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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서 버튼을 누르자마자 방금 탔던 사람이 웃었다

2026-09-17 04:29:11 조회 11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엘리베이터에서 버튼을 누르자마자 방금 탔던 사람이 웃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아파트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는데, 이상하게도 “딸깍” 소리가 나자마자 바로 앞에서 내렸던 사람이 다시 옆문 쪽을 쓱 보고 웃더라. 나는 이미 문이 닫히고 있었고, 다시 타려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어. 그런데 웃음이… 딱히 기분 좋아서 웃는 게 아니라, 누가 장난을 친 것처럼 짧고 확실했어.

엘리베이터 안에는 나 하나만 타 있었고, 천장에 달린 거울 같은 안내창은 깜빡이지도 않았어. 다만 그 웃던 사람이 눈을 마주친 건 분명했는데, 창 너머로 보이는 얼굴이 너무 또렷해서 오히려 소름이 올라왔지. “뭐지?” 하고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버튼이 다시 한번 눌린 듯 작은 진동이 손바닥 아래에서 느껴졌어.

나는 아랫층으로 내려가려던 거였는데, 전에는 분명 7층을 눌렀거든. 그런데 화면엔 숫자가 바뀌면서 6층으로 점멸을 했어. 순간적으로 손이 잘못 갔나 싶어서 다시 7층을 누르려 했는데, 내 손가락이 버튼 위에 닿기 전에 이미 버튼 불빛이 꺼졌다 켜졌어. 마치 누가 내 손을 대신 누른 것처럼.

엘리베이터는 6층에서 멈추지 않고 그대로 속도를 올리는 느낌이 들었어. “고장인가?” 싶어서 안내 방송을 기대했는데, 안내음도 없고 그냥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기계음만 규칙적으로 들렸지. 이상하게도 카메라 렌즈가 있는 위치를 볼 때마다, 거울 속 내 그림자만 조금씩 늦게 움직이는 것 같더라. 현실이 살짝 끊기는 느낌.

그때야 문 틈 사이로 로비 바닥이 아니라 복도 쪽 어둠이 보이기 시작했어. 분명 우리 동은 내부 구조상 중간 복도가 짧아서 엘리베이터가 지나갈 때는 바깥이 아니라 벽이 보여야 하거든. 근데 창문처럼 비친 건 복도였고, 복도 끝에는 사람이 하나 서 있었어. 방금 웃던 사람과 같은 옷차림이었고, 손을 들고 있었어. 손을 들었다기보다, 버튼을 누를 때의 자세처럼 팔꿈치를 구부리고 손끝을 어딘가에 맞춘 채로.

나는 본능적으로 1층을 눌렀어. 그런데 화면은 1층으로 가지 않았고, 대신 숫자가 “0” 비슷한 모양으로 한 번 흔들리더니 정지했어. 그러고는 문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엘리베이터 내부 공기가 묘하게 차가워지면서 등줄기가 서늘해졌지. 이때부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 “딸깍” 하는 버튼 소리가 엘리베이터 버튼에서 나는 게 아니라, 엘리베이터 안 벽 어딘가에서 반복됐어.

나는 절대 혼자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 순간 거울 같은 안내창에 내 뒤가 비치더라고. 그런데 내 뒤에는 사람이 없었어. 대신, 내 어깨 높이에서 손바닥만큼 어두운 그림자가 흔들렸고, 그 그림자가 천천히 웃는 듯한 형태로 굽어지는 것처럼 보였어. 정말로 얼굴을 봤다기보단, 웃는 모양이 “느껴지는” 쪽에 가까웠어. 뭔가가 내 시선을 똑바로 맞추고 있었다는 느낌.

마지막으로 문이 드디어 열렸는데, 도착층은 표시되지 않았어. 10층인지 6층인지도 모르겠고, 문이 열린 곳은 복도였는데 우리 아파트 복도랑 결이 달랐어. 천장 조명도 누렇게 번져 있었고, 바닥은 약간 젖은 듯 반짝였어. 그 복도 끝에서 아까 그 사람이 다시 웃으며 걸어오고 있었고, 이번엔 입 모양이 선명하게 보였어. 말소리는 안 들렸는데, “눌렀지?”라고 읽히는 것 같았어.

나는 뒤로 물러서서 문을 닫으려 했지만 손잡이는 차갑게 굳어 있었고, 버튼 패널은 갑자기 내 손이 아니라 타인의 손가락 크기로 눌린 흔적이 남아 있었어. 그 순간 깨달았지. 엘리베이터가 사람을 태우는 게 아니라, 버튼을 누른 사람의 선택을 “기억”하는 거라면… 누가 내 자리에 대신 눌렀을 때는, 내가 아니라 그 누군가가 먼저 도착해버리는 거 아닐까.

문이 닫히고 나서 다시 원래 동의 층수로 돌아왔을 때, 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혼자였고, 아랫배가 쥐어짜듯 아픈 상태로 한참을 숨만 쉬었어. 그날 이후로도 엘리베이터 타기 전에는 손을 잠깐 멈추고 있어. 버튼을 누르는 순간, 혹시 누군가가 이미 내 결정을 웃음으로 받아버리고 있지 않을까—그 생각이 아직도 가끔씩 문이 닫히는 소리랑 같이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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