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음식 포장에 내 이름 말고 ‘다른 호수’가 찍혀 있었어
배달음식 포장에 내 이름 말고 ‘다른 호수’가 찍혀 있었어. 오늘도 그냥 평범하게 앱에서 시켰고, 도착 알림 뜨자마자 현관문 열었거든. 그런데 비닐 포장을 잡는 순간부터 뭔가 찝찝했어. 박스 옆면에 내가 쓰는 이름이 아니라, 분명히 다른 집 호수가 적혀 있었거든.
처음엔 내가 착각한 줄 알았어. 앱에 내 주소랑 호수가 정확히 나오니까, 혹시 출력이 잘못됐나 싶어서 포장 상태를 다시 봤지. 근데 글씨가 그냥 손글씨도 아니고, 배송 라벨이랑 같이 인쇄된 형태였어. ‘다른 호수’라고 딱 박혀 있고, 그 옆에 내 이름이 있어야 할 칸엔 전혀 다른 표기가 들어가 있었어.
나는 그 자리에서 잠깐 멈칫했어. 배달 기사님이 “혹시 여기 맞나요?” 하고 묻기도 전에, 바로 계산부터 확인하고 싶었거든. 그래서 박스를 열기 전에 라벨 쪽을 다시 확인했는데, 주문번호랑 시간도 내가 시킨 거랑 거의 맞물려 있었어. 그러니까 완전 다른 주문을 가져온 것도 아닌 것 같았어. 누군가의 ‘호수’만 바뀌고, 나머지는 내 주문이랑 맞는 느낌이 들었지.
그래도 설마 싶어서 기사님에게 전화했어. 받자마자 “아, 방금 전달하고 가신 건가요?” 하고 확인했는데, 기사님 목소리가 이상하게 빨리 식더라. “네, 맞아요. 라벨도 찍혀 있는 거 그대로 드렸어요.” 이 말만 하고 통화를 빨리 끊으려는 느낌이었어. 보통은 ‘죄송합니다’나 ‘한 번 더 확인해볼게요’ 같은 말이 나오잖아.
난 결국 음식은 받긴 했어. 배고픈 것도 있었고, 기사님이 이미 출발했을 테니까. 근데 문제는 ‘먹고 끝’이 아니더라. 포장지 안쪽에 붙은 영수증 같은 종이에서, 또 한 번 똑같은 호수 표기가 보였어. 그때부터 가슴이 서늘해졌지. 단순히 바깥 라벨만 잘못 붙인 거라면 안쪽까지 똑같이 나올 이유가 없잖아.
내가 사는 곳은 아파트가 아니라 빌라라서 번호가 좀 헷갈릴 수는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사는 호수랑 완전히 다른 호수까지 라벨이 똑같이 찍히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느꼈어. 더 웃긴 건, 그 ‘다른 호수’가 내 옆집이 아니라 반대편 라인에 있는 집이란 거야. 내가 출입문 계단을 통해서 동선이 한 번에 딱 갈리는데, 그쪽 호수는 내가 평소에 만날 일도 거의 없거든.
그래서 다음 행동은 단순했어. 배달 앱에 들어가 “포장 라벨/주소 확인 요청”을 남겼지. 그리고 혹시나 해서 고객센터에 전화도 했어. 상담원은 차분하게 “이전 라벨이 섞였을 수 있다”는 말만 반복했는데, 이상하게 “어떤 호수로 찍혀 있었는지”를 묻지 않더라. 내가 말하기 전에 상대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어. 그 말투가 꼭 ‘이미 처리된 건’이라는 느낌이랄까.
그날 밤, 나는 설거지하면서도 계속 그 라벨을 떠올렸어. 포장지 버리기 전에 혹시나 사진을 남겨두려는데, 이미 사용한 물티슈 자국이 라벨 쪽을 덮고 있더라. 손으로 대충 문질렀던 게 문제였나 싶어서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걸 고의로 지웠을 리는 없잖아. 그런데 이상하게도 라벨의 일부가 조금씩 흐릿해져 있었어. 잉크가 번진 것도 아닌데, 마치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지는 느낌이었거든.
며칠 뒤, 그 ‘다른 호수’가 적힌 세트를 받았다고 연락이 왔다는 걸 들었어. 같은 빌라에 사는 지인이 우연히 복도에서 마주쳤는데, “어제 누가 음식 잘못 받았대”라고 하더라. 그 집도 내 호수랑 반대로 섞여 있었다는 식의 얘기였어. 근데 문제는, 지인이 말한 그 집 이름이 내 앱 주문 내역에 표시된 이름이랑 비슷하더라. 완전히 다른 사람인데, 이름의 첫 글자만 같다고 해야 하나. 내가 기억하는 철자랑 한 글자 차이였고, 그 정도면 오타로 넘어갈 수준이 아닌 것 같았어.
오늘도 배달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오고, 나는 문 앞에서 현관문 열고 받는 걸 반복하고 있어. 근데 그날 이후로 문을 열기 전에 라벨을 한 번 더 보게 됐어. 그리고 가끔은 생각해. 만약 그 포장이 내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그 ‘다른 호수’는 어떤 방식으로 누군가의 집이 됐을까. 배달은 늘 포장만큼 안전할 거라고 믿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인쇄된 글씨 하나가 사람들 사이의 경계를 더 잘 보여주더라.
그 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니면 아무 일도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내 이름 옆에 있던 그 호수는, 지금도 지워지지 않은 것처럼 머릿속에 남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