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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에서 기사님이 내 목적지를 말하자마자 속도가 더 느려졌어

2026-09-09 00:29:15 조회 7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택시를 잡고 타자마자, 뭔가 기분이 이상하게 가라앉았어. 창밖은 평일 퇴근 시간처럼 정신없는데, 기사님 손은 너무 조용하게 핸들을 잡고 있더라. 그런데 내가 목적지를 말하는 순간, 차량이 “부드럽게” 느려진 게 아니라, 속도가 확실히 더 낮아진 느낌이 들었어. 마치 누가 뒤에서 브레이크를 살짝 걸어버린 것처럼.

처음엔 신호 걸려서 그런가 싶었는데, 내 목적지는 동네에서도 꽤 한적한 쪽이었거든. 주소를 말하자마자 기사님이 잠깐 숨을 멈추는 것 같았고, 그 다음부터는 룸미러를 자주 보면서 차선을 천천히 바꿨어. 솔직히 택시 타면 목적지 말하면 끝까지 가는 게 보통인데, 기사님은 갑자기 길을 확인하듯 속도를 낮추고 주위를 살폈어.

“여기서 조금만 더 가실 수 있나요?”라고 기사님이 묻더라. 나는 그냥 “네, 저기까지요” 했지. 근데 말투가 딱딱했어. 평소 같았으면 네비 찍으면서 “아 여기로 가면…” 이러는 게 정상인데, 그분은 목적지 말하는 순간부터 이미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어. 그 표정도 웃지 않고, 입술만 아주 얇게 움직였는데, 그때 손등에 핏줄이 도드라지는 게 보일 정도로 긴장해 보였어.

거리가 꽤 남았는데도 속도가 자꾸 내려가더라. 계기판은 계속 30, 20… 이렇게 내려갔고, 신호도 아닌데도 1차로에서 거의 제자리처럼 달리다시피 하다가 다시 한 칸씩 빠져나갔어. 그 와중에 기사님은 라디오를 꺼놓은 상태였는데, 가끔씩 블랙박스 쪽을 힐끗 보더라. 나는 그냥 “피곤하신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이상하게 등골이 서늘했어.

그때 내 휴대폰 화면이 꺼져서 다시 켜려고 했거든. 근데 기사님이 “잠깐만요”라고 말했어. 왜 그러냐고 묻기도 전에, 그는 창문을 살짝만 내리더니 공기를 한 번 들이마시듯 멈칫했어. 그리고는 핸들을 아주 미세하게 틀면서, 차가 잠깐 옆 도로로 붙었다가 다시 돌아오더라. 정차는 아니었는데, 그 짧은 움직임이 너무 “계획된” 느낌이어서 더 소름이 돋았어.

내가 목적지 주소를 정확히 말했는데, 문제는 그 목적지가 지명은 있어도 사람들 잘 안 찾는 골목이었거든. 예전에 이야기가 좀 돌던 곳이랄까. 그래서 혹시 기사님도 알고 있는 구역이라서 피하려나 싶었어. 그런데 기사님은 길을 피하는 게 목적처럼 보이진 않았어. 오히려 그곳 근처로 “가까워지는데도” 불안해하면서 멈추는 느낌이었달까. 그게 더 이상했어.

차가 목적지에서 한 1km쯤 남았을 때, 갑자기 계기판 불빛이 한 번 깜빡이더니 라이트가 약해진 느낌이 들었어. 그 순간 기사님이 내 쪽을 보면서 아주 낮게 말했어. “저기요. 그 집은… 지금은 가지 마세요.” 근데 이미 주소를 말한 건 나였고, 기사님이 어떻게 그걸 ‘집’이라고 특정했는지 이해가 안 됐어. 나는 “왜요? 원래 거기까지 가면 되는데…”라고 하려는 찰나, 기사님이 더 빨리 말았어.

“아니, 지금은 말이야. 방금 전에도 누가… 똑같이 말했어요.” 그 말이 너무 뜬금없어서 웃음이 나올 뻔했어. 택시 기사님이 손님 상대하면서 이런 말 할 리가 없잖아. 게다가 내가 말한 목적지는 특정 건물 이름도 아닌 그냥 도로명 주소였는데, 기사님은 마치 이미 그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말했어. 나는 “무슨 소리세요?”라고 했고, 기사님은 대답 대신 속도를 더 낮췄지.

그때 도로 옆 가로수 그림자가 흔들리는데, 차 안 공기가 갑자기 답답해지는 느낌이 들었어. 창문은 살짝 열려 있었는데도, 마치 차 전체가 밀폐된 것처럼 숨이 목에 걸리는 기분이었어. 기사님은 내비 화면을 켜지 않은 상태였는데도 방향 감각이 이상할 정도로 정확했어. 목적지로 가는 길이 아니라, 목적지와 엇갈리는 길로 유도하면서도 결국은 그 근처를 계속 “스치듯” 돌고 있었거든.

나는 결국 내 목적지를 다시 확인하려고 하다가, 휴대폰에 잠깐 뜬 알림 하나를 봤어. “위치정보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 알림은 처음 보는 종류였고, 지금이야 그냥 신호 문제겠지 싶었는데, 기사님은 그걸 보는 나의 표정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듯 했어. 그리고 아주 조용히 “여기서 내리세요. 걸어서 가는 게 나아요.”라고 말했어. 기사님 말대로 내렸는데, 이상하게 기사님 차는 바로 출발하지 않고 한참 동안 계기판만 바라보더라.

내가 길을 건너고 뒤를 돌아봤을 때, 택시는 어느 순간부터 차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도 않고, 그렇다고 정차도 아닌 애매한 자세로 멈춘 것처럼 보였어. 그리고 이상하게도 내 귀에선 “목적지” 같은 단어가 계속 반복해서 맴도는 것 같았어. 물론 실제로 소리가 들린 건 아닌데, 말이 머릿속에 남아 있는 느낌. 지금도 가끔 그 주소를 떠올리면, 그날 택시가 느려졌던 순간이 먼저 생각나. 내가 말한 한마디가, 누군가의 속도를 바꿔놓은 건지… 아니면 그 장소가 사람을 붙잡는 방식이 그런 건지, 아직도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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