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서 기사님이 지도앱을 끄고 조용히 운전했어
택시에서 기사님이 지도앱을 끄고 조용히 운전했어. 처음엔 그냥 “길이 막히니까 우회하나?” 싶었거든.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릴 때까지, 기사님은 한 번도 화면을 켜지 않았고 목소리도 계속 낮게만 유지했어. 그 날 타고 집에 도착했는데, 손에 쥔 영수증 한 장이 자꾸만 이상하게 느껴지더라.
그날 비가 조금 섞인 날이었어. 늦은 시간이라 콜은 빨리 잡혔고, 택시에 타자마자 기사님이 습관처럼 “어디까지 갈까요?” 하고 말할 줄 알았는데, 그냥 목적지 확인만 하고 말없이 출발했어. 대화가 이어지지 않아서 나도 괜히 어색해서 창밖만 보게 됐고, 기사님은 운전대 옆에 폰을 거치해 둔 상태였는데 그 화면이 꺼져 있었어.
출발하고 5분쯤 지났을까. 택시 안에서 딱 한 번, 지도앱 켜지는 소리 같은 게 아주 작게 났거든. 근데 소리 나자마자 기사님이 폰 화면을 터치해서 바로 껐어. 그리고 그 이후로는 “우회로로 갈게요” 같은 멘트도 없이, 그냥 차선이랑 속도를 아주 일정하게 유지했어. 나는 불편하지는 않았는데, ‘혹시 길을 이미 외우셨나?’ 하고 생각하려고 해도, 도로가 중간중간 계속 바뀌는 구간이었어.
내가 살짝 기사님 쪽을 봤을 때도, 폰 거치대는 그대로 있었고 손도 폰 쪽으로 가지 않았어. 대신 기사님 시선이 계기판이랑 전면 유리 사이를 왔다 갔다 했는데, 전형적인 내비 보는 사람처럼 방향 확인을 하지 않는 느낌이었어. 그러다 교차로에서 한 번 지나치게 천천히 멈추더니, 내비가 아니라 “뭔가 다른 기준”을 보는 사람처럼 좌우를 훑었어. 그때 차 안에 라디오도 없었고, 기사님 숨소리만 조용히 들렸어.
그런데 진짜 이상했던 건, 목적지에서 한 블록 더 가야 하는 지점이었는데 갑자기 도착 예정 시간이 계속 늘었다가 줄었다가 반복했어. 나는 기사님이 지도 앱을 켰을 때는 운행 경로가 잡혔을 거라고 생각해서, 혹시 켜져 있나 싶어 뒤늦게 내 폰을 확인했거든. 내 폰 내비는 계속 가는 길을 표시하고 있었는데, 기사님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틀었어. 그리고 그 방향이… 내가 앱으로도 찾을 수 없는 동네길 같은 느낌이었어.
나는 원래 택시 탈 때 기사님이 알아서 가는 걸 믿는 편이야.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기사님이 갑자기 사이드미러를 너무 오래 보더라. 보통은 한 번 보고 끝내는데, 그날은 몇 초씩 고정된 상태로 계속 확인했어. 그게 ‘손님이 타고 있나 보나’라는 느낌이 아니라, 내가 타고 있는 자리 쪽만 유난히 살피는 것 같아서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어.
내가 “혹시 길 괜찮으세요?”라고 물어볼까 하다가 말았어. 질문하면 기사님이 놀랄 수도 있고, 그냥 내가 예민한 걸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기사님이 갑자기 말했어. 한 마디뿐이었는데, “여기선 앱 키지 마세요.”라고.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바로 못 알아들었어. 기사님은 내 쪽을 보지 않았고, 운전하면서도 눈동자는 앞을 향한 채였어. 그리고 그 뒤로는 완전히 침묵이었어.
택시가 내릴 곳 근처에 도착했을 때, 기사님은 폰을 다시 만지지 않았어. 대신 결제 단말기 근처에 있던 작은 영수증 출력기가 “찍” 하고 짧게 돌아가더라. 나는 현금도 카드도 이미 정해진 대로 처리됐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사님이 뭔가를 추가로 출력하는 것 같았어. 내 이름이 아니라, 날짜와 시간만 덩그러니 찍힌 종이가 한 장 더 나왔고 기사님은 그 종이를 접지도 않은 채로 내 손에 툭 올려줬어.
집에 와서 그 영수증을 봤는데, 이상하게도 택시 번호랑 결제 내용은 정상인데 출발지랑 경로가 내가 타고 간 길이랑 일부가 달랐어. 더 소름은 그 영수증의 “요금 산정 기준” 부분에 아주 짧게 메모처럼 적힌 글씨가 있었는데, 글씨가 깔끔하진 않지만 분명히 ‘앱 끔’이라고 보였어. 물론 내가 직접 본 건 사진으로 확대해서 확인한 거라 확실하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그 단어가 너무 선명했어. 그 뒤로 택시 타면 기사님 휴대폰 화면이 꺼져 있는지 은근히 보게 되더라.
지금도 가끔 생각나. 기사님이 지도앱을 끈 게 단순히 배터리 아끼려는 거였을 수도 있고, 길이 익숙해서 그랬을 수도 있어. 근데 “여기선 앱 키지 마세요”라는 말과, 내가 받았던 영수증의 메모가 합쳐지면서 마음이 자꾸만 뒤틀려. 택시는 그냥 이동수단이라고 믿었는데, 어떤 밤에는 운전대보다 더 앞에 무언가를 보고 달리는 사람도 있나 봐. 그래서 그날 이후로, 나는 택시에서 소리 한 번 없는 정적이 시작되면 문득… 내가 지금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부터 다시 생각하게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