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에서 문이 열리기 전부터 ‘나 지금 나왔어’가 들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문이 열리기 전부터 ‘나 지금 나왔어’가 들렸다. 분명 내 귀에는 누가 급하게 숨을 고르듯 말하는 목소리가 꽂혔는데, 그 순간 엘리베이터는 아직 바닥에 닿지도 않았고, 문은 커튼처럼 닫힌 채로 1초도 안 남은 느낌이었다.
나는 그날 밤 11시쯤 편의점에서 물건을 들고 4층으로 올라가고 있었고, 옆에 있던 자동문형 엘리베이터 버튼은 이미 사람들이 눌러 둔 상태였다. ‘띵’ 소리와 함께 내 층이 찍히고, 나는 그냥 “방금 뭐지?” 싶은 표정으로 버튼 옆 거울 같은 반사면을 봤다. 그런데 목소리는 거기서 나온 게 아니라, 문이 열리기 전인데도 안쪽에서 들리는 것처럼 또렷했다.
‘나 지금 나왔어.’ 같은 문장이 반복해서, 마치 누군가 문 틈으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문이 열리기도 전에 손을 뻗어 문을 살짝 막아 세우려다가 말았다. 설령 누가 장난을 치는 거라 해도, 엘리베이터 내부 스피커는 그런 방식으로 재생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어서 더 이상했다. 그 말이 들린 방향이 너무 가까워서, 사람이 정말 문 바로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문이 열리는 건 원래보다 한 박자 늦게 느껴졌다. ‘슥’ 하고 열리자마자 가장 먼저 보인 건 아무도 없는 카운터 바닥이었다. 조명은 정상이고, 안내판도 그대로였는데, 이상하게 공기가 한 번 훅 꺼진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바닥에서 아주 가볍게 ‘탁’ 하는 소리가 났다. 누가 신발로 디딘 소리라고 하기엔 너무 미세했는데, 귀는 그걸 분명히 들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사람 대신 안내방송 스피커와 반사되는 벽면만 있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이번엔 더 낮고 급해진 톤으로, ‘나 지금… 나왔어’가 아니라, 마치 누군가 문 너머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듯한 기색으로 들렸다. 내가 혹시 혼자 떠들고 있나 싶어서, 내가 입을 열었던 건 아닌지 확인하려고 입 안을 한번 더 쓸어봤다. 침이 마른 채로 굳어버린 것처럼, 목소리가 내 쪽으로 정확히 걸려온 느낌이었다.
나는 용기 내서 버튼 패널을 눌렀다. 문이 열려 있는 상태에서 닫힘 버튼을 누르면, 카메라처럼 모든 게 기록될 수 있으니까. 그래도 내가 그 버튼을 누르는 순간, 엘리베이터 안의 조명이 잠깐 깜빡였다. 그리고 ‘나 지금 나왔어’라는 말이 멈춘 게 아니라, 그 말이 ‘바깥’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엘리베이터 안쪽에서 들렸는데, 갑자기 복도 쪽 스피커에서 울리는 것처럼 가까워졌다.
복도는 조용했다. 우리 동네는 늦은 시간이라도 가끔 누가 우편함을 열고 지나가곤 하는데, 그날은 정말 숨소리만 남아 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다 멈췄다. 문이 닫히지 않은 상태였고, 누군가 엘리베이터 칸과 복도 사이에 서 있는 상황이라면 나는 먼저 움직이면 안 되는 게 맞잖아. 그런데 이상한 건, 복도 반대편 벽에 붙은 거울 같은 마감재가 아주 희미하게 떨리며 내 그림자 옆으로 또 다른 그림자가 생겼다는 거였다.
그 그림자는 사람이 서 있는 형태인데, 얼굴이 보일 정도로 선명하진 않았다. 대신 옷자락이 바람에 스치는 것처럼 살짝 움직였다. 그리고 그때, 내 뒤에서 딱 한 번 문손잡이를 잡는 소리처럼 ‘끼익’ 하는 소리가 났다. 나는 돌아볼 틈도 없이, 귀 안에서 다시 그 말이 들렸다. 이번엔 문장 끝을 흐리지 않고 또렷하게, “나 지금 나왔어. 너도 나와.” 그렇게 들렸다.
사람이 장난을 친다면 이런 식으로 직접적인 주문처럼 말하진 않을 텐데, 그 문장이 왜인지 너무 평범해서 더 소름이 돋았다. 나는 급하게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연타했고, 문은 정상적으로 닫혔다. 닫히는 순간, 복도에서 들리던 소리는 완전히 끊겼다. 대신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고 내려가는 기계음 사이로 아주 작은 숨소리 같은 게 끼어들었는데, 그 숨소리는 내 쪽에서 들리는 게 아니라, 내 뒤의 공기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가 결국 4층에 도착했을 때, 문은 열리기 전에 이미 다시 한 번 들려왔다. ‘나 지금 나왔어’가 이번엔 더 가까운 거리감으로, 내가 탄 엘리베이터 문 바로 앞에서 말하는 것처럼. 문이 열리자 복도는 비어 있었고, 거울에도 내 모습만 있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내 손바닥엔 버튼을 누른 적 없는 뜨거운 감각이 남아 있었고, 엘리베이터 내부 바닥에는 누군가가 아주 급히 딛고 지나간 것 같은 희미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 전에는 절대 먼저 숨을 들이쉬지 않게 됐다. 문이 열리기 전, 이미 누군가는 나왔다는 말이… 다음엔 내 차례라는 뜻처럼 들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