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에서 층 표시가 내 기억과 다르게 숫자를 세었어
엘리베이터에서 층 표시가 내 기억과 다르게 숫자를 세었어. 처음엔 그냥 촌스러운 고장인 줄 알았는데, 타이밍이 너무 정확해서 오히려 소름이 돋더라. 그날도 평소처럼 아파트 10층에서 내리려고 했고, 나는 버튼을 누르는 순간까지도 “10층이 맞지”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엘리베이터는 늘 그렇듯 7층까지는 금방 올라갔어. 나는 휴대폰을 보고 있다가, 어느 순간 화면에 10이 깜빡이며 켜지는 걸 봤지. 그런데 동시에 소리도 없이 숫자가 한 칸씩 넘어가는 느낌이 들었어. 문이 열리기 전에, 표시창이 자꾸만 “9…10…9…10”처럼 왕복하는 것 같았어.
처음엔 내가 눈을 잘못 본 건가 싶어서 고개를 다시 들었어. 하지만 표시등은 또렷했어. 10층 버튼을 눌렀는데, 화면은 어느새 11을 가리키고 있었고, 바로 다음 순간에 8층으로 떨어졌어. “장난하나?” 싶어서 버튼을 다시 눌렀는데, 누른 흔적이 남는 감각마저 이상할 정도로 반응이 늦었어.
문제는 그때부터였어. 엘리베이터가 이상하리만치 조용해졌거든. 원래는 모터가 살짝 우는 소리랑, 층 이동할 때 특유의 미세한 덜컹거림이 있는데, 그날은 그런 게 거의 안 들렸어. 대신 숫자만 정확하게 변했어. 내가 보고 있는 방향과 상관없이, 표시가 먼저 “올라가고” “내려가고” 했어.
나는 갑자기 손바닥에 땀이 차는 걸 느꼈어. “혹시 층수 표기가 바뀐 구간이 있나?” 하고 관리실 번호를 떠올렸는데, 생각보다 머리가 하얘지더라. 그래도 문이 열리면 확인하면 되니까, 그냥 기다리자고 마음을 다잡았어. 근데 정작 문이 열릴 때마다 층은 달랐어. 표시창은 분명히 숫자를 세고 있는데, 문이 열리는 곳은 내가 아는 동선이 아니었어.
한 번은 10층이라고 뜬 상태에서 문이 열리더니 복도가 어두웠어. 우리 동에서 흔히 보이는 현관문 간격이 아니라, 벽 색도 조금 달랐어. 나는 그 앞에서 한 발도 못 내딛고 다시 버튼을 눌렀는데, 문이 다시 닫히고 나서 표시창이 7에서 멈추는 게 보였어. 그때 알았지. 엘리베이터가 “층”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내가 기억하는 층을 바깥에서부터 하나씩 지우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걸.
그 다음부터는 아예 숫자를 세는 방식이 바뀌었어. 표시창이 1부터 차례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내 머릿속에 있는 숫자를 건드리듯 “방금 전 생각한 층”으로 튀어 오르더라. 예를 들면 내가 “10이니까…” 하고 입으로 중얼거리면, 화면이 바로 10에 고정됐고, “아니 9였나?” 같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 9로 바뀌었어. 이상하게도 그 생각이 더 또렷해질수록 숫자가 더 빠르게 변했어.
나는 결국 1층 버튼을 눌렀어. 그냥 내려가자, 아무 생각 없이 나가자고.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느낌이 없었어. 바닥이 미끄러지듯 미세하게 밀려야 하는데, 그날은 마치 공간이 접히는 것 같았거든. 표시창은 끝까지 1로 내려오지 않고, 3에서만 오래 멈췄어. 그리고 3에서 한 번 깜빡일 때마다, 머릿속에 내 기억이 끊기는 느낌이 들어. “내가 원래 여기 살았던가?” 같은 생각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거야.
문이 열렸을 때는 3층 복도였어. 그런데 내가 알던 3층이 아니었어. 계단 쪽으로 가는 방향 표시도 달랐고, 복도 끝에 있는 분리수거장 위치가 반대편에 있었어. 나는 거의 뛰듯 문 앞을 지나 계단으로 내려갔고, 내려가는 동안 엘리베이터 표시창이 내 머릿속에서 계속 숫자를 세는 것처럼 들렸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며 ‘딩’ 소리가 한 번 나더니, 그 다음부터는 아무 소리도 안 났지.
그날 이후로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층 표시를 한번 더 확인하게 됐어. 근데 이상한 건, 시간이 좀 지난 뒤부터는 표시가 멀쩡하다는 거야. 버튼도 잘 먹고, 문도 정해진 곳에서 열려. 다만 가끔, 정말 가끔 아주 짧게 화면이 깜빡일 때가 있는데 그때 나는 내가 세던 숫자가 아니라, 누가 내 머릿속을 먼저 세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날 엘리베이터가 “층”을 세운 게 아니라, 내 기억을 대신 세었던 건 아닐까… 아직도 그 생각이 멈추질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