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서 기사님이 내 목적지를 말하지 않았는데도 도착했어
택시에서 기사님이 내 목적지를 말하지 않았는데도 도착했어. 솔직히 처음엔 “설정이 잘 맞았나보다” 하고 넘겼는데, 집에 도착해서 생각해보니까 이상한 부분이 너무 많아서 지금도 가끔 등골이 서늘해.
그날도 퇴근하고 늦게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이었어. 나는 회사 근처에서 택시를 탔고, 목적지는 말 안 했어. 그냥 앱으로 호출한 거라서 기사님이 내 목적지를 자동으로 봤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타자마자 나는 “네” 하고만 앉아 있었지, 대놓고 목적지를 말하진 않았어.
근데 출발하고 몇 분쯤 됐을 때, 기사님이 갑자기 내 쪽을 슬쩍 보더니 조용히 웃으면서 “아, 여기로 가면 되죠.”라고 하시는 거야. 나는 그 말을 듣고 “예? 저는…” 하려다가 말이 막혔어. 분명히 내가 어디로 가는지 말한 적이 없었거든. 앱에 뜨는 걸 보고 말하는 건가 싶어서 그냥 고개만 끄덕였지.
문제는 그 다음이야. 우리 동네는 길이 좀 복잡해서, 택시가 보통 한 번은 돌아가거나 내비게이션이 꼬이면 지그재그로 움직이잖아. 그런데 그날 택시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빠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골목 입구부터 들어갔어. 나는 차 창밖을 보다가 “이거 설마… 내가 사는 쪽이잖아?” 하고 속으로 확인했는데, 기사님은 내 얼굴을 다시 보지도 않고 계속 같은 속도로 운전했어.
그때부터 신경이 곤두서더라. 기사님은 내 목적지가 화면에 뜨니까 말한 거라고 하기엔, 너무 구체적으로 타이밍을 맞췄어. 신호에서 막 지나가려는 찰나에 “지금, 딱 지금이에요.”라고 말하셨거든. 그 말투가 “내비대로 가겠습니다” 같은 느낌이 아니라, 누군가가 이미 다음 장면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들렸어.
나는 순간 핸드폰을 확인했어. 호출 화면이 이미 끝나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경로가 더는 안 보였거든. 처음엔 분명히 목적지가 떠 있었던 것 같은데, “도착까지 남은 시간”만 표시되고 목적지 주소는 가려진 것처럼 보였어. 비가 와서 화면이 조금 번졌던 탓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하려 했지만, 마음이 계속 찝찝했어.
택시가 어느 정도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자 기사님이 갑자기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려서, 마치 확인하듯 “여기서 내리시면 됩니다.”라고 말했어. 그 순간 나는 집 앞 도로 표식을 봤고, 진짜로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입구였어. 내가 말 안 했는데도, 내릴 곳을 정확히 집어준 거지. 나는 “기사님, 혹시… 제가 말씀드린 거 있었어요?” 하고 조심스럽게 물었어.
그러자 기사님이 아무렇지 않게 “아뇨. 그냥… 잘 보이더라고요.”라고 했어. “잘 보인”다는 게 뭘 뜻하는지, 내가 더 묻기 전에 미터기가 딱 멈추는 소리가 났다. 차가 완전히 정지하기도 전에 문이 열릴 듯 말 듯 미세하게 반응했는데, 그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어. 그리고 그때 나는 기사님 뒷좌석 쪽 거울을 본 게 문제였던 것 같아.
거울엔 보통 택시 내부가 비치잖아. 근데 거울 속에는 내 휴대폰 화면이 살짝 비친 상태로 보였어. 나는 그 화면이 무엇인지 계속 신경 쓰였거든. 그런데 그 화면에는 주소가 아니라, 이미 도착 처리된 기록 같은 게 떠 있었어. 분명히 택시에 탄 시간은 그보다 앞인데 말이야. 그걸 보는 순간 머리가 띵해지면서 손끝이 차가워졌어.
나는 돈을 내고 얼른 내렸고, 기사님은 “조심히 들어가세요.” 한마디만 던진 뒤 바로 출발했어. 뒤돌아보면 보통 차가 조금 더 천천히 가거나 깜빡이를 켜고 나가는데, 그날은 그냥 매끈하게 사라졌어. 집에 들어와서 영수증 내역을 확인했더니, 호출 시간과 이동 시간이 이상하게 짧게 기록돼 있었고, 경로도 중간에 끊긴 듯 보였어. 지금도 가끔 그날 택시에 탔던 내가, 내가 말하지 않았던 “목적지”를 어쩐지 이미 누군가가 알고 있었던 것 같아. 택시에서 도착한 건 내 발이 아니라, 누군가의 타이밍이었나 싶어서… 잠깐만 문 열리는 소리에도 귀가 먼저 반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