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점원이 바코드를 찍는 순간 화면이 하얗게 됐어
편의점에서 점원이 바코드를 찍는 순간 화면이 하얗게 됐어. 정확히는 내가 계산대 앞에 물건을 두고 카드 내밀었는데, 점원이 스캔기 버튼을 누르자마자 모니터가 새하얀 화면으로 확 꺼진 것처럼 변했거든. 아무 경고창도 없고, “통신 오류” 같은 문구도 없이 그냥 하얗게—그 짧은 찰나가 더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어.
처음엔 매장 전광판이나 CCTV 모니터가 순간 먹통 난 줄 알았지. 점원도 별일 아니라는 듯이 “잠깐만요” 하고 다시 한 번 바코드를 찍었어. 근데 이번엔 하얀 화면이 조금 더 오래 갔고, 화면이 하얘지는 과정이 딱 스르륵이 아니라, 뭔가가 화면을 덮는 느낌으로 바뀌더라. 조명이 반사돼서 하얘진 게 아니라, 그냥 ‘색’이 사라진 것 같았어.
나는 편의점에서 자주 겪는 사소한 오류들, 예를 들면 바코드가 흐리거나 결제가 지연되는 그런 걸 떠올렸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결제 단말기 소리도 같이 멎었고, 계산대 위에서 돌아가던 작은 팬 소리까지 같이 죽었어. 옆에 있던 손님은 그대로 담배를 고르던 손을 멈추지 않았는데, 그 사람이 “어? 왜 이렇게 늦어져요” 같은 말도 안 했어. 마치 다들 그 순간을 못 본 것처럼 자연스러웠거든.
점원이 모니터를 보더니 손으로 화면을 한 번 툭 치듯이 눌렀어. 그 동작이 좀 어설펐는데, 화면이 다시 돌아오진 않았어. 대신 점원의 표정이 급격히 굳더라. 웃고 있던 입꼬리가 멈추고, 눈이 잠깐 흔들리면서 계산대 아래를 슬쩍 봤는데 그때 내가 뭘 봤는지 아직도 헷갈려. 점원이 잠깐 숨을 들이쉬고, 다른 손으로 바코드 스캐너를 들어서 내 물건이 아니라 영수증 쪽을 비추는 것처럼 움직였어.
그 순간, 내 손끝이 이상하게 차가워졌어. 카드 단말기 위에 올려둔 내 손이 갑자기 얼어붙은 것처럼 감각이 둔해졌거든. 나는 “이거 환불해야 하나요?”라고 물어보려다가 입이 안 떨어졌어. 말이 머리에서 멈추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점원이 갑자기 낮게 “아, 이거… 이미 찍힌 거예요”라고 말했어. 이미 찍혔다니, 방금 내가 들고 온 걸 처음 스캔하는 상황이었잖아.
점원 말투가 평소처럼 친절하지 않았어. 딱딱하고, 마치 누가 시킨 대사를 그대로 읽는 것 같았어. 그는 내 물건을 다시 바코드 쪽으로 돌려서, 이번엔 내가 들지 않은 다른 면을 스캔했어. 그런데 그 바코드를 찍는 순간엔 화면이 하얘지지 않고, 모니터가 다시 정상처럼 돌아왔어. 대신 화면에 뜬 글자가 이상하게 보였어. 주문 완료 같은 문구가 아니라, 숫자가 줄줄이 올라가는데 한 글자씩이 아니라, 한 줄씩 “지나간 것 같은” 느낌으로 깜빡였거든.
나는 그걸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는데 카메라 앱이 안 켜졌어. 손이 스마트폰 화면을 눌러도 아무 반응이 없고, 화면만 하얗게 뜨다가 다시 꺼졌어. ‘나도 화면이 하얘지는 쪽에 묶이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생각이 들자마자 점원이 계산을 “결제되었습니다”라고 말하며 영수증을 딱 끊어줬어. 근데 영수증이 내 손에 닿자마자 바삭하게 접히는 느낌이 들었고, 글자가 미세하게 번져 있었어. 마치 젖었다가 마른 것처럼.
밖으로 나와서 영수증을 들여다봤는데, 이상한 게 한두 개가 아니더라. 물건 가격이 이상하게 맞지 않았고, 내가 안 산 항목이 하나 끼어 있었어. “아이스커피(대)” 같은 게 있었는데 나는 분명 작은 것만 집었거든. 더 웃긴 건, 영수증 끝부분에 날짜가 오늘이 아니라 어제 날짜로 찍혀 있었어. 분명 편의점에 들어온 건 오늘이었는데, 계산 기록은 어제였다는 거지.
집에 와서 카드 사용 내역을 확인했을 때도 똑같이 어긋났어. 결제 금액이 실제 산 것과 달랐고, 승인 시간은 내가 편의점에 있었던 시간보다 더 늦게 찍혀 있었어. 그리고 승인 내역 상세가 이상하게도 ‘정상’ 처리로만 남아 있더라. 오류가 난 적이 없다, 그런 식으로. 그럼 아까 모니터가 하얘진 그 순간은 뭘까, 내가 착각한 걸까—그 생각을 하면서도 자꾸만 편의점 안의 공기가 떠올랐어. 소리도 멎고, 손끝도 얼고, 점원 표정도 굳고, 무엇보다 그 “이미 찍힌 거예요”라는 말이.
지금도 가끔 그 편의점 근처만 지나가면, 계산대 쪽이 눈에 먼저 들어와. 바코드 스캔기 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모니터가 하얘지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한 프레임씩 뒤집혀. 그날 이후로 나는 편의점에서 바코드 찍는 순간만큼은 절대 뒤돌아가지 못하겠더라. 하얘진 화면 속에서, 누군가가 이미 내 자리를 대신 차지해버린 건 아닐까—그 생각이 아직도 가끔 목 뒤를 차갑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