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빌려준 옷 돌려줄 타이밍 놓친 썰
친구가 빌려준 옷 돌려줄 타이밍을 놓친 게 지금도 가끔 생각나. 처음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거든. 그냥 “다음에 연락할게” 하고 끝낼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그 다음이 계속 밀리더라.
그날은 내가 갑자기 중요한 모임에 가게 됐는데, 정장이라고 해도 딱히 제대로 된 게 없어서 친구한테 도움을 요청했어. 친구가 보관해둔 옷이 있다고 하길래 얼른 빌려 입었지. 옷은 깔끔했고, 무엇보다 내가 평소에 손이 잘 안 가는 스타일이라 분위기까지 살더라. 그래서 고맙다고, 꼭 바로 돌려주겠다고 말도 했어. 말은 되게 확실하게 했는데.
모임이 끝나고 집에 와서 옷 상태를 확인했어. 구김이 조금 있긴 했지만, 생각보다 잘 입고 다녔더라. 그래서 다음 날 아침에 바로 드라이 비용 생각하면서도 “오늘 저녁에 들고 가야겠다” 싶었지. 근데 하필 그날 일이 꼬였어. 오전부터 계속 전화가 와서 미뤄지고, 오후에는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이동이 귀찮아졌고, 결국 밤이 되니까 “내일은 꼭”이 됐어.
다음 날은 더 웃겼어. 옷을 들고 나갈 생각으로 옷걸이에 걸어두고 가방에 넣어둔 상태였는데, 친구가 갑자기 단톡에 “나 오늘 야근한다” 이런 걸 올리더라고. 그걸 보고 나도 모르게 마음이 바뀌었어. 야근하는 날 찾아가면 불편하겠다, 그리고 내가 들고 가도 바로 받을지 애매하겠다 싶어서 “내일은 일찍 갈게”로 또 미뤘지. 사실 친구가 야근하는지 아닌지보다, 내가 그냥 미루는 핑계를 찾고 있었던 것 같아.
그러고 일주일이 지나갔는데, 여기서 문제가 터졌어. 친구랑은 계속 연락은 했거든. 그냥 안부 정도는 주고받았는데, 옷 얘기를 꺼내는 순간이 자꾸 부담스러워지는 거야. “아 옷은 돌려줄게요”라고 보내면 나도 편한데, 왜인지 내가 먼저 빌려 달라고 말한 사람이니까 더 형식적으로 해야 할 것 같고, 그러다 보면 더 늦어지는 느낌? 그래서 대화는 계속 이어졌는데, 옷은 공중에 떠버린 거지.
결정적으로 타이밍을 놓친 건, 내가 그 친구한테 다시 부탁 비슷한 걸 하게 된 순간이야. 어떤 행사 정보가 필요해서 잠깐 물어봤는데, 친구가 친절하게 자료도 찾아서 보내줬어. 고마운 건 맞는데, 그 고마움이 쌓이니까 오히려 미안함이 같이 커지더라. 그래서 “그럼 옷은 언제쯤”이라고 꺼내야 하는데, 내가 먼저 빌린 사람이라 그런지 더 조심스러워져서 말을 더 늦게 하게 됐어. 솔직히 말하면, 그냥 내 양심이 불편해져서 도망간 거지.
결국 두 달 가까이 됐을 때, 내가 직접 옷을 들고 찾아가기로 마음 먹었어. 근데 막상 날 잡으려니까 또 고민이 생기더라. “이게 내가 지금 찾아가도 되나?” “집 앞에 두고 가면 되나?”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었고, 그러다 또 일정이 겹쳤어. 그래서 이번엔 택배로 보내볼까 했는데, 친구가 예전에 “택배로 보내면 내가 받는 걸 깜빡해서 더 번거로울 때가 있다”는 말을 했거든. 그 말을 기억해버린 게 패착이었지.
그러다 어느 날, 친구가 먼저 내게 “너 요즘 바빠?”라고 물어봤어.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나는 바쁜 게 아니라, 바빠 보이려고 옷 돌려줄 타이밍을 계속 미룬 건데. 그래서 그냥 솔직하게 말할까 하다가도, 내가 생각하기엔 너무 민망한 상황이라 “그냥 일이 좀 많아서”라고 얼버무렸어. 그리고 그날 밤에 결국 결심했지. 아무 말 돌려 말하지 말고 오늘 보낼 것. 옷을 다시 확인하고, 주머니에 내가 뭘 넣었는지까지 전부 확인한 다음에 편지 한 장도 같이 넣었어.
다음 날 친구한테 연락해서 “미안해, 옷 지금 보냈어. 사실 두 달 넘게 미룬 것 같아서 괜히 더 민망해서 직접 말도 못 했어”라고 메시지를 보냈어. 친구가 바로 답장을 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담담하더라. “나도 까먹었어, 어차피 옷 잘 입었으면 됐지. 다음부턴 그냥 바로 말해” 이 말이 그렇게 가볍게 오는데, 내 마음은 왜 그렇게 무거웠는지 몰라. 나는 그때서야 깨달았어. 옷은 돌려주면 끝나는 문제인데, 내가 미룬 시간 동안 쌓인 건 돈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라 관계에 대한 미안함이었더라.
지금도 가끔 그 옷을 다시 생각하면 웃기면서도 찝찝해. 남들은 “그 옷 어차피 다시 입을 거 아니야?”라고 할 수도 있는데, 난 그게 아니었어. 돌려주는 타이밍이란 게 사실 특별한 날이 아니라, 그냥 마음이 편해지기 전에 바로 움직이는 습관 같은 거더라. 그 이후로는 뭐든 빌리면 바로 돌려주려고 하고, 혹시 미뤄질 것 같으면 먼저 한 번이라도 솔직하게 말하려고 해. 아직도 가끔은, 내 머릿속에서 그 옷걸이가 조용히 걸려 있는 것처럼 남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