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서 기사님이 라디오를 껐는데도 사람 목소리가 남아있었어
택시에서 기사님이 라디오를 껐는데도 사람 목소리가 남아있었어. 그날 내가 탄 택시는 그냥 평범한 시내 택시였고, 목적지도 동네라서 별생각 없이 탔다. 그런데 출발하고 몇 분 지나자 기사님이 갑자기 “아, 소리 너무 시끄럽네” 하면서 라디오 버튼을 껐거든. 그 순간부터는 상식적으로 음악도, 진행자 목소리도 다 꺼져야 맞잖아. 근데 이상하게도… 라디오가 꺼진 뒤에도 목소리가 계속 들렸어. 아주 또렷하게.
처음엔 내가 잘 못 들은 줄 알았어. 기사님이 버튼을 확실히 눌렀는데도 목소리가 남아있으니까. 라디오에서 나오던 것 같은 남자 목소리였는데, 말끝이 웅얼거리는 것도 없이 또렷하게 이어졌어. “여러분, 지금 이 시간…” 같은 진행 멘트가 그대로 들려. 나는 고개를 돌려 기사님을 봤는데, 기사님은 앞만 보고 운전하고 있었고 표정도 평소 같았어. 마치 라디오가 꺼진 걸 아는 사람처럼.
그래서 내가 “기사님, 라디오 안 껐는데요?”라고 농담 섞어서 말하려는 찰나에, 목소리가 한 박자 늦게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어. 끊긴다고 해도 완전히 멈춘 게 아니라, 마치 누가 방송을 손으로 톡 끊었다가 다시 틀어주는 느낌. 그때 오히려 더 소름이 돋았어. 내가 방금 들은 게 착각이 아니란 확신이 들었거든.
나는 조심스럽게 “지금… 어디서 소리가 나는 거죠?”라고 물었어. 그러자 기사님이 짧게 “라디오 껐습니다”라고만 답하더라. 말투는 무심했는데, 이상하게도 대답이 너무 빠르게 나왔어. 준비해둔 것처럼. 그 순간 창밖으로 가로등이 지나가면서 기사님 얼굴이 잠깐씩 어두워졌다 밝아졌는데, 그 짧은 순간에 기사님 눈이 라디오 쪽을 딱 한 번 쳐다보는 게 보였어.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고 내용도 점점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었어. 원래 라디오는 스피커에서 일정한 거리감으로 들리잖아. 근데 그 목소리는 운전석 바로 옆, 내 옆좌석 어깨 높이에서 들리는 것처럼 붙어 있었어. 나는 손으로 무릎을 꽉 쥐고 숨을 고르면서도 계속 듣게 됐어. “지금부터는…” 이 다음 문장이 자꾸 걸렸는데, 걸리는 방식이 마치 통신 상태가 나쁜 줄 알았던 것과 달랐어. 일부러 누군가가 지우고, 다시 덮어 씌우는 것 같았거든.
그때 기사님이 내비게이션을 보던 시선을 잠깐 내려서 내 휴대폰 쪽을 봤어. 나는 그게 그냥 확인 동작일 거라 생각했는데, 목소리가 그 타이밍에 맞춰서 낮아졌다가 다시 또렷해졌어. 그리고 남자 목소리가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듯이 들렸어. 물론 내가 사는 지역 흔한 이름이라 착각일 수도 있는데, 문제는 목소리가 “손님” 같은 일반적인 호칭이 아니라 특정한 한 사람을 부르는 말투였다는 거야. 그때부터는 진짜로 방송이 ‘들리는’ 게 아니라 ‘남아 있는’ 것 같았어.
나는 참다가 결국 기사님에게 “혹시… 기사님이 라디오 말고 다른 데 소리가 나오는 거예요?”라고 다시 물었어. 그러자 기사님이 한숨을 내쉬면서 “밤엔 가끔 그래요”라고 했거든. 가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됐어. “어떤 때요?”라고 묻자, 기사님은 운전하면서도 대답을 피했어. 대신 계기판 쪽을 툭 건드리더니 라디오 전원을 다시 만졌어. 그런데 그 다음 순간, 목소리는 더 이상 ‘라디오’처럼 나오지 않고, 차 안 공기 전체에 퍼진 느낌으로 들렸어.
라디오를 껐는데도 목소리가 남아있었다가, 이제는 아예 스피커와 무관하게 공간에 깔리는 소리. 그 목소리가 말하던 문장들은 끝까지 들리지 않았고, 대신 문장 중간중간에 희미한 잡음이 끼어들면서도 중요한 단어만 또렷하게 남아. “내리지 마세요” 같은 말이 반복됐는데, 그 말만은 분명히 들렸어. 나는 차를 세우려는 생각도 못 했고, 목적지가 가까워진 걸 알면서도 괜히 문을 열었다가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서 몸이 굳어버렸어.
내가 내리기 직전, 기사님이 미터기 옆에 있는 작은 스위치를 한번 더 눌렀어. 그러자 목소리가 잠깐 멈췄다가, 바로 다음에 더 작은 소리로 다시 시작됐어. 마치 누가 내 뒤에서 속삭이듯이. 나는 내린 뒤 뒤돌아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순간적으로 바깥 공기가 너무 조용해서 더 이상했어. 차가 출발하고 불빛이 멀어져도, 그 남자 목소리는 내 귀 안에 남아있는 것처럼 또렸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딱 한 문장만 완전히 들렸어.
“기사님은 껐는데, 목소리는 안 꺼져요.” 그 말이 끝났을 때, 나는 휴대폰 화면을 봤는데 시간은 그대로였고 통화 기록 같은 것도 없었어. 그런데도 귓가에는 방금 전처럼 생생하게 울리고 있었지. 지금 생각해도 그날 택시 안에서 라디오를 껐다는 사실보다, 목소리가 차 밖으로 따라 나왔다는 느낌이 더 오래 남아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