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서 내리는 순간 기사님이 고개를 돌려 웃었어
택시에서 내리는 순간 기사님이 고개를 돌려 웃었어. 그냥 기사님들 특유의 친절한 인사인 줄 알았는데, 웃음이 너무 늦게 따라왔고… 어쩐지 그 표정이 내가 타고 있는 동안 계속 같은 각도를 유지하고 있었던 사람처럼 느껴졌거든.
그날은 비가 아주 살짝 오락가락하던 저녁이었어. 나는 지하철역에서 한 정거장 더 가려고 택시를 잡았고, 목적지는 ‘OO동’ 쪽이라고만 말했지 정확한 번지까지는 몰랐어. 기사님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더니 내비는 켜지도 않은 채로 도로를 알아서 타고 갔어. 처음엔 그냥 길이 익숙한가 보다 했어.
차 안 공기는 이상하게 건조했어. 창문은 살짝만 열려 있었고, 창밖 비 냄새가 들어올 법한데 아무 냄새가 안 났거든. 음악도 거의 안 틀었고, 라디오 잡음이 잠깐 들린 다음 바로 뚝 끊겼어. 나는 기사님이 뭔가에 집중하고 있나 싶어서 그냥 창밖을 봤지.
중간에 신호가 길게 걸렸는데, 그때 기사님이 핸들을 잡은 채로 고개를 옆으로 아주 잠깐 돌렸어. 그게 내 쪽인지 아닌지 애매할 정도로 짧았는데, 내가 돌아보는 순간 다시 정면을 봤어. 보통은 손님이랑 눈이 마주치면 웃거나 말을 건네거나, 최소한 ‘아 미안’ 같은 표정이라도 나오잖아. 근데 그분은 그런 게 전혀 없었어.
내가 ‘여기서 세워 주세요’라고 말하려고 입을 열었을 때, 기사님이 먼저 말했어. “여기요.” 하고. 근데 내가 내릴 위치를 정확히 말한 적이 없거든. 그냥 내 체감으로 한 블록쯤 더 가면 될 것 같아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택시는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한 번 더 꺾은 골목 앞에 딱 멈췄어. 기사님 손은 정지한 채로 깔끔하게 브레이크만 잡고 있었고, 차 안은 갑자기 더 조용해졌어.
나는 문을 열고 내리려다가 잠깐 멈칫했어. 기사님이 뒤를 보던 느낌이 있었거든. 하지만 거울을 확인하진 않아서 확신은 없었어. 그래도 안전벨트를 풀고 한 발 내딛는 순간, 기사님이 고개를 돌려서 웃었어. 웃음이 그냥 ‘왔습니다’ 같은 게 아니라… 내가 내리는 타이밍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표정 같은 거였어.
그 웃음은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이었는데도, 이상하게 머릿속에 오래 남아. 입꼬리가 올라가는데 눈동자가 따라 올라오지 않았고, 마치 사진 속에서만 움직이는 사람처럼 납작하게 느껴졌어. 나는 얼른 뒷걸음치듯 내렸고, 도로 쪽을 보면서 ‘감사합니다’ 한마디를 했어. 기사님은 답은 안 하고, 그냥 다시 정면만 봤지.
문을 닫고 두세 걸음 걸었는데, 택시가 출발하는 소리가 평소보다 늦게 났어. 보통은 내리자마자 바로 움직이잖아. 근데 그분은 차를 움직이기 전에 잠깐 멈춰 있었고, 그 사이에 나는 뒤를 한 번 더 봤어. 창문을 통해 기사님 얼굴이 보이긴 했는데, 그때는 아까 그 웃음이 없었어. 대신 앞유리 너머 어둠을 보며 아주 고요하게 앉아 있었어. 마치 내가 뒤를 보는 걸 기다린 것처럼.
그날 이후로 이상한 점이 계속 떠올라. 내가 택시에 타기 전, 정류장에서 기사님을 잡을 때 이미 차가 한 번 지나갔거든. 그런데 그때는 분명히 빈차였는데, 막상 내가 손을 흔들자마자 멈춰서더라고. 또 내비를 켜지 않았는데도, 길을 틀 때마다 내가 내릴 것 같은 지점으로 정확히 맞추는 느낌이 있었어. 무엇보다… 내가 ‘OO동’이라고만 말했는데도, 기사님이 정해준 곳은 내가 어릴 때 살던 골목이랑 너무 비슷했어. 나는 그 동네를 오래 못 가서 익숙하다고 생각할 정도로만 기억했는데, 택시는 그 감각을 바로 찔러 들어온 거지.
요즘도 가끔 택시에서 내릴 때, 그 짧은 웃음이 생각나. 내가 무슨 행동을 하기 전에 누군가가 먼저 정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잖아. 근데 그날은 웃음 뒤에 아무 설명도 없었어. 그래서 더 무섭더라. 고개를 돌려 웃던 그 시선이, 내가 내리기 직전의 ‘나’만 확인하고 떠났던 건지… 아니면 이미 다른 사람이 내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 아직도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