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복도 조명이 깜빡일 때마다 내 몸이 잠깐 멈췄어
회사 복도 조명이 깜빡일 때마다 내 몸이 잠깐 멈췄어. 처음엔 전구 나간 줄만 알았는데, 매번 깜빡이는 타이밍이 너무 일정해서 나중엔 “또 시작됐다”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 그날도 퇴근 전 정리하다가 복도 끝으로 지나가는데, 딱 눈앞이 하얘지더니 내 발이 굳었어. 1초도 안 되는 것 같은데, 몸만 멈춘 느낌이 아니라 마음까지 같이 얼어붙는 느낌이었음.
처음에는 내가 피곤해서 착각한 거라고 넘겼어. 근데 다음날, 같은 복도, 같은 시간대에 불이 한 번 껌뻑하고, 그 순간 내가 멈추는 게 또 반복됐어. 나는 복도를 자주 다녀서 동선이 익숙한 편인데, 멈출 때마다 손에 들고 있던 서류 모서리가 이상하게 “손이 아닌 어딘가에 걸린 것처럼” 무거웠어. 그리고 멈춘 뒤엔 다시 움직이긴 하는데, 그 사이에 주변 소리나 사람들의 말소리가 살짝 늦게 따라오는 느낌이 들었어.
특히 이상했던 건, 내가 멈추는 동안 다른 것들은 멀쩡하다는 거야. 어떤 날은 앞에서 팀원이 걸어오다가 조명이 깜빡였는데, 그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계속 걸어오더라. 나는 뒤늦게 따라 움직였고, 그 팀원한테 “너 아까 뭐 들은 거 있어?”라고 물어보려다 말았어. 이상한 반응이 나올까 봐가 아니라, 내가 멈춘 그 찰나의 공기 자체가 너무 달라서 말하기가 싫어졌거든.
며칠 지나고 나서야 패턴을 잡았어. 조명이 깜빡일 때마다 특정 구간에서만 멈추는 게 아니라, 복도 전체가 아니라 “중간쯤”에서만 그랬어. 천장에 달린 조명들이 줄지어 있는데, 그중 세 번째 스위치쯤 앞을 지나갈 때마다 내 몸이 멈추더라. 마치 누군가가 내 좌표만 딱 꾹 눌러두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일부러 그 구간을 피해서 돌아가려 했는데, 우회하면 또 다른 이상한 지점에서 비슷하게 멈춰버렸어. 그러니까 내가 피할 수 있는 길이 아니었던 거지.
회사 사람들은 복도 조명이 좀 흔들린다고 말은 했어. “여름만 되면 그런가 봐” 같은 얘기. 하지만 나는 전기공사나 교체 공지가 없었던 걸 기억해. 조명이 깜빡이는 건 전구 문제로 보기엔 너무 짧고, 매번 같은 타이밍이었어. 그리고 무엇보다, 깜빡일 때마다 내 손목의 시계 초침이 아주 잠깐 멈춘 다음 다시 가는 게 보였어. 그건 그냥 기분 탓이라 하기엔 너무 명확했지.
나는 그날 점심시간에 복도 조명 담당으로 보이는 유지보수 기사님을 우연히 만났어. “요즘 복도 불이 가끔 깜빡이는데, 전기 문제 있는 거 아니에요?”라고 물었더니, 그는 잠깐 웃고는 “아, 그거요?”라고 하더라.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그 구간만 들어가는 신호가 있어요. 오래된 배선이라 그래도 정상이에요”라고 말했어. 정상이라고 했는데, 그 말 끝이 이상하게 공백처럼 느껴졌어. 마치 더 말하려다 삼킨 사람처럼.
그날 이후로는 더 조심하게 됐어. 출근할 때는 복도를 천천히 걸어보고, 일부러 조명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낮췄어. 그런데도 가끔은 멈춰버렸고, 멈추는 동안 이상하게도 “다음 순간”이 아니라 “직전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어. 그러니까 시계는 앞으로 가는데, 내 기억 속 시간은 살짝 밀렸다가 따라붙는 느낌. 그때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는데, 이상하게도 공포영화처럼 등골이 서는 게 아니라, 몸이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무덤덤함이 있었어. 그게 제일 소름이었어.
어느 날 밤, 야근하고 사무실 불을 끄려는데, 복도에서 아주 희미한 발소리가 들렸어. 사람 있는 줄 알았는데, 복도는 텅 비어 있었거든. 나는 문을 닫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어서, 조명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어. 그 순간 복도 조명이 깜빡였고, 내 시야 한가운데가 잠깐 ‘비어버린’ 느낌이 들더라. 멈춘 건 나였는데, 발소리는 멈추지 않았어. 발소리가 내 쪽으로 가까워졌다가, 깜빡임이 끝나자마자 다시 멀어지더라. 그리고 나는 문을 닫는 손만 늦게 움직였어. 문고리는 분명 잡았는데, 닫히는 소리가 한 박자 늦게 들렸거든.
그 뒤로 난 복도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됐어. 다음 번 깜빡임이 오면 나는 또 멈추겠지, 그리고 그 틈에 누군가의 걸음이 내 옆을 지나갈 수도 있겠지, 그런 생각이 머리를 떠나질 않았어. 지금도 복도 조명은 원래대로 돌아왔대. 점검도 했고 전구도 교체했대. 근데 나는 아직도 세 번째쯤 앞을 지나갈 때, 아주 미세하게 공기가 식는 걸 느껴. 마치 내 몸이 아니라 내 “통과권”이 잠깐 정지되는 것처럼. 그 깜빡임이, 누군가가 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일부러 끄고 켜는 신호가 아닐까, 그런 생각만 계속 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