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주차장 방범등 아래에서만 발자국이 또렷해
지하주차장 방범등 아래에서만 발자국이 또렷해… 그날부터 우리 아파트 지하 1층은 이상하게 소리가 줄어들었어. 엘리베이터 내리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방범등이었는데, 그 빛 아래 바닥만 유독 선명했거든. 바람 소리도, 배수구에서 흘러나오는 잡음도 다 끊긴 것처럼 느껴졌고, 그 상태에서 발자국이 시작됐어.
처음엔 그냥 누가 지나가는 줄 알았어. 밤 열한 시쯤이었는데, 지하주차장 통로 바닥에 흰 먼지가 얇게 쌓여 있잖아. 그런데 그날은 먼지가 그대로인데도, 방범등 아래에서만 발자국 자국이 딱딱 또렷하게 남더라. 걸음이 느린 것도 아니고 빨라서 더 이상했어. 마치 카메라가 초점을 맞추는 것처럼, 조명이 비치는 구간에서는 확실히 보이고 반대로 끊기면 흔적도 같이 사라졌어.
나는 그때부터 이상함을 ‘사람이 있어도 조명 때문에 그렇게 보이나’로만 정리하려고 했어. 지하주차장은 전등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켜지니까, 발자국이 어딘가에서 튀어나와도 눈으로는 그렇게 보일 수 있지 않나 싶었거든. 근데 문제는 그 발자국이 같은 자리에서 반복되는 거였어. 매일 밤 11시에서 11시 10분 사이, 거의 오차 없이. 그리고 꼭 방범등 아래에서만 또렷해지는 패턴이 매번 똑같았어.
관리실에 물어볼까 하다가도, 괜히 민원만 크게 만들까 걱정됐어.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건 확인뿐이었지. 다음 날엔 휴대폰을 들고 지하로 내려가서, 방범등 켜지는 구간을 따라 바닥을 유심히 봤어. 그런데 진짜 신기하게도, 불빛이 닿는 바닥만 먼지가 눌린 것처럼 반질반질해. 반대로 불빛 바깥쪽은 평소처럼 먼지가 그대로고. 누가 걸어 다닌 흔적이 있는 건 맞는데, 마치 ‘불빛 경계’에서만 무언가가 닿는 느낌이었어.
그때부터는 내가 걸을 때도 미묘하게 달라졌어. 통로 중간에 서서 한 발 내딛으면, 발 아래에서 “찍” 하는 감각은 없는데 바닥이 살짝 눌린 것 같았거든. 그리고 다시 한 발 옮기면 조명이 닿는 구간에서만 소리가 작게 들려. 발자국 소리가 커지는 게 아니라, 소리가 존재하는 것처럼 또렷해지는 느낌. 마치 내 발이 거기서만 ‘기록’되는 것 같았어. 그래서인지 그날 이후로는 그 통로를 혼자 걷기 싫어졌고, 주차장 문 열고 들어올 때도 속도를 줄이게 됐어.
그래도 확인은 해야 했어. 그래서 아침에 출근 준비 다 하고 관리소 번호로 전화해서, “밤에 누가 다니는지 CCTV 확인 가능하냐”는 식으로 물었지. 직원은 처음엔 웃으면서 “지하주차장에 사람이 그렇게 뛰어다닐 일이 있겠어요”라고 했는데, 내가 말한 시간대가 너무 정확해서인지 잠깐 뜸을 들이더라. 그 다음엔 “방범등 점등 시간이 일정해서 그때 그림자가 겹치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어요”라고 대충 넘기려 했어. 근데 거짓말처럼, 그날 밤에도 똑같이 시작됐어.
밤 열한 시가 되자마자, 방범등 아래에서만 발자국이 나타났어. 내가 서 있던 자리에서 바라보면, 조명 줄기 사이로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불빛이 닿는 바닥만 ‘걸어간 흔적’이 남더라. 문제는 그 발자국이 사람이 걸어가는 모양이랑 조금 달랐다는 거야. 보통은 한 걸음 내딛고 다음 걸음이 따라오잖아. 근데 그건 한 발이 닿을 때마다 간격이 미세하게 틀어졌어. 마치 누군가가 발을 놓는 위치를 일부러 조절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 흔적이 아주 천천히, 출입문 쪽이 아니라 엘리베이터 옆 계단 쪽으로 향했어.
그때부터 나도 모르게 숨을 죽였어. 계단 쪽에는 평소엔 잘 안 쓰는 통로가 있거든. 외부로 나가는 비상구가 있지만, 잠겨 있어서 주민들이 잘 안 열어보는 곳. 발자국은 그쪽으로만 갔다가, 계단 시작 직전에 멈췄어. 그리고 멈춘 뒤에, 조명 아래 바닥만 아주 잠깐 더 선명해졌어. 누군가 서 있는 게 보이냐고? 아니. 형체는 없고, 다만 발자국 주변 먼지가 얌전히 모여든 것처럼 보였어. 그 순간 ‘이게 누가 걸어간 흔적이 아니라, 불빛 아래에서만 나타나는 무언가의 경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어.
며칠 뒤엔 나 혼자만 겪은 게 아니었어. 엘리베이터에서 이웃 아주머니가 나를 보자마자 먼저 말을 꺼내더라. “어제요, 지하에서 내려오는데 등 켜진 데만 발자국처럼 반짝이더라고. 저는 그냥 제 눈이 피곤한 줄 알았는데…” 그렇게 말하고는 더는 말을 못 하셨어. 우리 둘 다 그 말을 하면서도, 서로의 얼굴을 보진 못했어. 각자 마음속에 같은 장면이 떠올라서, 더 확인하면 실제가 될까 봐 겁난 거지.
그 뒤로는 방범등 아래를 일부러 피해서 걸었어. 비상구 쪽도 밤에는 아예 가지 않았고, 지하로 내려가는 일이 생기면 누가 동행하길 기다리거나 주차장을 빨리 빠져나갔어. 그래도 이상은 끝나지 않았지. 시간이 지나도 방범등 아래 바닥이 더 먼저 ‘기억’하는 것 같았거든. 지금도 가끔 지하로 내려가면, 불빛이 켜지는 순간 바닥이 한 번 반짝하고, 그 빛 아래에는 아주 잠깐만 발자국이 또렷하게 남았다가 사라져. 그래서 나는 매번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기 전에, 조명 밖으로 한 박자 더 멈추게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