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접수 후 진료실로 가는데 내 보호자가 이미 앉아 있었어
병원에서 접수 후 진료실로 가는데 내 보호자가 이미 앉아 있었어. 처음엔 그냥 안내가 빨랐나 보다 생각했는데, 문제는 그 사람이 내가 접수 창구에서 적어낸 보호자 이름이랑… 너무 비슷한 얼굴로, 너무 익숙한 자세로, 기다리고 있었다는 거야.
그날은 감기 증상이 심해져서 오후에 바로 병원을 갔어. 접수하는 사람은 친절했는데, 나보고 “보호자 동반이 필요합니다. 진료실로 들어가실 때 같이 들어오셔야 해요”라고 하더라. 사실 그때 내 보호자는 엄마였는데, 엄마는 회사라서 “가능하면 혼자 가라”는 말만 하고 바로 못 와준다고 했거든. 나는 접수할 때 보호자 연락 가능한 사람으로 엄마를 적었고, 대신 내가 혼자 들어갈 수 있는지 묻는 쪽이었지.
그런데 접수처에서 서류를 받아 들고 나가는 순간, 직원이 갑자기 말 끝을 바꾸는 느낌이었어. “아, 그럼 보호자분이 이미 도착하셨어요. 진료실로 가시면 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내 뒤로 시선을 한 번 휙 돌렸는데, 나는 그냥 “아 엄마가 먼저 왔나 보다” 싶어서 고개만 끄덕였어.
복도는 생각보다 조용했고, 유리창 너머로 사람들 그림자만 천천히 움직이는 것 같았어. 나는 안내문대로 해당 진료실 앞에 섰고, 문 손잡이 옆에 보호자 대기 공간처럼 의자가 몇 개 놓여 있더라. 그런데 거기엔 내가 아는 엄마가 앉아 있었어. 정확히는, 엄마랑 같은 얼굴인데 표정이 묘하게 굳어 있었고, 눈빛이 어딘가를 계속 응시하는 사람처럼 보였지.
나는 순간 심장이 확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어. “엄마?” 하고 부르려는 순간, 그 사람이 고개를 들었는데 말이 먼저 나왔어. “여기까지 오느라고 고생했지?” 하고. 목소리가 엄마 목소리랑 똑같진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비슷해서 내가 말문이 막혔어. 이상하게도 그 사람은 내 얼굴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가만히 바라봤어.
진료실 문이 열리면서 간호사인지 직원인지 누군가가 우리 쪽을 보고 “보호자분도 같이 들어오세요”라고 했고, 나는 거의 자동으로 그 사람의 옆자리에 앉았어. 그때야 정신이 좀 돌아왔는데, 나는 분명 엄마가 회사라고 했고, 접수할 때도 엄마가 늦을 수 있다고 연락했거든. 그런데 이 사람은 안내받기 전에 이미, 마치 시간을 딱 맞춰 와 앉아 있던 사람처럼 보였어.
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에도 이상한 점이 계속 붙었어. 가방 끈을 잡고 있던 손이 너무 단단했고, 휴대폰 화면을 켜지도 않았어.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람은 내 보호자 이름을 확인할 때 필요한 서류나 신분 확인을 한 적이 없었는데도 간호사들이 자연스럽게 “보호자분”이라고 부르더라. 나는 그때부터 속으로 계속 생각했어. ‘설마 엄마랑 닮은 다른 사람인가?’ 하고 넘기려 했는데, 내 머릿속에서 자꾸만 엄마가 “오늘은 못 와”라고 했던 말이 재생됐거든.
진료실로 들어가기 직전,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의 손등 쪽을 봤어. 엄마는 피부가 좀 예민해서 평소에도 작은 흉터가 늘 있었는데, 그 흉터 위치가… 내 기억 속 엄마랑 완전히 똑같았어.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피부색이 미세하게 다르고, 흉터 주변이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납작하게 남아 있는 것 같았어. ‘이게 뭔가’ 하고 입술을 깨물었고, 그 순간 간호사가 종이를 건네며 “여기에 보호자 성함 확인해 주세요”라고 말했지.
나는 종이를 받아 읽었어. 거기 적힌 성함은 엄마 이름이 맞았는데, 문제는 서명이었어. 엄마는 늘 글씨를 급하게 쓰는 편인데, 그 서명은 너무 정갈하고 너무 느린 필체였어. 게다가 종이를 내미는 손이 떨리지 않았고, 그 사람은 종이를 받아들지도 않았거든. 그냥 옆에서 조용히, 마치 내가 확인하는 걸 기다린다는 듯이 나를 봤어. 그 시선이 불편해서 나는 “엄마 맞아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는데, 그 사람은 아주 낮게 웃으면서 “맞아. 네가 잊어버린 사람일 뿐이야”라고 했어.
진료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고, 의사는 내 상태를 말하면서 “다음에 약 조절할 때 보호자 동의가 필요합니다” 같은 말을 했어. 나는 밖으로 나오면서도 그 사람을 봤는데, 어느새 의자에선 사라져 있었어. 병원 복도는 그대로였고, 출입문 쪽 안내도 변함이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내 손에는 접수할 때 받았던 접수증이 그대로 들려 있었거든. 분명 내가 접수처에서 서류 정리하고 나오면서 주머니에 넣었는데, 그때 내 손끝에 남아 있던 온기가… 방금 전까지 옆에 앉아 있던 그 사람 온기랑 똑같았어.
집에 가서 엄마한테 전화를 했어. 통화 연결음이 몇 번 울리고 나서 엄마가 받더라. “엄마, 방금 병원 갔는데… 접수하고 나니까 엄마가 먼저 진료실 앞에 앉아 있더라”라고 말했더니, 엄마는 잠깐 말을 잃었어. 그리고 “그게 무슨 소리야? 나 그 시간에 회사였는데, 병원 간 적 없어”라고 했지.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내 머릿속에서 복도 의자에 앉아 있던 표정이 다시 떠올랐어. 기다리던 사람 같았는지, 아니면 누군가를 ‘대신’ 기다리게 만든 건지… 지금도 그 차이를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