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주차장 벽면에 내 키만큼의 높이로 검은 자국이 생겨
지하주차장 벽면에 내 키만큼의 높이로 검은 자국이 생겨. 처음엔 그냥 누가 손자국 같은 걸 문질렀나 싶었는데, 그날 따라 이상하게도 위치가 딱 맞아떨어졌어. 주차장에서 내 차를 세우고 내리자마자, 기둥 옆 벽 타일 사이로 검은 선이 세로로 쭉 이어져 있는 게 보였거든. 내 신장하고 거의 같은 높이. 웃긴 건 그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번이나 지나도 계속 같은 자리에서 선명하게 남아 있다는 거였어.
처음 확인한 건 퇴근하고 나서였어. 퇴근 시간이라 사람도 많지 않았고, 복도등이 약간 노랗게 깔려서 벽면이 더 칙칙해 보이기도 했지. 자국은 완전히 검다기보단 기름때처럼 눌러앉은 느낌이었어. 폭은 내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얇았는데, 대신 길이가 문제였어. 바닥에서 대략 내 어깨쯤까지, 그러니까 내 키에 맞춘 것처럼 딱 끊기는 지점이 있었어. 위쪽은 매끈하게 잘린 듯, 아래쪽도 발 밑으로 퍼지지 않고 고정된 경계가 보였고.
그 다음 날부터는 신경이 쓰여서 주차할 때마다 일부러 돌아봤어. 벽면은 다른 쪽에는 전혀 그런 자국이 없었거든. 그런데 그 세로 자국만은 매일 같은 선명도로 남아 있었어. 비가 와서 바닥이 젖어도, 세차한 날이라 내 차 주변이 반짝여도, 그 자국만큼은 그대로. 관리실에 말할까 하다가도, 혹시 누가 일부러 장난치나 싶어서 참았지.
근데 이상한 소리가 들린 건, 자국이 생긴 지 이틀째쯤이었어. 나는 지하주차장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올라가기 전에 항상 뒤를 한 번 보거든. 그날도 차 키를 들고 돌아서는 순간, 벽 쪽에서 아주 작게 ‘스윽’ 하는 소리가 났어. 마치 누가 손으로 문질러서 묻히는 소리 같은데, 그렇다고 바닥에 누가 있는 건 아니었어. CCTV가 없거나 사각인지 확인도 못 했고, 내가 그 소리를 들었을 때는 복도도 텅 비어 있었어.
나는 그날 이후로 자국이 생긴 기둥 위치를 기준으로 시선을 고정했어. 그리고 어느 날, 주차 라인 바깥으로 잠깐 차를 뺐다가 다시 세우려고 하는데, 그 순간 자국이 더 선명해지는 느낌을 받았어. 실제로 새로 생겼다기보단, 이미 있던 게 더 진해진 것처럼. 그 타일과 타일 사이 경계에 딱 맞춰 이어져 있어서, 누가 벽을 따라 뭔가를 흘려놓은 흔적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래서 결국 관리사무실에 연락했어. “벽면에 검은 자국이 있어요. 한동안 계속 남아 있어요”라고 말했더니, 관리자는 대수롭지 않게 “기름때나 스치고 지나간 자국일 거예요. 청소 돌려보죠”라고 했어. 다음 날 청소업체가 왔고, 세정액을 뿌리고 닦아내더라고. 그런데 신기하게도 자국은 완전히 지워지진 않았어. 물티슈로 문지른 것처럼 겉은 옅어졌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자 다시 원래 선명도로 돌아오는 것 같았어. 그때부터 나는 단순한 얼룩이 아니라 ‘남아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그 이후로는 더 찝찝해졌어. 나는 평소에 키를 신경 쓰는 편이 아닌데, 그 자국 높이가 내 신장과 맞아떨어진다는 게 자꾸 떠올랐거든. 설마 내가 그 위치를 자주 지나서 ‘기억이 맞춰진 것’이라고 합리화해보려 했는데, 그러면 왜 다른 사람들 키와는 안 맞을까? 같은 시간대에 복도에 사람들이 지나가도, 그 검은 선은 그대로 내 위치만 가리키는 것처럼 보였어. 누가 그 앞에서 사진을 찍어도, 카메라로 찍힌 화면에서도 높이가 이상하게 맞아 보이더라. 그건 내가 주관적으로 보는 착각일 수 있지만, 그날만큼은 되게 분명하게 느껴졌어.
그리고 결정타는 주말 새벽에 일어났어. 나는 야근 후에 피곤해서 차를 찾고 곧장 집으로 가려고 지하로 내려갔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눈에 들어온 게 그 자국이었어. 그런데 이번엔 색이 더 진했고, 선이 ‘내가 서 있는 자세’를 따라 약간 꺾여 보였어. 마치 벽이 나를 기억해두었다가, 그 형태를 다시 그려놓은 것처럼. 내가 서 있는 각도에 따라 검은 선의 경계가 달라지는 느낌이 들었고, 그 순간 등 뒤가 서늘했어. 분명히 아무도 없는데, 내 그림자 같은 게 벽에 얹혀 있는 느낌이랄까.
결국 나는 그곳에 차를 덜 대고, 다른 출입구로 내려가기 시작했어.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자국이 있는 벽면 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더라. 누군가가 지나가면 생기는 얼룩이라면 지워질 때도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그건 계속 남아 있었어. 누가 장난친 걸 수도 있겠지, 관리가 늦거나 세정이 제대로 안 됐을 수도 있고. 근데 내가 가장 소름이 끼쳤던 건, 그 자국이 ‘내 키만큼’이라는 사실이었어. 이게 우연이라기엔 너무 정확해서, 그 뒤로는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지하주차장 어딘가에서 계속 같은 위치에 서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만 계속 들더라.
지하주차장 벽면에 내 키만큼의 높이로 검은 자국이 생겨라는 문장을 이제는 그냥 떠올리는 게 아니라, 벽이 나한테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져. 다음에 그 자리로 가면, 이번엔 내 키보다 조금 더 위로 선이 생길까… 아니면 반대로, 내가 그 높이에 맞춰져 버릴까.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데도, 지하의 어둠은 자꾸 내 쪽으로 한 발씩 다가오는 느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