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서 기사님이 ‘여기서 내려서 뛰어야 해요’라고 말했어
택시에서 기사님이 ‘여기서 내려서 뛰어야 해요’라고 말했어. 근데 그 말이 그냥 목적지 착각 같은 게 아니라, 말끝이 너무 단단하게 끊어졌거든. 내가 “네? 왜요?” 하기도 전에 기사님은 사이드미러를 짧게 보고, 다시 핸들을 더 꽉 잡더니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어. 도로는 평소랑 똑같이 가로등이 켜져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날 밤만 유난히 소리가 둔하게 먹히는 느낌이었어.
나는 늦은 시간에 동네를 가로질러 가는 택시였고, 기사님이 내리라 한 곳은 내가 내릴 생각이 전혀 없던 골목 근처였어. 사실 목적지는 역이었는데 기사님이 “여기서 내리세요”라고 한 순간부터 뭔가가 틀어졌어. 그럼에도 나는 그냥 택시가 비상정차하기 애매한 길인가 싶어서 내렸지. 차가 멈추자 기사님이 창문을 반쯤 내리면서 “뛰어야 해요. 지금은 뒤가 늦어요”라고만 더 말했어.
뒤가 늦다니, 무슨 소리야 싶었는데 그때 골목 쪽에서 아주 작게 ‘뚝…’ 하는 소리가 났어. 멀리서 들리는 건지 가까운 건지 애매했는데,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기사님 얼굴이 잠깐씩 굳어지는 게 보였어. 나는 얼어붙었고, 기사님은 손으로 방향을 가리키더니 “저쪽 가로등 있는 데까지 뛰세요. 멈추지 말고요”라고 말했어. 근데 이상하게도 그 말이 ‘도움’ 같지 않고, 누군가 이미 정해둔 절차처럼 들리더라.
나는 결국 뛰기 시작했어. 골목은 생각보다 더 깊었고, 바닥은 젖어 있어서 신발이 미끄러질 때마다 심장이 같이 흔들렸어.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처럼 고개가 자꾸 돌아가려 했어. 그럴 때마다 머리 뒤쪽이 차갑게 식는 느낌이 들었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목구멍이 바짝 마르는 것 같았어. 가로등이 있는 곳까지 가야 한다는 말만 머리에 남아, 무작정 앞으로만 내달렸지.
가로등 아래에 도착하자 그제야 겨우 걸음을 줄일 수 있었어. 그런데 그 순간, 내 뒤에서 들리던 소리가 갑자기 끊겼어. 방금 전까진 어딘가에서 따라오는 느낌 같은 게 있었거든. 내가 도착하자마자 누군가가 멈춘 것처럼 조용해진 거야. 나는 순간적으로 ‘사람이 멈춘 걸까, 소리가 사라진 걸까’가 갈렸는데, 그 갈림이 더 무서웠어. 왜냐면, 내가 확실히 확인할 수가 없었거든.
나는 주변을 봤어. 가로등 아래에는 작은 편의점 간판이 반쯤 깨져 있었고, 벽에는 누군가 급하게 붙였다 떼어낸 종이 자국이 남아 있었어. 그리고 그 종이 자국 사이로 누군가 손가락으로 긁은 듯한 선이 보였는데, 선이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겹쳐져 있었어. ‘그냥 낡아서 그런 거겠지’라고 생각하려 했는데, 그날은 손끝이 민감하게 반응해서 그런지 몰라도, 뭔가 의도된 흔적처럼 느껴졌어. 그때 핸드폰을 꺼내려다가 손이 떨려서 한참을 못 눌렀고.
다시 택시 쪽을 봤을 땐 차가 이미 사라져 있었어. 아예 지나간 건지, 골목 안쪽 어딘가로 빠진 건지 알 수가 없었어. 그런데 내 뒤에서 ‘뚝’ 소리가 났던 방향이, 내가 뛰어온 방향과 정확히 겹치더라. 그러니까 내가 뛰어야 했던 거리는 “멀리서 따라오는 상황에서 도망”이 아니라, “특정 지점에서 시간을 바꾸는 방식” 같았어. 그 생각이 들자 몸이 더 굳어버렸고, 뒷목이 뻣뻣해지는 게 느껴졌어.
그리고 그때, 기사님 번호로 전화가 한 번 떴어. 분명 택시에서 내릴 때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내가 가로등 아래에 서자마자 진동이 울린 거야. 화면을 보자마자 받기 전에 자동으로 통화가 끊겼고, 문자 알림만 하나 남았어. 내용은 딱 한 줄이었어. “뛰는 동안 뒤를 보지 마세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투가 기사님 말투랑 너무 똑같아서 더 소름이 돋았어. 나는 그제야 ‘기사님이 날 살리려 했다’기보다, ‘누군가가 날 규정된 방식대로 움직이게 만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
그 뒤로 난 며칠간 그 구역만 지나가도 손이 차가워졌어. 택시를 다시 타는 것도 무서웠고, 늦은 길에서는 가로등 위치를 습관처럼 세게 확인하게 됐어. 가장 이상했던 건, 시간이 지나서 동네 사람들이랑 얘기하다가 “저 골목에 이상한 일 많다”는 말을 들은 거야. 구체적으로 뭘 봤는지는 아무도 말 안 했는데, 다들 공통으로 “기사님들이 한 번씩 이상하게 안내한다”는 식으로 흘려 말했어. 그때 나는 ‘여기서 내려서 뛰어야 해요’가 단순한 운행 실수나 농담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지금도 가끔 그 밤을 떠올리면, 뛰는 동안의 숨소리가 귀에 남아 있어.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남는 건, 내가 뛰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상상뿐이야. 기사님이 왜 그렇게 단정하게 말했는지, 왜 내 뒤를 보지 말라고 했는지, 그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어.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해. 그 말이 떨어진 순간, 내 선택지는 ‘도망칠지 말지’가 아니라 ‘어디까지 뛰느냐’로만 좁혀졌던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