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상품을 집으려는데 손이 먼저 닿아버렸어
편의점에서 상품을 집으려는데 손이 먼저 닿아버렸어. 생각보다 흔한 실수라고 넘기려 했는데, 그날 이후로 같은 매장만 지나가도 손끝이 먼저 차가워지는 기분이 들더라.
그날은 비가 부슬부슬 오고 있었고, 나는 급하게 야식이랑 물 같은 거 사려고 동네 편의점으로 들어갔어. 들어가자마자 계산대 쪽 형광등이 너무 밝게 느껴질 정도였고, 매대 사이가 좀 좁게 느껴졌어. 사람은 나 말고 한 명도 없었는데, 이상하게 발소리만 또렷하게 들렸어.
나는 물이랑 컵라면을 집으려고 냉장고 앞 매대에서 손을 뻗었어. 음료는 보통 손이 먼저 닿는 자리들이 있잖아. 근데 그 순간, 내가 집으려던 병 옆에 있던 것에 내 손이 아닌 손이 먼저 닿은 것처럼 느껴지는 거야. ‘내가 닿았나?’ 하는 순간, 손등부터 찌릿하고 감각이 늦게 따라왔어.
분명히 내 손은 병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는데, 어떤 느낌은 “이미 잡고 있었다”는 쪽이 더 정확했어. 손가락이 닿기 전에 유리 표면이 먼저 차갑게 느껴지더라. 그래서 나는 얼떨결에 멈칫했지. 그때 유리병은 그대로 있었고, 내 손도 그대로였는데, 이상하게 손끝만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먼저 닿아버린 느낌이 남아 있었어.
잠깐 멍하니 있다가 내가 뭘 집으려 했는지 확인하려고 고개를 숙였는데, 매대 아래쪽이 잘 보이진 않았거든. 그런데 그때, 냉장고 선반 옆에 세워둔 작은 진열대 뒤로 아주 얇은 그림자 같은 게 스치듯 움직였어. 사람이 지나간 것 같지 않았고, 공기 흐름도 아닌데 뭔가 ‘손’처럼 움직이는 느낌이랄까.
나는 괜히 상상으로 연결하지 않으려고 컵라면 쪽으로 시선을 옮겼어. 그 사이 계산대는 조용했고, 점원은 있는지 없는지 잘 안 보였어. 종종 편의점이 워낙 바쁘니까 뒤에 계신가 싶었는데, 그날은 시끄러운 소리도 없고, 냉장고 모터 소리만 규칙적으로 들렸어. 근데 그 규칙이 이상하게 끊겼다가 다시 붙는 것처럼 느껴져서 더 신경이 쓰였어.
라면을 집으려는데 이번엔 또 ‘먼저’라는 감각이 올라왔어. 이번엔 손이 먼저 닿는 게 아니라, 손이 닿기 직전의 감각이 먼저 스쳤다고 해야 하나. 내가 라면 포장을 잡기 전에 손바닥에 아주 짧게 압박이 느껴졌어. 살짝 누르는 정도로. 그런데 그 다음 순간 내 손은 그냥 허공에서 멈춘 상태였거든. 내가 잡은 게 아닌데, 내가 잡히는 느낌이 들어서 등줄기가 식었어.
결국 나는 아무거나 집어서 계산대로 가기로 했어. “혹시 내가 손이 떨려서 착각하나?” 싶어서 물병을 바로 집었는데, 유리 표면에서 내 체온이 닿는 게 아니라, 반대로 내 손에서 체온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영수증을 뽑는 기계 소리만 들리고, 점원은 여전히 안 보였어. 카드 결제 버튼을 누르는데 손가락이 한 번 더 ‘먼저’ 눌린 느낌이 들었고, 버튼은 분명히 내가 누른 후에야 반응했어.
집에 와서도 계속 그 장면이 떠올라. 특히 손끝이 먼저 닿아버린 감각이 사라지지 않아. 유리나 포장지는 손대기만 해도 남는 흔적이 있잖아. 근데 이상하게 그날 내가 만진 것들에서는 아무 냄새도 안 나고, 아무 감촉도 잘 기억이 안 남는데, 딱 ‘먼저 닿았다’는 느낌만 선명했어. 그게 제일 이상했지.
며칠 뒤에 같은 매장을 다시 지나쳤어.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유리 진열대 앞에서 손을 뻗는 사람이 보이더라고. 그 사람은 평범하게 물건을 집으려는 자세였는데, 그 순간 내 손등이 저절로 움찔했어. 마치 내 몸이 먼저 반응한 것처럼. 나는 그 사람한테 시선을 줬다가 바로 고개를 돌렸어. 이상하게, 다시는 그 진열대 앞에선 손을 뻗으면 안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거든.
그 이후로도 가끔 편의점에서 무언가를 집으려는 순간, 아주 짧게 ‘내가 먼저인가, 누가 먼저인가’가 겹쳐서 느껴져. 손이 먼저 닿아버렸던 그날처럼 말이야. 지금도 생각해보면, 내가 뭔가를 잡으려고 했던 게 아니라, 반대로 누군가가 이미 내 손을 예비로 맞춰둔 것 같아. 그래서일까, 아직도 나는 매대 앞에서 손을 올리기 전에 잠깐 숨을 고르게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