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로 받은 책에서 접힌 페이지 사이로 사진이 끼워져 있었다
중고거래로 받은 책에서 접힌 페이지 사이로 사진이 끼워져 있었다. 솔직히 별일 아니겠지 싶었다. 그냥 오래 쓰던 책을 산 거니까, 접혀 있던 종이 한 장 정도는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이상하게 손끝이 멈췄다. 페이지 사이에 뭔가가 ‘끼어’ 있는 느낌이 너무 또렷해서, 넘기다가 손가락이 살짝 걸렸다.
판매자는 “필기 거의 없고 상태 좋아요”라고만 적어놨다. 나는 직장 끝나고 택배 뜯는 날이라 대충 확인하고 책만장 정리했는데, 그날 바로 다 읽을 건 아니었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에 책을 펼치고 천천히 넘기는데, 책등 쪽에서 접힌 페이지가 한 번쯤 더 걸리는 게 계속 느껴졌다. 그래서 접힌 부분을 조심히 펴보려 했는데, 종이가 아니라 사진처럼 딱딱한 모서리가 보였다.
사진은 검은 테두리도 없고, 인화지 같은 느낌이었어. 크기는 여권 사진보단 조금 큰 정도? 근데 문제는 사진이 ‘한 장’이 아니라, 특정 페이지 한가운데로 정확히 끼워져 있었다는 거다. 더 놀라운 건, 페이지가 그냥 구겨진 게 아니라 사진을 넣기 위해 일부러 접어서 끼운 흔적처럼 보였다는 점이었다. 접힌 선이 깔끔하게 반복돼 있어서, 우연이라기보다 누군가가 일부러 숨긴 것 같았다.
나는 순간 너무 캐내고 싶어졌다. 누가 봐도 기분이 이상하잖아. 사진을 빼려고 했는데, 페이지가 같이 들리면서 오래된 책의 냄새와 함께 미세한 종이 가루가 떨어졌다. 그때 사진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는데, 사람 얼굴이 정면으로 나온 단체사진이었다. 정확히 몇 명인지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사진 속 배경이 학교 같기도 하고, 행사장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사진을 둘러싼 책의 문장이나 필기 같은 건 없었다. 마치 사진만 그 자리에 두고 아무 말도 안 한 것처럼.
뭐가 더 찝찝하냐면, 사진이 끼워진 페이지가 내가 찾던 챕터랑 완전히 상관이 없었다는 거야. 내가 중고로 산 책은 실용서였는데, 사진이 끼워진 쪽은 내용이랑 전혀 무관한 중간 중간 페이지였다. 보통은 읽다가 표시하려고 끼우거나, 영수증처럼 끼워 두는 경우가 있는데, 그 사진은 딱 ‘자리를 잡고’ 있었다. 페이지 가장자리까지 정확히 맞물려 있어서, 책이 그냥 우연히 그렇게 접힌 상태가 아니라 누군가가 책을 관리해온 흔적 같았어.
그래서 판매자한테 메시지를 보내야 하나 고민하다가, 일단 내 책의 인쇄 정보를 확인했어. 책 첫 장에 적힌 소유자 스티커가 아주 옅게 남아 있었거든. 떼어낸 흔적만 있고 이름은 지워졌는지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 스티커가 붙어 있던 자리에 작은 연필 자국이 보였다. ‘○○년도’처럼 보이는 숫자만 남아 있었고 나머지는 흐릿했다. 나는 그 숫자가 사진 속 분위기랑 어딘가 맞물릴 것 같아서, 더 찜찜하게 머릿속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사진을 다시 끼우고 책을 덮었다가, 그래도 불안해서 한 번 더 자세히 봤다. 사진 뒤쪽은 조금 더 희미했는데, 누군가 연필로 아주 작은 글씨를 적어둔 듯한 흔적이 있었다. 근데 글자가 정확히 읽히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돋보기까지는 아니고 그냥 휴대폰 카메라로 확대해봤는데, 화면에 잡힌 건 잉크 번짐 같은 흐릿한 선들이었다. 그 선들 사이로 특정 단어 같은 게 ‘한 번쯤’ 보이긴 했는데, 너무 흐려서 확신이 안 들었다. 그래서 더 무서웠어. 모르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어렴풋이 알 것 같아서.
그 다음부터는 책을 펼칠 때마다 사진이 생각났다. 나는 단순히 사진 한 장이라면 그냥 넘길 수 있었을 텐데, 그 책의 상태가 이상했거든. 페이지 가장자리에는 비교적 깨끗한데, 사진이 들어간 구간만 유난히 손이 많이 간 것처럼 보였다. 마치 누군가가 그 부분만 반복해서 열어 확인하거나, 넣었다 뺐다를 했던 것처럼. 그리고 사진이 끼워진 방식이 ‘책갈피’가 아니라 ‘숨김’에 가까웠다는 느낌이 계속 남았다. 누군가의 기억을 여기다 떨어뜨린 게 아니라, 여기다 감춘 것 같은 느낌… 그게 제일 걸렸다.
그래서 나는 당장 판매자에게 환불 요청이나 따지는 말을 하진 않았다. 대신 조심스럽게 “책 안에 사진이 끼워져 있었는데 혹시 알고 계시나요?”라고만 보냈다. 그런데 판매자는 답장이 너무 늦게 왔고, 답도 짧았다. “책 샀을 때 그냥 받은 거라서요. 사진은 제가 본 적이 없어요. 불편하면 처리할게요.” 그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나는 판단할 수 없었다. 다만 그 짧은 문장 뒤에, 왠지 모르게 ‘책 자체가 누군가의 사연을 담고 있다’는 느낌만 더 선명해졌다.
그날 밤 책을 다시 열어 사진이 끼워진 페이지를 마지막으로 확인했는데, 사진 아래쪽으로 아주 얇게 접힌 종이 조각이 한 겹 더 보였다. 크기는 손톱만 한데, 펜 자국이 아니라 지우개로 문질러 닦아낸 듯한 희미한 흔적이 남아 있었어. 사진을 누가 넣을 때 그 조각도 같이 끼웠던 걸까, 아니면 사진이 빠질까 봐 덧댄 걸까. 나는 그 종이가 뭔지 끝내 알아내지 못했지만, 이상하게도 그게 더 오래 남았다. 중고거래는 그냥 상태 확인이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책은 페이지 사이에 설명되지 않은 시간을 숨겨두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