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서 내리기 전 기사님이 내게 거울을 보여줬어
택시에서 내리기 전, 기사님이 갑자기 거울을 들고 내 쪽으로 고개를 끄덕였어. “한 번만 보시죠.” 딱 그 말 한마디가 끝이었는데, 나는 도착해서 내릴 준비를 하다가 손이 멈췄거든. 기사님 손에는 작은 손거울이 있었고, 차 내부 조명 때문에 유난히 반짝였어. 근데 이상하게도, 거울 안에 비치는 내 얼굴이 아니라 마치 그 앞에 더 가까이 누군가가 서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어. 비오는 날이라 김 서린 유리창 닦아준다면서 보여주는 거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기사님 표정이 너무 진지했어. 나는 “네? 거울요?” 하고 물었고, 기사님은 룸미러 쪽을 잠깐 보더니 다시 나한테 거울을 내밀었어. “내리기 전에 확인해야 돼요. 그쪽으로 돌아보지 마시고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도, 묘하게 목소리가 차갑게 박히는 느낌이었어.
택시는 신호대기 중이었고, 바깥은 가로등이 끊어질 듯 이어졌어. 나는 거울을 받았는데, 손거울이 생각보다 차갑더라. 그런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자꾸 늦게 따라오는 것 같았어. 고개를 살짝 돌리려 하면, 거울 속 나는 한 박자 뒤에 움직였고, 눈동자도 같은 방향을 보지 않는 느낌이 들었어. 그 순간 등줄기가 쭉 서늘해지면서, 입술이 말라붙었어.
기사님이 덧붙였어. “혹시 오늘 타기 전에… 누가 뒤에서 불렀죠?” 나는 그 질문을 이해하려고 했는데, 내 귀가 먼저 알아차린 것 같아. 오늘 택시를 탔을 때 분명히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거든. 지나가는 사람 소리겠지 싶어서 넘겼는데, 기사님은 마치 내가 듣고도 못 본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어.
나는 반사적으로 창밖을 확인했어. 하지만 기사님이 “창문 쪽 보지 마세요”라고 더 빨리 말하는 바람에 멈칫했지. 거울을 들고 있던 손이 떨렸고, 눈앞에서 내 얼굴이 점점 또렷해지는데도 분위기가 이상했어. 표정이 내가 짓지 않은 표정으로 굳어가는 것 같았거든. 웃는 것도 아닌데, 슬쩍 비웃는 것처럼 입꼬리가 당겨진 채로 그대로였어. 그러다 갑자기 거울 속 시선이 내 뒤를 향하더니, 내 어깨 뒤쪽 어딘가를 똑바로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었어.
그때 거울 뒷면에서 아주 얇은 금속 긁는 소리가 들렸어. “찍…” 하고 짧게. 나는 고개를 돌리려 했는데, 돌리기 전에 기사님이 내 손을 잡듯이 짧게 손짓을 했어. “안 돌아보면 괜찮아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택시 계기판의 불빛이 한 번 깜빡였고, 대기 중이던 차가 멈춘 채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어. 거울 속 내 눈동자에는 분명히 ‘나’가 있는데, 그 뒤에 또 하나의 그림자가 얹혀 있었어.
기사님은 거울을 보라고만 했지, 설명을 해주진 않았어. 대신 문을 열기 직전처럼 차를 살짝 앞으로 당기는 동작을 하더라. 그리고 아주 조용히, 아주 천천히 말했어. “내리기 전에 한 번만 닫으세요. 거울은 보여주고, 닫아야 끝나요.”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손거울의 뒷면에 작은 고리 같은 게 있다는 걸 봤어. 마치 접었다가 닫는 물건처럼. 근데 손거울은 원래 그렇게 생긴 게 아니었어. 내가 택시를 타기 전엔 분명 없었던 거야.
나는 결국 문을 열었고, 순간 바깥 공기가 확 들어오는데도 기사님이 계속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어. 택시는 도착지 근처였고, 길가엔 평범한 가게 간판과 사람들 그림자가 있었거든. 그런데 뒤통수가 간질간질했어. 돌아보면 안 된다고 했는데, 발끝이 자꾸 뒤로 감기는 느낌이 드는 거야. 그래서 최대한 빨리 내렸어. 내린 직후에야 뒤를 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도 그 타이밍이 오지 않았어.
집에 와서 생각해보면, 거울을 닫는 동작을 내가 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아. 손거울은 분명히 내 손에 있었는데, 현관문 앞까지 가져온 기억이 없거든.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손이 비어 있었고, 그 순간엔 어리둥절했을 뿐이었어. 그리고 그 밤, 샤워할 때 세면대 거울을 봤는데, 내 얼굴이 거기에 있었는데도 이상하게 표정이 똑같이 굳어 있었어. 마치 누군가가 내 얼굴을 잠깐 빌려서 그대로 눌러둔 것처럼.
며칠 뒤에 택시 회사에 전화해서 “기사님이 거울을 보여주셨다” 같은 말을 해보려고 했는데, 상담원이 내 말 중 일부를 되묻더니 결국 이렇게 말했어. “고객님, 그 시간대엔 그런 호출이 없습니다. 기사님도 기록이 없어요.” 웃기지? 기록이 없는데도, 손바닥엔 아직도 그 거울의 차가움이 남아있는 느낌이야. 택시에서 내리기 전 기사님이 보여준 건 내 얼굴이 아니라, ‘내가 돌아보지 않으면 끝나는 것’의 방식이었을지도 몰라. 그 뒤로 나는 거울을 볼 때마다, 유난히 문득문득 숨을 삼키게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