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내 총기 점검표가 비어 있었는데 사용 기록이 남아
휴가 복귀하고 다음 날 아침, 난 그냥 평소처럼 내 구역 총기 점검표를 펼쳤어. 근데 표 상단에 적혀 있어야 할 칸들이 이상했지. ‘일자/상태/이상 유무/확인 서명’ 줄이 쭉 있는데, 펜으로 그어둔 흔적도 없이 전부 깔끔하게 비어 있는 거야. 난 그 순간 “내가 누락했나?” 싶었는데, 내 메모장에는 어젯밤 점검했다고 적혀 있었거든. 이상하다 싶어서 확인하려고 옆에 있는 장비 담당 병사한테 물어봤더니, 그는 “그건 네가 했지 않냐”는 식으로 웃기만 하고 넘어갔어.
점검표가 비어 있는데도 사용 기록이 남아 있다는 걸 그날 오후에 알게 됐어. 전산에 뜨는 장비 사용 내역은 따로 보고받는 시스템이라, 나는 그냥 행정 담당이 프린트해서 돌리던 종이를 봤거든. 거기엔 내 번호로 등록된 총이 ‘특정 시간’에 발사로 처리돼 있었어. 그 시간, 난 이미 막사에서 교육 자료 정리하고 있었고, 탄약 인수 같은 건 우리 분대원이 같이 움직였어. 누가 대신 쏜 것도 아니고, 누가 내 총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 자체가 제한적이었는데 기록은 딱 내 걸로 찍혀 있더라.
처음엔 내가 기억을 잘못한 줄 알았어. 그래서 탄약 보급 기록이랑 출입 시간까지 다시 확인했는데, 탄약을 인수한 사람은 내 이름이 아니었고, 보급소 쪽 대기 명단에도 내가 없었어. 근데 왜 발사 기록은 내 장비 번호로 연결돼 있지? 그렇게 따지면 보통은 “서류 실수”로 끝나는데, 그날은 서류 실수치고 너무 디테일했어. 전산에 찍힌 발사 수량도 그렇고, 조작자가 ‘정비/점검’ 계정으로 표시돼 있었거든.
나는 마음이 좀 급해졌어. 점검표가 비어 있다는 건 누군가가 ‘내가 안 했다고’ 보이게 만들었다는 뜻일 수도 있고, 반대로 ‘내가 했다고’ 보이게 하려다 실패한 걸 수도 있어. 아무튼 내가 할 수 있는 건 대놓고 따지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흐름을 보는 거였지. 그래서 훈련 일정표랑 당직표를 훑어보며 그 시간대에 누가 통제실 근처를 드나들었는지 기억을 끄집어냈어.
그 시간대엔 정비조랑 교대 인원이 섞여 있었고, 탄약고는 철저히 관리하니까 직접 손대기는 어려워. 대신 통제실에서 점검표를 출력하거나, 점검표 자체를 작성해주는 루트가 있었어. 문제는 그 루트가 딱 하나였다는 거야. 통제실 키는 소수만 갖고 있었고, 그 키를 가진 사람은 내가 아는 한두 명. 근데 그 사람들이 내 총기 점검표를 굳이 비워둘 이유가 뭐가 있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
결국 나는 당일 저녁 근무 교대 전에, 그냥 조심스럽게 “내 점검표가 비어 있어서요. 혹시 분실되거나 출력이 잘못된 건 아닐까요?”라고 말했어. 이때 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이냐가 중요하잖아. 그런데 돌아온 답이 좀 애매했어. “점검표는 원래 빈 칸도 있어. 전산으로 확인하면 되지.” 그렇게 말하면서, 마치 내가 원래 그런 걸 알고 있어야 한다는 투로 넘기더라고.
그 말이 더 찝찝했어. 점검표가 ‘원래 빈 칸도 있다’면, 왜 하필 내 건만 깔끔하게 비어 있었을까. 게다가 전산 기록은 내 장비 번호로 정확히 남아 있었고. 나는 그날 밤 잠이 안 왔어. 문득 떠오른 건, 아침에 내가 점검표를 펼쳤을 때 종이 가장자리에서 미세하게 종이가 들뜬 느낌이 있었던 거야. 마치 누군가가 잠깐 꺼냈다가 다시 끼워둔 것처럼. 그리고 잉크가 번지지 않은 걸로 봐서는 누군가가 일부러 손글씨를 남기지 않으려 했던 것 같았고.
다음 날 아침, 나는 장비 점검을 하면서 일부러 ‘점검표에 없는 걸 확인’하는 식으로 체크했어. 보통은 현장에서 즉시 이상이 있으면 말이 나와야 하는데, 내 총은 정상 상태였어. 탄 걸림도 없고, 격발 감각도 평소랑 비슷했고, 육안으로 봐도 특별한 흔적은 없었지. 그러니까 더 이상했어. 사용 기록은 남아 있는데 총은 멀쩡하고, 점검표는 비어 있고. 누군가가 실제로 발사했는지, 아니면 전산에만 그렇게 적힌 건지, 그 경계가 흐려져 버린 거야.
결국 그 ‘특정 시간’에 대해선 직접적인 해명이 나오지 않았어. 대신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렀지. 나는 사소한 질문을 했다는 이유로 “너무 앞서서 생각하지 마” 같은 말을 들었고, 장비 관리 교육 때는 “기록은 전산이 우선”이라는 말만 반복됐어. 그 뒤로 며칠 동안 내 점검표 칸은 자동으로 채워지듯 채워졌는데, 내가 본 그 빈 상태랑 똑같이 보이던 종이가 갑자기 다른 서식으로 바뀌어 있었어. 누군가가 뒤늦게 정리한 건 확실한데, 왜 그걸 그렇게 서두르게 했는지 이해가 안 됐어.
지금 생각하면, 그날 내가 제일 먼저 놀란 건 ‘사용 기록’이 아니라 ‘점검표의 빈칸’이었어. 빈칸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잖아. 근데 그 빈칸 위로, 전산은 이미 무언가를 지나가 버렸더라. 그때 느꼈던 건 단순히 억울함이 아니었어. 기록은 남는데, 책임은 비어 있는 곳으로 흘러간다는 감각. 군대라는 곳에서 제일 무서운 건 누가 무슨 짓을 했냐가 아니라, 그게 나중에 ‘정상 처리’처럼 포장될 수 있다는 거였어. 지금도 가끔 점검표를 볼 때마다, 종이 위의 빈 칸이 괜히 눈에 먼저 들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