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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접수 대기표가 내 손으로 넘어와 있었어

2026-09-09 16:29:16 조회 4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병원에서 접수 대기표가 내 손으로 넘어와 있었어. 처음엔 내가 착각한 줄 알았는데, 그날 이후로는 “아,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구나” 싶을 정도로 찜찜함이 오래 남더라. 지금도 그날 접수실 바닥 냄새랑, 종이 넘기는 소리가 같이 떠올라.

사건은 외래 접수하러 간 평범한 오후에 시작됐어. 접수창구 앞에 사람들이 길게 서 있었고, 번호표를 뽑는 기계는 한참 전부터 종이가 걸려 있던 것처럼 느리게 넘어갔어. 나는 차례를 기다리면서 휴대폰만 보고 있는데, 옆에 있던 사람이 “어? 이거 떨어졌네” 하면서 내 쪽으로 손을 뻗었지. 순간 내 발밑에 떨어졌던 줄 알았어. 근데 이상하게도 그 종이는 바닥에 떨어진 흔적이 아니라, 딱 접어서 내 손바닥 위에 앉혀진 느낌이었어.

대기표에는 내가 이름을 적지 않은 상태였는데도 내 자리 정보가 들어가 있었고, 접수 시간도 이미 지났어. 무엇보다 번호가 내가 방금 뽑으려던 차례와 맞물리듯 딱 그 다음 순서였어. 나는 “혹시 제 거 아니에요?”라고 말했는데, 그 사람이 멈칫하더니 웃고는 그냥 다른 쪽으로 걸어가 버렸어. 그 웃음이 웃는 표정인데 눈이 안 웃는 느낌이랄까. 그때부터 목 뒤가 서늘해졌지.

나는 일단 접수창구로 가서 표를 내밀었어. 직원은 별말 없이 “이 표로 접수하면 됩니다”라고만 하고, 컴퓨터 화면을 보지도 않은 채 내 서류를 받아 처리하더라. 보통은 본인 확인이나 서류 체크를 하잖아. 근데 그날은 너무 빠르게, 너무 습관적으로 지나가서 오히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싶었어. 안내문도 분명 “대기표는 본인 손으로 기계에서 뽑아야 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는데.

진료실 앞에서 다시 확인했을 때 진짜로 기분이 이상해졌어. 대기표 하단에 메모란처럼 작은 글씨가 있었는데, 거기에 내가 평소에 쓰는 필체랑 비슷한 획이 남아 있었거든. 물론 그건 내가 실제로 적은 적이 없는데도 말이야. 나는 그 글씨를 보고 손끝이 저릿해져서, 혹시 다른 사람이 적어놓고 잘못 준 건가 싶었어. 그런데 진료실 앞 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 계속 내 표만 내 손에서 도는 것처럼 느껴졌어.

그때 옆자리에 있던 노인이 슬쩍 내 표를 보더니, 아주 낮게 “이건 원래 돌아와야 하는 거야”라고 했어. 나는 설마 착각이겠지 하고 넘기려 했는데, 그 노인이 내 표에 적힌 날짜를 손톱으로 톡톡 두드리며 “오늘 말고, 어제에 가까운 날이지”라고 덧붙였어. 말이 너무 구체적이라 웃어넘길 수가 없었어. 나는 그분에게 무슨 뜻인지 물었고, 그분은 “아는 사람 있으면 가끔 그래”라는 식으로만 말했어. 그리고 바로 앞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지.

진료가 끝나고 나서도 찜찜함이 남아서 접수실 쪽으로 다시 갔어. 혹시 내 표를 누가 바꿔치기했나, 혹은 시스템 오류인가 확인하려고. 그런데 접수 창구에는 내가 갔던 시간대에 “번호표 회수 및 정정 처리” 같은 메모가 붙어 있었어. 그 메모는 분명 방금 전까지 누군가 붙여놨던 것 같은 새 종이였고, 모서리가 아직 덜 눌린 상태였어. 직원은 내가 묻는 말에 한 박자 늦게 반응하면서, “그건 접수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실수예요”라고만 했어. 실수 치고는 너무 정교했어.

집에 와서야 본격적으로 소름이 돋기 시작했어. 대기표를 책상 위에 펼쳐놓고 사진을 찍었는데, 화면 속 글자가 실제로 보던 것과 다르게 보였거든. 분명 오전에는 내 정보가 인쇄돼 있었는데, 사진에서는 잉크가 번진 것처럼 뭉개져 있고 특정 줄이 지워진 듯한 느낌이었어. 나는 다시 사진을 열어보고, 표를 눈앞에 다시 가져다댔는데도 똑같이 느껴져. 마치 보는 방식에 따라 표가 달라지는 것처럼. 그때부터 나는 “내 손으로 넘어온 게 우연이 아니었나” 생각을 했어.

며칠 뒤에 같은 병원에 다시 갔는데, 접수대에 붙어 있던 안내 문구가 또 바뀌어 있었어. 이전엔 “본인 손으로 뽑아야 합니다”였던 문장이 “접수는 순서대로 처리됩니다”로 간단히 줄어들어 있었지. 그리고 접수기 옆에 작은 안내 종이가 새로 붙어 있었어. 거기에는 ‘대기표를 받은 후에는 본인이 맞는지 확인해 주세요’라고만 적혀 있었는데, 웃긴 건 ‘확인 방법’이 없다는 거야. 그냥 “확인해 주세요”만 던져놓고 아무 설명도 없었거든.

그날 이후로 나는 병원에서 번호표를 받을 때마다 괜히 손을 더 꽉 쥐고, 누가 건드리기 전에 먼저 확인하게 됐어. 접수실에는 항상 사람이 많고, 사소한 실수도 있을 수 있지. 근데 내 대기표가 바닥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누가 준 것도 아닌데 내 손으로 딱 넘어왔다는 느낌은 쉽게 지워지지 않아. 그리고 가끔, 꿈에서까지도 접수 대기표가 종이처럼 가볍게 내 손바닥을 스치고 지나가더라—그 순간이 오면 늘 같은 생각이 들어. 다음엔 내가 아니라, 누군가의 차례가 내 손으로 넘어오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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