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지하에서 누가 내 이름이 적힌 서류를 들고 가는 걸 봤어
회사 지하에서 누가 내 이름이 적힌 서류를 들고 가는 걸 봤어. 처음엔 그냥 착각이겠지 싶었는데, 그날 이후로 자꾸 같은 장면이 머릿속에서 되감기더라. 퇴근하고 승강기 타기 전, 복도 형광등이 한 번 깜빡이던 그 순간부터.
난 보통 지하 1층 창고 쪽을 피해서 엘리베이터를 타. 물류 동선이랑 겹치면 사람도 많고, 냄새도 그렇고, 무엇보다 “거긴 어차피 급한 일 아니면 안 가는 게 맞다”는 분위기가 있어. 근데 그날은 상사가 갑자기 내 부서 파일을 확인하라면서, 내 이름이 적힌 출력물이 필요하다고 했거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잠깐 내려갔다.
지하 계단으로 내려가자 특유의 차가운 공기가 확 들어왔어. 벽에 붙은 안내 표지에는 “서류 보관 구역”이라고만 적혀 있었고, 문은 반쯤 닫혀 있었지. 난 그냥 “열쇠 맡겨둔 직원 있나?” 정도로 생각했는데, 멀리서 누가 천천히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어. 발소리가 아니라 바닥을 스치는 소리처럼, 종이를 쓸어 넘기는 느낌이랄까.
그때 누군가가 서류 묶음을 들고 지나갔는데, 자세히 보이진 않아도 표지 상단에 내 이름이 또렷하게 보였어. 내가 알던 내 글씨체랑 비슷했거든. 회사에서 쓰는 출력물이라 폰트가 같긴 해도, 가끔 누가 옵션 건드리면 글자 간격이 미세하게 달라지잖아. 그 서류는 딱 그 느낌이었어. 내가 그 안을 만들거나 검토했던 건 아니었는데, 내 이름이 정확히 적혀 있었던 게 문제였지.
그 사람은 내 쪽을 보지 않고, 문가 쪽으로 가서 손잡이를 잡더니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어. 나는 너무 놀라서 멈춰 섰고, 한참 뒤에야 따라가려는 생각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 문틈에서 아주 얇은 종이 울림 같은 게 났어. 바람도 없는데, 종이가 혼자 한 번 정리되는 소리랄까. 어쩐지 그 안에 누군가가 더 있는 것 같아서, 무작정 들어가면 내 질문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거잖아. 그래서 그냥 돌아오려고 했어.
근데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려고 손을 뻗는 순간, 내 휴대폰이 진동을 했어. 사내 메신저가 온 거였는데, 상사한테서 “서류 확인했지? 지하 보관구역에 넣어둬”라고 뜨더라. 방금 전까지는 상사랑 통화도 했고, 서류를 내가 들고 갈 건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았거든. 더 웃긴 건, 메시지에 첨부가 없었는데도 “확인했지?”라는 문장이 딱 내가 그걸 본 상황을 아는 것처럼 자연스럽다는 거야.
나는 바로 다시 지하로 내려갔어. 솔직히 말하면, 그건 호기심이라기보다 “지금 내가 미친 건가” 확인하려고 간 거였지. 보관구역 문은 여전히 반쯤 닫혀 있었고, 안쪽은 어둑했어. 그런데 내가 들어가기도 전에, 바닥 쪽에서 종이 한 장이 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어. 누군가가 급히 정리하다가 떨어뜨린 것처럼 얇게 ‘툭’ 하고. 그 종이를 집어 들었는데, 거기에 내 이름이 또 적혀 있더라. 이번엔 날짜가 오늘로 되어 있었고, 아래 칸에는 체크가 되어 있었어.
근데 확인해야 할 체크가… 내가 한 게 아니었어. 나는 창고 쪽에서 서류를 “만지지도” 않았거든. 손바닥에 묻은 잉크 냄새 같은 건 없었고, 문서가 새 종이처럼 매끈했어. 그렇다고 누가 장난친 것치고는, 너무 디테일이 맞았어. 이름 철자, 줄바꿈 위치, 그리고 종이 모서리를 접어둔 방식까지. 그 순간 이상하게도 등 뒤가 서늘해지더라. 누가 내 바로 옆에 서 있는 느낌인데, 돌아보면 아무도 없고 공기만 차갑고 조용한.
다시 문을 열고 안쪽을 살펴봤는데, 서류 선반은 정리돼 있었어. “누가 들고 가는지”는 보였는데, 남은 자리는 이상하게 비어 있지 않았거든. 즉, 누가 가져간 게 아니라… 이미 누가 넣었다는 느낌이었어. 내가 봤던 묶음과 같은 형태로 새 더미가 정렬되어 있었고, 그 안쪽 맨 위에 또 내 이름표가 붙어 있었지. 난 그걸 보자마자 손이 얼어붙어서, 그냥 서둘러 문을 닫고 계단으로 올라왔어. 그 뒤로는 지하 통로만 지나가도 자꾸 목덜미가 당기는 느낌이 들더라.
며칠 뒤, 상사가 나를 불러서 “너 요즘 지하 자주 가냐?”고 물었어. 나는 아니라고 했고, 상사는 웃으면서 “그 서류들 관리가 좀 필요하거든. 너 이름이랑 맞아서 내가 편하게 맡겼지”라고 말했지. 그 말이 왜 그렇게 찝찝하게 들렸는지 모르겠어. 편하게 맡겼다니, 그게 왜 내가 선택한 일이 아니지. 그날 이후로 내 메일함이나 메신저 기록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이상하게도 ‘지하에서 가져갔다’는 로그는 없었어. 대신, 내가 확인한 적 없는 “확인 완료” 같은 문구만 가끔 보이더라.
지금도 가끔 지하 엘리베이터 거울에서 내 얼굴이 잠깐 멈춰 보일 때가 있어. 형광등이 깜빡이기 시작하면, 마치 누가 뒤에서 종이를 넘기듯 소리가 들리는 날이 있고, 그 소리가 나면 내 이름이 붙은 서류가 어디선가 움직인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 내가 본 건 착각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내 이름을 ‘일’처럼 다루는 걸까. 아직도 그 질문이 끝나지 않고, 문을 닫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덜컥 내려앉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