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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접수번호가 바뀌는데도 내 종이 티켓은 그대로였어

2026-09-22 04:29:12 조회 15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병원에서 접수번호가 바뀌는데도 내 종이 티켓은 그대로였어. 그날은 감기 때문에 그냥 빨리 진료만 보고 나가려던 날이었는데, 접수창구 앞에서부터 이상한 기분이 들더라. 종이 한 장에 적힌 접수번호는 분명 내가 받은 그대로였는데, 화면에 뜬 번호는 계속 다른 사람처럼 바뀌고 있었거든.

나는 접수대에서 안내문을 봤어. “접수번호 변경 안내(전산 연동)” 같은 말이 적혀 있었는데, 솔직히 그런 건 늘 있는 거라 생각했지. 창구 직원이 “잠시만요, 전산 업데이트 때문에 번호가 자동으로 재배정될 수 있어요”라고 말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별로 신경 안 썼어. 나는 종이 티켓을 받아 들고 번호 호출만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했거든.

대기석 의자에 앉아서 티켓을 다시 봤는데, 종이 구겨진 자국 사이로 잉크가 번져 있었어. 그래도 번호는 선명했지. 그런데 그 번호를 확인하는 순간, 내 옆에 앉은 사람이 내 번호를 보고 멈칫하는 거야. “어? 너도 이거야?” 하면서 본인 티켓을 보여주는데, 거긴 분명 다른 숫자가 적혀 있었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두 티켓의 숫자 자리가… 같은 칸에 같은 형태로 보였어. 종이를 자세히 보니, 앞의 숫자만 다르고 나머지는 거의 동일한데, 그 미세한 차이가 너무 이상했어.

그때 전광판에서 내 번호가 한 번 울렸어. 나는 얼른 일어나서 접수창구 쪽으로 걸어갔는데, 창구 직원이 나를 보더니 말이 딱 끊기더라. “환자분 티켓은… 저기서 받으신 건가요?”라고 물었는데, 나는 그냥 접수대에서 받았다고 했어. 직원은 내 티켓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더니, 이번엔 전산을 다시 확인하면서 “잠깐만요. 번호가 갱신됐습니다”라고 했어.

근데 여기서부터 어이없었어. 직원이 말하는 ‘번호 갱신’은 화면에 있는 번호만 바뀌는 게 아니더라고. 잠깐 사이에 전광판 호출 순서가 꼬이기 시작했거든. 어떤 사람은 분명 자기 번호를 보고 일어났는데, 막상 진료실 앞에서 다른 번호가 호출됐고, 그 사람은 다시 앉아야 했어. 나는 계속 내 종이 티켓을 들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종이는 한 번도 바뀌지 않았어. 내가 티켓을 받은 순간의 숫자가 그대로야. 마치 그 숫자가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걸 막는 것처럼 말이야.

진료실 앞에서 다시 한 번 확인했을 때도, 의사는 내 티켓을 받아 들고 고개를 갸웃했어. “접수번호가요… 이게 왜 아직 그대로죠?”라고 하더라. 나는 “전산 업데이트 때문에 번호가 바뀔 수 있다던데, 제 티켓은 안 바뀌었어요”라고 했고, 의사는 잠깐 서류 더미를 넘기다가, 내 번호가 적힌 종이를 반쯤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어. 그리고는 진료기록 화면을 한참 보더니, 아주 낮은 목소리로 “전산상엔 이미 처리됐는데…”라고만 했어. 끝까지 말을 안 하더라.

그 다음부터는 진료 자체가 좀 기묘했어. 증상 확인은 했지만, 질문이 내 기억이랑 다른 식으로 흘러갔거든. 예를 들어 내가 “열이 나고 기침이 계속 나요”라고 하니까, 의사가 “열은 어제부터였죠. 그리고… 접수할 때 보호자 동행은 없었고요”라고 했어. 그런데 그 말들은 내가 한 적 없는 내용이었어. 나는 혼자 왔고, 보호자 동행은 없었지만, ‘접수할 때’라는 표현이 문제였어. 그 말이 마치 내가 접수했던 “그 순간”을 다른 사람처럼 기억하고 있다는 느낌을 줬거든.

잠깐 후 간호사가 약 봉투를 내밀었는데, 거기에 붙은 라벨은 분명 전광판에서 바뀌었던 번호로 되어 있었어. 반면 내 종이 티켓은 그대로였고, 그 간극이 계속 눈에 밟혔지. 내가 “접수번호가 바뀐 거면, 제 종이는 왜 이렇게 그대로예요?”라고 묻자, 간호사는 웃는 표정으로 “종이 티켓은 참고용이고, 전산이 기준이라서요”라고 했어. 근데 그 말이 너무 매끄러워서, 오히려 더 불안했어. 마치 답을 외워둔 사람처럼.

진료가 끝나고 나와서 대기석 쪽을 봤는데, 아까랑 똑같이 혼란스러운 표정의 사람들이 있었어. 어떤 사람은 티켓을 두 장이나 들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손목에 붙인 스티커를 떼려고 하다가 멈추더라. 나는 내 종이 티켓을 다시 봤어. 번호는 그대로였는데, 잉크가 조금 더 번진 것처럼 보였어. 그리고 종이 가장자리에는, 원래 없던 것 같은 아주 옅은 문장 하나가 보였거든. “갱신 대상 아님”이라고. 내가 그걸 처음부터 받았는지, 아니면 누가 몰래 끼워 넣은 건지 모르겠는데, 내 손에 있던 종이만 유난히 ‘아님’으로 박혀 있더라.

그날 밤 집에 와서도 이상하게 심장이 빨리 뛰었어. 감기 때문에 그런 건지, 아니면 병원이 나를 접수번호의 세계에서 빼먹은 건지 모르겠어. 다만 분명한 건 하나야. 접수번호가 바뀌는 동안에도 내 종이 티켓만은 끝내 바뀌지 않았다는 것. 병원은 전산이 기준이라고 했지만, 그 종이가 말하듯이 나는 어쩌면 갱신 대상이 아니었던 걸지도 몰라. 지금도 가끔 병원 접수할 때, 종이를 받으면 내 숫자가 정말 ‘내 것’인지 잠깐씩 생각하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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