아니라, 내 행동을 먼저 보고 따라 하는 건 아닐까 하고.
며칠 전엔 아예 반대로 해봤어. 밤에 일부러 냉장고를 열어보지 않았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향은 먼저 올라오더라. 그런데 내가 문을 열지 않았는데도, 냉장고 안쪽에서 아주 조용히 ‘딱’ 하는 소리가 났고, 다음 순간엔 내 방에서 냉장고 문을 여는 소리 같은 게 울렸어. 나는 그게 내 귀 착각이라고 하기엔 너무 선명해서, 지금도 가끔 장난처럼 생각해. 원룸이 아니라, 냉장고가 내 방의 시간을 맞춰서 열리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