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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기사님이 문앞에서 갑자기 멈추더니 ‘아닌데요’라고 했어

2026-09-17 16:29:12 조회 19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배달기사님이 문앞에서 갑자기 멈추더니 ‘아닌데요’라고 했어. 그 말 한마디가 이상하게 귀에 남아서, 그날 이후로 현관문 쪽만 지나가도 등골이 서늘해져.

사건은 평범한 저녁이었어. 비가 조금씩 오고, 나는 집에서 배달앱으로 국밥을 시켰지. 주소도 그냥 원룸 건물 2층, 현관 비밀번호는 현관 옆에 적어둔 그대로였고, 기사님 연락도 “금방 도착하겠습니다” 한 통이 전부였어. 그런데 막상 문 앞에 사람이 섰을 때 분위기가 달랐어.

문 열기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현관 바깥에서 휴대폰 알림 소리 비슷한 게 들렸거든. 그리고 아주 잠깐 정적이 생겼어. 원래는 초인종 누르거나 비밀번호 입력하는 소리가 나는데, 그날은 그런 게 없었어. 대신 문 앞에서 숨 한 번 크게 들이쉬는 소리 같은 게 났고, 바로 이어서 기사님 목소리가 아주 낮게 들렸어.

“아닌데요.”

그 말이 너무 또렷해서, 나는 얼른 문 쪽으로 다가갔어. 혹시 주소를 잘못 적었나 싶어서 “네?” 하고 말하려는 찰나에, 현관문 밖에서 또 다른 소리가 섞였어. 마치 누가 따라 읽는 것처럼, 같은 문장을 한 번 더 되뇌는 느낌이랄까. 기사님이 아니라,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것 같은데 정확히는 구분이 안 됐어. 다만 그 흐름이 “아닌데요”에서 끝났다는 건 확실해.

문을 열었을 때는 기사님이 그대로 서 있었어. 우산을 들고, 배달 가방을 한쪽으로 기울인 자세로 굳어 있었지. 표정은 화난 것처럼 보이기보다는, 당황했다기엔 너무 굳어 있었어. 나는 “여기 맞아요”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기사님이 고개를 들지 않은 채로 손만 천천히 흔들더라. 마치 “지금은 말하지 마”라는 식으로.

순간 내가 주소를 다시 생각했어. 혹시 단지 내 출입구가 많아서 헷갈릴 수 있나, 아니면 내가 적은 비밀번호가 틀렸나. 그런데 기사님 시선이 문고리 바로 옆을 지나서, 현관문 바깥 바닥을 한참 내려다보고 있는 게 보였어. 빗물이 떨어지면서 바닥이 반짝였는데, 그 위에 무언가가 있었거든. 내 눈에는 그냥 물기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동그랗게 눌린 자국 같은 게 있었어. 마치 누가 발을 잠깐 디딘 뒤 바로 물러난 흔적. 그런데 그건 너무 “방금” 같았어.

나는 “뭐가 문제세요? 주문 확인할게요”라고 말했는데, 기사님이 그제야 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들었어. 화면을 보지도 않고 버튼을 누르는 느낌이었고, 화면 너머의 뭔가가 확실히 ‘다른 집’으로 표시되고 있는 듯했어. 그런데 이상한 건, 기사님이 “아닌데요”라고 한 직후엔 앱에서 취소 사유 같은 게 바로 바뀌었거든. 마치 누군가가 동시에 정보를 바꾸고 있는 것처럼. 나는 웃어넘기려 했는데, 기사님은 웃지 않았어. 오히려 “저기요, 여기 맞는지 확인해 주세요”라고 했지. 이상하게도 ‘배달받는 분이 확인’하는 형태로 부탁을 하더라.

그때 문틈에서 바깥 복도가 잠깐 어두워졌어. 비가 오는데도 복도등은 켜져 있어야 하는데, 마치 누가 그림자를 손으로 덮은 것처럼 1초 정도만 깜깜해졌거든. 나는 반사적으로 문을 더 열어보려 했고, 기사님은 그 순간 재빨리 한 발 뒤로 물러났어. 그리고 아주 짧게, 거의 속삭이듯 “아니야. 여기로는… 안 와요”라고 말했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묻기 전에, 기사님이 배달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현관 앞으로 한 걸음 다가왔어. 그러더니 문 쪽을 보지 않고, 현관문 손잡이 옆 벽에 붙어 있는 작은 안내문, 내 이름이 적힌 메모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어. 그걸 보고 나는 소름이 돋았어. 메모의 글씨가, 내가 밤에 적어둔 글씨랑 달랐거든. 내가 적어둔 건 손글씨가 살짝 삐뚤었는데, 그 순간 기사님이 가리키던 글씨는 깔끔하고 반듯했어. 마치 다른 사람이 이미 갖고 있었던 것처럼.

나는 그제야 내 주문 내역을 다시 봤어. 주소는 정확했는데, 특이하게도 ‘요청 사항’에 내가 쓰지 않은 문장이 하나 더 붙어 있었어. 내용은 길지 않았고, 단 한 줄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내가 그 문장을 본 기억이 없는데도 눈이 먼저 알아보더라. ‘문앞에서 멈춰주세요.’ 같은 식의 말. 그걸 보는 순간, 기사님이 다시 “아닌데요”라고 말했어. 이번엔 앱 때문이 아니었어.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어.

결국 기사님은 국밥을 들고 돌아가지 않았어. 잠깐만 확인하고 다시 올게요, 이런 식으로 말하곤 계단 쪽으로 사라졌지. 그리고 한참 뒤에 도착 알림이 뜨면서, 내 주문이 ‘배달 완료’로 처리됐어. 그런데 배달 가방은 어디에도 없었고, 현관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내가 문을 열어둔 시간은 길지 않았거든. 누가 가져간 것도 아니고, 누가 남기고 간 흔적도 없었어.

그날 밤, 나는 혹시 내가 깜빡했나 싶어서 현관 옆 안내문을 다시 확인했어. 비가 그친 뒤라 글씨가 더 또렷했는데, 메모 아래쪽에 아주 작은 글씨가 하나 더 생겨 있었어. ‘여기로는 안 와요’라고. 누가 장난처럼 적어놓은 것치고는 너무 내 눈에 익은 방식의 글씨였고, 무엇보다도 그 문장이 방금 기사님이 했던 말이랑 똑같았어. 그 이후로 나는 배달기사님이 문 앞에서 멈추는 소리만 들리면, 문 열기 버튼을 손가락으로 잠깐 눌러놓은 채로 숨을 죽여. 그러면 이상하게도, 현관 바깥에서 어떤 말이 ‘다시’ 들려오려다 만 것처럼 멈칫하는 느낌이 있어. 아직도 나는 그게 내 착각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문밖에서 내 반응만 기다리는 중인지 잘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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